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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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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여전사
2005-09-08     프린트스크랩
여 . 전 . 사


그녀의 이미지는 정말 누가 만들었을까?

본인일까? 설마 ….


팬들? 아닐 것이다.

그녀의 팬이라고 해 봐야 열 손가락이 다 필요치 않을 시절부터

그녀는 여전사였다.


그렇다면, 역시 언론?

글쎄 ….


 


* * *






박지은이 입단했던 것은 1997년 겨울이었다.

영국의 토니 블레어 노동당 당수가 185년만의 최연소 총리로 피선되던 해.

TV에선 갓 데뷔한 SES가 인어처럼 싱싱한 모습으로 I'm Your Girl을 부르고 있었지.

그렇다. 척 맨지오니의 Feel so good도 1997년의 산물이었다.


입단 인터뷰를 위해 만난 박지은은 열다섯 살 소녀, 아니 거의 ‘꼬마’로 보였다.

작은 키, 작은 손과 발,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그래, 그때도 눈이 작았다.

작은 눈꺼풀 사이로 보이는 눈빛만 별처럼 초롱초롱 빛났었지.


그땐 입단한 프로기사들에게 어떻게 든 별명을 하나씩 만들어 주는 것이 기자들의 관례였다. 뭐라고 하지?
‘꼬마’는 화 낼 것 같고, ‘독종’은 너무 심하고 … 그렇다고 ‘미녀기사’라 하기엔 확실히 어리고.


 


* * *


 


그래서 고심 끝에 만들어 붙인 것이 G. I 제인이었다. 97년 개봉했던 리들리 스콧 감독의 액션 영화.
브루스 윌리스의 전 부인 데미 무어가 삭발을 하고 나왔다.

그 강인한 이미지.

그게 박지은과 겹쳤다.

쉽게 굴복할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G. I 제인.


 


* * *


 


며칠 전 박지은 6단과 밥자리를 같이 했다.

하얀 밥 위에 구운 고등어 한 조각을 얹으며 그녀가 말했다.

“그러니까 … 여전사 말이죠? 음 … 좋아요. 여전사의 이미지를 좋아해요.”

“그래도 좀 그렇지 않을까? 솔직히 가까이서 보면 별로 여전사스럽지 않은 게 사실이잖아. 요즘 고양이 엄마라며? 매일 고양이만 끼고 살아서.”

“바둑판 위에서만 그러고 싶다는 얘기죠. 무섭게, 독해 보이게 ….”


그랬구나. 바둑판 위에서만 여전사.

만만하게 보이기 싫었던 게다.

약해 보이기 싫었던 게다.

그래서 온 몸의 세포가 달리의 그림처럼 늘어져 헉헉 뜨거운 숨을 토해낼 만큼

조그만 육체를 그리도 혹사해 왔던 것이로구나. (그녀는 운동광)


 






전사의 숙명은, 결국은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언제나 이길 수는 없다.

전사는 지는 것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래서 아프다.

온 신경이 가닥가닥 끊어지고

세면대 앞에서 비릿한 각혈을 하면서도

내일은 이기고 싶다 … 이기고 싶다, 를 노트에 적는 사람들.


그것이 전사다.

그녀는 전사다.


전사의 아픔이 일백 분의 일정도 스며들어 있는 이 한 장의 사진.

오늘밤 지고 싶지 않은 그대의 책상 위에

놓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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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인님 |  2005-09-08 오후 4:3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이 너무 승부만 강조하다 보면 너무 딱딱해 져 버린다는...더욱이 둘만의 게임이다 보니 승부호흡을 너무 가깝게 느끼기도 합니다. 승자,패자 모두 즐겁게 두었으면 합니다  
늑대개vxn~ |  2005-09-09 오후 4:5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양실짱 특유의 섬세한 감성이 실린 이쁜 글! 표정이 살아있는 사진도 좋고!!  
게스후? |  2005-10-13 오후 5:0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척멘죤의 필쏘굿은 1979년일걸요..아마.....  
qkeuk |  2006-05-08 오후 7:4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977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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