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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빙시대 웰빙바둑 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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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웰빙바둑은 올바른 자세로부터
‘폼’이 좋아야 합니다.
뭐가 되었든지 일단 숙달을 위해선 ‘폼’이 좋고 봐야 합니다. 설령 숙달이 되지 않더라도 폼은 좋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께서도 일찌감치 목에서 피가 터져라 부르짖지 않으셨나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에도 좋으니라 …
 바둑은 반상에서 99.9%, 모든 것이 이루어지느니만큼 반상에서의 폼만을 의식하기 쉽습니다. 바둑에서의 폼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다름 아닌 행마라고 봅니다. 깔끔하고 보기 좋은 행마는 과연 고수의 냄새를 물씬 물씬 풍기게 하지 않던가요? 오죽하면 행마 하나로 미학의 경지를 쌓아올린 대죽(大竹)이 형님같은 분도 계시지 않습니까.
반상의 폼이 중요하다는 것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겠습니다만, 오늘은 한번 반외의 폼으로도 눈을 돌려보기로 합니다. 바둑 한 판 두는 데 걸리는 시간은 최하 30분에서 2시간 남짓. 바쁜 현대인으로서는 결코 짧지 않은 이 시간 동안 바르지 않은 자세로 대국을 한다는 것은 목 디스크, 오십견, 요통아 오너라! 하고 호출하는 일과 다를 게 없을 겁니다.
가장 좋은 것은 요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세가 되겠지요. 하지만 다리 한 짝을 머리 위로 올려놓거나 물구나무를 서서 바둑을 둘 수는 없는 노릇. 아니, 할 수도 있겠군요. 사이버오로 대국은 가능합니다 ^^ 역시 오로가 최고야!
 웰빙 대국자세의 표본은 역시 일본의 린 하이펑 9단이 최고봉일 겁니다. 쭉 편 허리, 담담한 표정, 물 흐르듯 돌을 옮기는 동작 하나하나까지. 요다 9단의 장작패기 타법은 근력 강화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웰빙과는 거리가 멀다 해야 할 겁니다.
대국의 올바른 자세라 하면 아무래도 독서의 우량 자세와 상통한 점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선시대 대표적인 실학자 홍대용 선생의 올바른 독서 자세에 관한 어록 한 편을 소개해 드리지요.
“글을 읽을 때는 반드시 옷깃을 단정하게, 얼굴을 엄숙하게, 마음은 전일하게, 기운은 화평하게 할 것이며, 잡념을 갖지 말고 선입견을 품지 말아야 하느니 …”
5. 조화와 균형
‘바둑은 조화다.’
너무나도 잘 알려진 말이죠? 살아있는 기성 우 칭위엔 선생의 말씀입니다.
바둑에 있어 의미심장할뿐더러 함축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표현의 금메달은 ‘두텁다’, 그리고 ‘조화’는 은메달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행마의 조화, 실리의 조화, 두터움의 조화, 진퇴의 조화, 대국 마음가짐의 조화, 원고와 원고료의 조화(앗, 이건 아니고) 등등.
여기에서는 이 모든 조화를 말하고자 합니다. 한 예로 내기바둑만 두다 보면 바둑이 극단적으로 두터워집니다. 열판을 이겨봐야 한 판 크게 지면 일 년 농사(?)가 단박에 날아가기 때문이죠. 뭐 구구절절 설명 안 드려도 다 아시죠? ^^; (양실짱은 내기바둑을 안둡니다만)
물론 극단적으로 엷은 바둑 또한 문제입니다. 남의 티끌은 보여도 자기 눈의 대들보는 안 보인다고 그저 자신의 약점은 내쳐두고 공격, 공격만을 일삼는 사람. 오로지 집! 집! 하며 2선 3선만 기는 분들은 모두 웰빙바둑의 치료요법을 받아보시길 강추하는 바입니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말은 누구나 하지만 실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풍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고들 하지요. 그렇다면 좀 더 비약해서 ‘기풍이 바뀌면 사람도 바뀐다’는 논리는 어떨까요?
바둑을 둘 때마다, 늘 조화와 균형을 생각해 봅니다. 두터움과 집의 조화, 공격과 방어의 조화, 무모한 싸움보다는 돌아서 갈 줄 아는 지혜, 첫 수부터 계가를 마칠 때까지 마음의 평정 유지하기 …
조화와 균형은 아마도, 웰빙바둑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일입니다.
6. 꼭 이겨야 맛인가?
바둑은 이겨야 맛이긴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바둑의 본질은 승부니까요. 져서 기분 좋을 사람, 천하에 없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묻고 싶습니다.
바둑, 꼭 이겨야만 맛인가요?
웰빙바둑을 추구하고자 한다면 사실 바둑에 이기는 법보다는 ‘잘 지는 법’에 먼저 익숙해져야 할지 모릅니다. 여기서 저는 ‘잘 지는 법’이라 했지 ‘많이 지는 법’이라고는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지셔야죠. 어떻게 지느냐구요? 자알 ~ ^^;
잘 지기 위해서는 먼저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 중요할 겁니다. ‘지면 어떠하리. 어차피 한 판의 바둑, 쓸어버리고 다시 두면 그만인 것을 …’이런 마음자세가 필요하지요.
아마추어는 첫 장면을 생각하고 펜을 들지만, 프로 작가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며 글을 시작한다고 합니다. 산악 전문가는 정상 정복에 앞서 하산을 먼저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승부사는 승리의 기쁨도 중요하지만 패배의 아픔도 잘 삭일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바둑. 하루 이틀 두고 말 것도 아니니까요.
이기면 좋죠. 그 달콤한 맛은 누구도 부인 못합니다. 굳이 웰빙이 아니더라도 바둑 한 판 이기면 그 좋다는 엔돌핀이 펌프질이라도 받은 듯 솟구칩니다.
하지만 바둑 한 판 졌다고 해서 이번엔 아드레날린이 콸콸 넘쳐댄다면? 더군다나 이기는 날보다 지는 날이 훨씬 더 많다면?
 스키를 타 보셨나요? 스케이트는? 요즘엔 인라인 스케이팅을 많이들 하시죠?
이들을 배울 때 우리는 맨 먼저 넘어지는 법을 배웁니다. 자알 ~ 넘어지는 법이죠.
즉, 덜 아프고, 덜 다치게 넘어지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배워야 합니다. 넘어지지 않는 법이 아니라 자알 넘어지는 법을 배운다는 것. 뭔가 인생과도 짜릿하게 통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
사람은 때로는 승리에서보다 패배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다만 그 보상은 패배를 준비하고, 또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뭔가를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자, 결론을 내려 보기로 하죠.
패배!! 싫지만 무섭지는 않아!!
7. 평생공부
공부는 평생하는 거랍니다. 물론 젊어서 해야 할 공부가 따로 있고, 나이 들어 할 공부가 따로 있죠. 하지만 이거 아세요? 세상에는 펴영~생 공부할 수 있는 값진 품목들이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것.
 누군가 이런 말을 해줬습니다.
“만약 당신이 무인도에 가야 한다면, 그리고 단 한 가지만을 가지고 가야 한다면 무엇을 가지고 가겠는가?”
앙케트 항목의 단골손님이죠? 여러분도 한번쯤은 이런 설문에 응해보신 일이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이렇게 답을 했답니다.
“바둑연감 한 권이면 된다.”
바둑판은 대충 무인도에 있는 나무 한 그루 잘라 만들고, 돌은 조개 잡아 만든답니다.
그리고 하루 한 판씩 파도소리, 갈매기 소리를 벗 삼아 돌을 늘어놓다보면 인생 자알 갈 거라는 얘기죠. (연감 한 권에는 평균 500국이 넘는 기보가 … 쿨럭)
웰빙은 평생 함께 하는 반려자와도 같습니다. 올해만 웰빙하고 내년부터는 거지처럼 살아야지(일빙 -_-;)! 설마 이런 분들은 안 계시리라 믿고 …
사실 바둑처럼 평생 공부할 수 있는 종목도 드뭅니다. 어려서 아버지 어깨너머로, 혹은 바둑교실에서 배운 바둑은 파파 할아버지가 되어 노인정에서까지 두게 되지 않습니까? ^^; (인간의 일생과 바둑을 소재 삼아 연작으로 꾸며도 근사할 것 같군요)
8. 과식은 금물
뭐든지 과하면 탈이 되는 법. 칼로리 제로의 물조차 급히 마시면 체한다 하여 우리의 선조 누님들께선 바가지에 버들잎 띄워 과객을 대접하지 않았습니까? ^^
바둑이 늘기 위해선 감각을 키워야 하고, 감각 배양에는 속기가 최고라 하여 무조건 ‘빨리 빨리’를 외치시는 분들. 감각은 자랄지언정 웰빙과는 영원히 바이바이임을 아셔야 합니다.
웰빙바둑을 둘 때에는 다음의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볼까요?
a) 수읽기를 즐깁니다 : 다만 즐거울 만큼만. 마치 추리소설을 읽거나 퍼즐을 풀 듯, 자신이 읽을 수 있을 만큼만 읽어봅니다. 이 과정을 통해 뇌 속의 뉴런돌기들은 반짝반짝 빛나게 됩니다(믿거나 말거나 -_-;). 골치가 슬슬 아파지신다구요? 그럼 그만 읽으셔야죠. 수읽기는 즐겁게! 잊지 마세요.
b) 과식은 금물 : 하루 한 판. 많으면 두 판 정도의 대국이면 족합니다. 이겼다고 또 한판 Go! 졌다고 억울해서 Go!는 오늘부터는 지양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맛을 음미할 때는 소식이 좋은 법. 하루 한 판의 바둑을 쫄깃쫄깃 씹어 내 것으로 만드는 일이 10분짜리 열판의 대국보다 낫습니다. 단 웰빙의 시각에서 볼 때 말이지요 ^^; (프로 지망생들은 이러면 안돼요~)
제가 좋아하는 선배가 있습니다. 이 선배는 술을 굉장히 좋아해서 일주일이면 거의 칠 일간 술을 마십니다. 낮술, 밤술을 안 가리지요.
하지만 이 선배는 늘 1차에서 판(?)을 걷습니다. 아주 기분이 좋을 때(또는 여자 멤버가 있을 때 -_-)가 아니면 좀처럼 2차에 합류하지를 않습니다. 1차에서 기분 좋게 소주병을 비우고는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납니다.
한번은 2차에서 슬그머니 가방을 들고 도망치는 선배의 옷자락을 잡은 일이 있습니다. 술도 얼근하게 취했겠다, 양실짱이 볼멘소리로 물었지요.
양실짱 : 어어! C선배! 이럴 수가 있어요? 치사하게 도망을 가다니. 배쉰자!!
그때 C선배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합니다. 뭐라고 했냐구요?
“그래야 내일 또 마시지.”
매한가지. 하루 한 판의 바둑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상대가 한 판 두고 훌쩍 일어서는 여러분에게 뭐라 투덜대기라도 하면 이렇게 답해주세요. 목소리 좌악 깔고 말이죠.
“그래야 내일 또 두지.”
웰빙시대 웰빙바둑 3부작. 여기서 마칩니다. 왜냐구요?
그래야 내일 또 쓸 수 있을 테니까요 ^^; 꾸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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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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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내 얘기같군요.......바둑...술......이젠 줄이자....일년에 한두판....일년에 한두잔..그래야 내년에 또 뚜지..헤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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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공감이 가요 ...자알 넘어지는 법을 먼저 배운다. 어느정도 인생을 아시는 분은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이젠 저도 바둑 빨리 늘지 않는다고 그만 투정부려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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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글이 구수하군요..술술 - 슬슬- 마치 박노자의 글을 읽는 것처럼..마치 강 준만(인물과 사상) 의 글을 읽는 것처럼..동서고금을 넘나들며..바둑 두는 분들이 이래서 존경스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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