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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에도 컬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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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에도 컬러가 있다
2006-08-07     프린트스크랩
관전기를 접해보지 않은 바둑팬을 찾는 일은 이승엽을 모르는 야구광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려울지 모른다. 관전기는 개척과 희소성의 시대를 지나 대량생산의 황금기를 거친 뒤 바야흐로 생존을 위한 다양화의 시대로 접어든 듯하다. 수 십 년간 한결같은 뼈대를 지녀왔던 관전기들이 요즘 들어 확실히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 실험의 선악은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반갑다. 관전기는 대략 3개 공정을 거친 결과의 산물이다. 그 처음이자 원 소스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국자들에 의해 생산된 한 장의 기보. 이를 또 다른 - 때로는 대국자 자신의 - 전문가가 수에 대한 해설을 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기자 - 또는 필자 - 에 의해 관전기로 최종 마무리되게 된다. 이는 마치 작곡자에 의해 작곡된 악보를 편곡자가 편곡을 하고, 연주자가 나름의 해석을 가미해 연주하는 형식과 유사하다. 아주 드문 경우 이 세 공정이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2명, 또는 3명에 의해 각각 작업을 분담하게 된다. 즉, 관전기는 대국자와 해설자, 그리고 필자의 삼박자가 어떻게 맞아 들어가느냐가 질을 결정하는 기본 토대가 되는 것이다. 오늘 할 이야기는 이 중 두 번째 공정, 다시 말해 해설의 단계에 관한 것이다. 본인은 그 동안 다수의 관전기자들을 만나 왔고 그들을 통해 해설자들의 다양한 ‘편곡 스타일’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상당 부분은 본인이 직접 경험해 본 바이기도 하다. 확실히 같은 악보를 소스로 하더라도 편곡에 따라 원곡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달라진다. 그 정도까지야 아니겠지만 바둑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과연 우리들의 프로기사들은 어떻게 해설을 하고 있는가? 십인십색의 해설 스타일! 그것이 오늘의 주제가 되시겠다. 󰊱 조훈현 9단 관전기자들 사이에서 조훈현 9단의 해설은 가장 난이도가 높은 해설로 통한다. ‘조훈현 9단의 해설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 아마5단 이상’이라는 말이 나돈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다. 조훈현 9단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사람이라면 동감하겠지만, 상당히 독특하다. 말 자체가 지닌 스피드가 장난이 아닌 데다 시도 때도 없이 낡은 LP판 튀듯 통통 거린다. 가히 기풍을 쏙 빼닮은 쾌속행마의 해설이다. 때문에 월간지 등에서 관전기자를 섭외할 경우 해설자가 조훈현 9단이라면 아마추어 5단 이하의 그룹은 아예 처음부터 제외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사실 그 이상의 기력자라 하여도 웬만한 관전기 짬밥이 아니고선 조9단의 해설을 이해하기란 가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모 선배는 술 한 잔이 들어가면 자신이 겪은 일화 하나를 자랑하곤 했다. “정확히 무슨 대회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 국제대회였지.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등 우리 프로기사들이 출전을 했고 나는 취재 차 동행을 했어. 조훈현 9단한테 전날 이긴 바둑을 해설 받기로 했는데 마감이 코앞이더라고. 조9단 스케줄이 좀 빡빡한가? 언제쯤 해설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물었더니 글쎄 ….” 조훈현 9단이 지금 당장 해설을 하자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놀란 눈을 하는 선배에게 흐흐 웃으며 말했다. “자석 바둑판 갖고 있지? 그걸로 하자고. 얼른 갖고 와.” 그렇게 해서 실로 한 판의 해설이 번갯불에 계란 프라이 튀겨 먹듯 뚝딱 이루어졌다. 김포공항에 내리자마자 선배는 바람에 씽씽 코털을 날리며 회사로 달려가야 했다. 왜냐고? 15분 만에 들은 조9단의 해설을 머릿속에 2시간 이상 담아두기란 아마추어의 능력 한계치를 상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에 돌아와 열 몇 개의 참고도를 설사처럼 쏟아내고 나서야 선배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단다. 그날 저녁 맥주 한 잔, 참 맛있었단다. 󰊲 이창호 9단 이창호의 해설은 ‘여백의 해설’이다. 한 마디로 생략이 많다. 행간을 이해할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선 이창호의 해설을 들을 마음을 접어야 한다. 달을 가리키는 이창호의 뭉툭한 손가락만 바라 볼 가능성이 지극히 높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주는 수의 깊이는 심원과 같다. 프로들이라면 감동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자들은 괴롭다. 이거다 저거다 시원하게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어릴 적 이창호는 스승 조훈현 9단과의 대국을 자주 해설해야 했다. 사실 대부분의 바둑이 그러했다. 국내 도전기의 거개가 이들 사제지간의 대국으로 도배가 되던 시절이었으니. 스승과의 대국을 해설할 때에는 더욱 환장할 노릇이었다. 스승의 수에 대해서는 거의 논평을 하지 않았다. 부탁도, 회유도, 협박(?)도 통하지 않았다. 읍소에는 다소 약해 종종 한 두 마디를 던져 주지만, 그나마 선문답에 가까웠다. 얼마 전 이창호 9단이 바둑TV 해설을 하는 모습을 보았고, 이것이 장안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화면 속의 이창호는 제법 해설자의 티가 났다. 해설도 정확했고(당연하지), 적절한 멘트를, 적당한 어조로 구사하고 있었다. 천하의 이창호가 TV 해설을 하다니! 거참, 세월 많이 달라졌다. 󰊳 유창혁 9단 날카로운 해설이다. 수도 정확할뿐더러 해설도 알아듣기 쉽다. 기자들로선 최적의 해설자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유창혁 9단의 팬들이라면 그의 독특한 버릇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국 중 상대방을 흘낏 - 흰자위가 꽤 드러난다 - 올려다보는 바로 그 습관. 도끼질의 요다조차 움찔했다는 그 안광(眼光)! 문제는 이게 바둑판 앞에만 앉으면 자동으로 구현되는 모양인지, 기자를 놓고도 시도 때도 없이 폭사되어 나온다는 점이다. 유창혁 9단이 찌릿! 하고 올려다볼 때, 웬만한 기자들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한 마디로 정신이 번쩍 든다. “이해하고 있습니까?”라고 묻는 듯한 눈빛. 아이고, 덜덜덜 ~ 󰊴 김성룡 9단 김성룡 9단의 해설 듣기를 싫어하는 기자가 있을까? 그의 해설은 ‘맞춤형 해설’이다. 기자가 원하는 대로, 매체가 바라는 대로, 독자가 꿈꾸는 대로 해준다. 김성룡 9단은 기자를 만나자마자 일단 묻고 본다. “참고도 몇 개 필요해요? 어디 나가는 거에요?” 기자 노릇하기 쉽다. 김성룡 9단이 부르는 대로 받아 적기만 해도 관전기 하나가 뚝딱 나오니깐. 물론 단점이 없지 않다. 이쪽 바닥을 너무 잘 알다보니 재미가 적다. 기자의 주관이 들어갈 공간도 부족하다. 그의 창산유수는 받아만 적기에도 지면이 모자라고 또 모자란다. 또 하나의 단점은 판단이 너무 빠르고, 너무 확신이 강하다는 것. 김성룡 9단의 “여기서 바둑 끝났어요. 백이 해볼 데가 없어요.”에 속아보지 않은 기자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 박지은 6단 이창호보다 더 과묵하다. 진짜 말이 없다. 가끔 한 마디씩 하는데, 들리지가 않는다. 마을회관용 확성기 두 대 놓고 올림픽 경기장에서 록 공연을 하는 것 같다. 비바람 몰아치는 산 중턱에서 건너 편 마을을 향해 외치는 것만 같다. 게다가 마음이 약하여 이 수가 좋다 나쁘다를 쉽게 말해주지 않는다. 머리만 갸웃 가웃 … 이게 수가 되나? 글쎄요 … 잘 모르겠어요 …. 그러다 지나가는 동료 또는 후배기사가 있으면 붙들고 물어보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박지은 6단의 해설을 받고 나서 이런 거 저런 거 불평하는 기자나 필자를 도무지 본 적이 없다. 단 한 명도 못 봤다. 아니, 모두가 또 듣고 싶어 한다. 정말 신기한 일이다. 󰊶 루이 나이웨이 9단 신기한 경험이다. 루이 9단에게 해설을 받는다는 것은. 그녀의 해설은 심플 그 자체. “좋아요.” “나빠요.” “위험해요” ~ 의 세 마디로 모든 바둑을 해설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녀를 통해 처음 알았다. 그리고 ‘바둑은 수담’이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란 것을, 우리 선조들의 혜안에 재삼 감탄할 기회를 갖게 됐다. 본인 역시 루이 9단에게 세 차례인가의 해설을 받은 기억이 있다. 그리고 저 세 마디 외에는 별로 들어본 게 없다. 그래도 관전기를 무리없이 쓸 수 있었다. 신기하고 또 신기하여라. 물론 애매한 부분에서는 그녀 역시 고심하게 된다. 그럴 땐 또 해결책이 있다. 이번엔 기자가 묻는다. “이거 백이 끊은 것이 무리인가요?” “ … ” “무리는 아닌데 흑이 이렇게 받은 것이 좋았던 건가요?” “ … 음 … 그게, 그게” “아! 흑이 늘지 않고 젖혔으면 되는 거란 얘기죠? 그랬으면 백이 끊은 것이 좋은 수?” “네. 맞아요.” 루이 9단의 해설을 듣는다는 것은 일종의 묵언수행과도 같다. 최소한의 언어만으로 우리는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고, 그 편이 한결 행복한 세상을 만들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그렇게 굿모닝오로를 쓴다면, 고료를 받지 못하게 되겠지만. 󰊷 김영삼 7단 끝으로 김영삼 7단이다. 김영삼 7단은 최근 해설계에 부쩍 많이 등장하고 있다. TV해설도 자주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다소 장황한 느낌이 없지 않더니 이제는 완벽히 자기 정리가 끝난 것 같은 성숙함이 보인다. 지면 해설도 그렇다. 포인트만 꼭꼭 찝어내는 강남 족집게 과외 형으로 변모했다. 김영삼 7단 해설의 장점(?) 한 가지. 해설을 듣고, 기자가 원고를 완성하면 대개 해설자가 감수를 하게 된다. 혹시나 기자가 해설자의 의도를 잘못 전달한 것은 없는지, 참고도가 틀린 데는 없는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많은 해설자들이 이 감수의 단계를 생략하고 있지만 김영삼 7단은 언론에 나가기 전 반드시, 그리고 직접 원고를 들여다봐야 직성이 풀리는 완벽주의자에 속한다. 김7단의 꼼꼼함을 싫어하는 기자는 없다. 사실 이렇게 감수를 해주는 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렇긴 해도 가끔은 그도 일정이 바빠 감수를 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기자의 전화벨이 울리곤 한다. “저 김영삼인데요 … 오늘 감수 못 할 것 같아요. 지금 기원이시죠? 죄송하지만 1층 바둑TV 스튜디오에 가셔서 감수 좀 받으실래요?” “1층? 거기 누구한테?” “제 마누라요.” 그랬다. 김영삼 7단의 ‘마누라’는 현미진 4단이었지. “히히히! 저보다 더 잘 볼 거에요.” 김영삼 7단이 전화를 끊으면서 한 마디 한다. 이렇게 해서 간혹 우리들은 김영삼 7단 대신 그의 아내로부터 감수를 받는다. 아내는 대개 바둑TV 출연자를 위한 분장실에서 코디들의 분장을 받으며 원고를 감수한다. 어쩐지 초등학교 시절 여선생님한테 숙제 검사를 받는 듯한 기분이 아니 드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나쁜 경험은 아니다. 관전기자 일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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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자 |  2006-08-08 오전 6:1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지금은 들을수 없지만, 김수영 사범님 해설도 참 맛깔났죠^^ 양실짱님 시원한 여름 보내셔요~~  
술래잡기7 |  2006-08-09 오전 8:4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잼나게 읽었습니다... 저도 김영삼 프로가 오로에서 해설한는것을 한번 듣고 뿅 ~ 갔었죠 ^^ 정말 해설을 성실하고 잼나게 잘하시더라구요...  
빨코 |  2006-09-05 오후 7:3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김영삼 7단 ...해설 많이 늘었다 잼나다...특히 이름이 아른거리는데...추*엽인가 하는 사람과 하는게 재미있다...동생뻘 기사들 뒷얘기도 더욱 많이 해주시길...  
가림토 |  2006-09-17 오전 3:0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말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종종 좋은 글 부탁 드립니다...ㅋㅋ  
정말말세 |  2006-09-26 오후 4:1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ㅋㅋㅋㅋ 재미있어요. 글솜씨가 정말 탁월하심.  
오로의아마 |  2007-01-04 오후 7:1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성들인글 잘보았습니다. 예전의 노영하 .양상국九단 해설도 쏙쏙들어오고 좋았는데 요즘은 바쁘신지 도통... 요즘 젋은기사들도 아주 잘들하십니다.  
오로의아마 |  2007-01-04 오후 7:1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요즘 기사들은 자기 색깔을 넣어서 더 친근하고 편하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성룡九단 은 자기 칼라를확실히 보여주죠.찬반이 많지만 제가볼떈 해설의 또다른프로라 봅니다. 주관이있죠.  
오로의아마 |  2007-01-04 오후 7:14: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국바둑이 대중에게 더 다가갈려면 김성룡九단 같이 친근하게 들이대주는(? ^^)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마지막오타정정 김성룡九단해설 창산유수-->청산유수 가 아닌가싶어서요청산유수 가 아닌가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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