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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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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기억
2006-07-18     프린트스크랩
90년대 말경이었을 것이다. 
월간바둑 기자였던 나는 마감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편집장의 급령을 받고 전남 구례행 시외버스에 올라야 했다. 70년대 중반 한국기원의 이사장을 지낸 어느 분의 추모사를 쓰기 위한 취재였다. 
오후 늦은 시각, 구례의 마을 어귀에 도착했다. 
물어물어 찾아 간 낡은 집 대청마루에 노인은 나와 앉아 있었다. 
노인은 본시 서울에 살고 있었으나 휴양 차 구례에 내려와 있었다. 가끔 시골 공기가 마시고 싶을 때면 찾을까 싶어 아예 시골 빈집을 한 채 샀다고 했다. 
 
고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녁밥상이 나왔다. 
노인과 밥상을 두고 마주 앉았다. 소박한 시골밥상이다. 
잡곡이 섞인 밥에 나물접시와 생선 한 토막, 그리고 뜨끈한 된장찌개가 나왔다. 
빈손이 멋쩍어 터미널에서 사들고 간 참치통조림도 입을 열고 있었다. 
“많이 들게. 난 요즘 밥 한 공기가 너무 많아.” 
노인이 밥을 반으로 덜어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커피가 나왔다. 노인은 내 잔의 반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잔에 달디 단 커피를 탔다. 골초인 노인은 의외로 단 것을 좋아했다. 이야기 도중 틈틈이 과자와 초콜릿 따위를 먹었고, 내게 권하기도 했다. 
 
어느새 하늘엔 별이 떴다. 
쏟아질 듯한, 전형적인 시골의 밤하늘이었다. 
대청에 전구 불을 밝힌 채, 노인은 많은 것을 이야기 했다. 
생과 노(老), 병과 죽음, 바둑 … 그리고 종교. 
정기신(精氣神), 기의 운용과 실체, 그리고 스스로의 수행 과정에 대하여. 
스스로 불교도가 아니라던 노인은 그러나 불교에 대해 많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기공에 심취하였다. 
노인은 자신있게 말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도, 젊어서 기를 공부한 덕이지.” 
 
삶은 옥수수와 수박이 담긴 쟁반이 놓였다. 
그리고 다시 녹차가 나왔다. 녹차는 노인이 스스로 우렸다. 
별 아래, 노인과 마주앉아 마시는 한 잔의 차. 
밤이 차 속으로 우려지고 있었다. 
 
노인과 둘이 방에 누웠다. 
어디선가 풀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밤바람이 풀잎을 눕히고 부드럽게 입을 맞춘다. 
창호지 발린 문 사이로 비추이는 달빛이 손을 대면 묻어날 것 같은 밤. 
노인이 물었다. 
“잠이 잘 오지 않나?” 
“네.” 
 
노인이 클클 웃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였을까. 
정확히 기억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노인의 삶 조각을 꿰맞추는 놀이와도 같은 것이었겠지. 
 
노인이 다시 물었다. 
“아직도 잠이 오지 않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노인의 숨소리가 고르게 들려왔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눈을 떠 천정에 비친 달빛의 웅덩이를 보았다. 
어쩐지 잠들기 미안한 밤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나는 노인의 옆에서, 그렇게 잠이 들었다. 
옅은 설탕물의 맛이 나는 듯한, 
그런 달착지근한 잠이었다. 
 
 
◆ 일간지와 인터넷, 그 동안 바둑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던 지상파 방송까지 일거에 몰려드는 바람에 며칠을 그야말로 전시체제처럼 살았습니다. 그래서 빈소에 잠시 다녀왔을 뿐, 영결식조차 보지 못하였습니다. 영결식에서 추모의 사(辭)를 낭독하신 세 분 원고의 초안은 기실 제가 잡은 것이었지요. 추모사는 선생님에 대한 제 자신, 전송의 마음이었고 본의 아니게 세 분은 저의 마음을 대독하신 셈이 되었습니다. 
이왕 가신 길, 그토록 원하시던 정토(淨土)의 길이 되시기를 바라고 또 바랄 뿐입니다. 
이제는 편히 영면하소서.  
조남철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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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돌멀리 |  2006-07-20 오전 12:5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조명인님 |  2006-08-07 오전 11:3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앞부분의 내용과 말미의 내용이 연관이 안돼 이해하는 데 힘듭니다만...90년대말 취재기와 금년에 영면한 조남철 선생님에 대한 추모사 . 쉽게 좀 풀이가 안될지요?  
새재돌벗 |  2006-09-20 오후 10:3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앞에 언급되는 그 노인분이 조남철 선생님인듯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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