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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대화
2005-10-18     프린트스크랩
아주 어릴 적

비금도 논두렁에 쭈그리고 앉아

아버지가 내어 준 사활문제를 풀고 있을 때부터

당신의 이미 나의 우상이셨습니다.

당신은 신이었습니다.

바둑판 위에 돌을 내려놓는 당신의 손 끝에선

빛이 나는 듯 보였습니다.

당신의 한 수 한 수는 밤 하늘의 별과 같았습니다.


나는 UFO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당신의 바둑을 황홀하게 지켜 보았습니다.

그것은

정녕 마법이었습니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기고 싶습니다.

존경은 승부를 갉아 먹습니다.

그것은 투혼을 묽게 희석시키며, 나를 왜소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당신을

존경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적어도 반상에서만큼은.


나는 당신을 이겨야 할 이유가 있으며

또한 이기고 싶습니다.

당신이 이룬 모든 것을

나 또한 갖고 싶습니다.

내게는 그것을 가질 수 있는 힘이,

그리고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강합니다.

위대합니다.


나는 때론 당신과의 싸움이 아닌

내 자신과의 싸움에 힘이 겹습니다.

당신을 존경하지 않기 위한 나 자신과의 싸움.


오늘은 내가 패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보여준 그 눈빛은

세상 누구라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오늘 나의 패배가 부끄럽지 않습니다.


심지어

나 자신에게 조차 그렇습니다.



 


* * * *


 


멋지군.

언제 보아도 자네의 눈빛은 멋있어.

창호에게는 그런 살아있는 눈빛이 없었지.

그래서 나는 자네를 좋아하는지도 몰라.

내 젊은 시절을 많이 닮았거든?

자네가 좋아하든 말든 그것은 사실이지.


자넨 강해졌네.

놀라울 정도로 강해졌어.

세계대회 3관왕.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자넨 최고야.

‘신화’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지금 정도로도 ‘전설’은 충분히 될 수 있을 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자네의 눈빛은 아주 근사하다구.


그 눈빛이 나를 바라보고 있음을

나는 꽤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지.

남들이 바라보는 일에 꽤 익숙해져 버린 나로서도

몸이 떨릴 만큼 흥분되는 시선이었다네.

그런 눈빛을 가진 사내는 대개 뼈가 단단하거든.

가시가 많은 여자와 뼈가 단단한 남자는

세상으로부터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거라네.


사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자네와 같은 멋진 후배들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네고 싶었다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둑이었지.

바둑? 수담이지 않은가.


대국 때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늘 말을 건넸고

한 수 한 수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조금씩 담아봤지.

혹시 들었는가? 자네라면 듣고 있었으리라 생각했는데 …


내 얘기는 사실 간단한 것이었네.

이제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내 뒤를 보라고.

나는 쉬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격앙된 목소리로

급소를 치기도 하고

그대들의 공격에 몰리기도 하며 소리쳤다네.


더 이상 나를 바라보지 말고

내 뒤의 그 ‘무엇’에 눈길을 돌려 보라고.

드넓은 우주를 향해

아직 그 누구도 가 보지 못한

그 위대한 신화의 길을 향해 말일세.


지금에 와 생각해보니

나는 지난 몇 년간 어쩌면

자네를 위해 이런 일을 해왔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군.


부디 건투를 비네.

멋진 눈빛을 가진

승부가 뭔지를 아는

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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斯文亂賊 |  2005-10-18 오후 7:1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웅~! 멋지당~  
천랑성83 |  2005-10-19 오후 12:4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컷의 사진에 아름다운 의미를 입혔네요 글쓴이도 멋진 사람인듯 양희은씨가부른 아름다운 사람이 생각나네요  
도루왕 |  2005-10-21 오후 12:1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와...사진하고 글이 너무 멋집니다....!!!  
자이타이 |  2005-10-21 오후 1:5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최고의 사진과 최고의글 을 본것같아서 오늘오후는 왠지 좋은일이 일어날것같은 느낌이드네 카-드한번해야지  
자목련화 |  2005-10-26 오후 7:1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눈물겨운 대화로군요. 이렇게 멋진 생각들을 갖는다면 대기사가 되지 않을 수 없겠지요  
놀란하늘 |  2005-10-27 오전 2:1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유 사범님의 상도 좋지만 , 역시 2대 천재라면 역시 조 선생님과 비금도.. 천재의 특징은 화려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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