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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2     프린트스크랩
평소 대부분의 개인적인 이동에 있어 지하철을 활용하는 양실짱. 5년 전에 소형차 한 대를 구입했지만 몇 개월 타고 다니다가 결국은 지하철로 돌아왔지요. 그리 길지 않은 출퇴근 시간 동안 지하철 출입문가에 기대어 책장을 살살 넘기는 재미를 포기하기엔, 운전이란 작업이 너무나도 ‘까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실로 오랜 만에 버스를 타 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약속 장소가 지하철이 닿지 않는 곳이었고, 마침 회사 앞에 그곳을 경유하는 버스가 있었습니다. 버스는 양지사거리를 지나 제기동을 거쳐 청량리를 향해 갑니다. 퇴근 시간 땡! 하자마자 나와서인지 아직 크게 밀리지는 않는군요. 청량리 즈음에서 노인 한 분(할아버지셨지요)이 타셨습니다. 양실짱은 이럴 때 숨도 안 쉬고 자리에서 일어섭니다. 피가 펄펄 끓는 이 나라의 젊은이로서,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게 하여 양실짱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손잡이를 잡고 흔들리는 버스의 진동에 몸을 맡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 또는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는 느낌이 내내 무겁게 가슴뼈를 눌러오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이내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노인께 자리를 양보한 일은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누구라도 그렇게 하는 일입니다. 양실짱은 노인 분이 버스에 오르시는 모습을 보았고, 자리에서 일어섰고, “이쪽에 앉으시지요”하는 말과 손짓으로 노인 분을 모셨고, 그 분은 앉으셨습니다. 이 자연스러운 일련의 과정 속에 결여된 그것. 그것은 찰나의, 그리고 최소한의 체온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한 순간이면 충분했을 겁니다. 할아버지께서 눈을 들어 양실짱의 눈과 마주치는 0.001초의 교감. 굳이 미소가 없어도, 말이 없어도, 번개가 반짝이는 순간의, 단 한 차례의 눈 마주침이면 넉넉하고도 남음이 있었겠지요. 슬쩍 할아버지를 돌아보았습니다. 무심히 창밖에 시선을 주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이러한 작은 교감이 얼마나 우리들에게 소중한 것인지, 아주 사소한 것들이 왜 세상에 꼭 필요한 것인지 양실짱은 ‘달리는 버스 2-1’ 안에서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둑을 둘 때,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신지 궁금합니다. 한 판의 바둑을 두는 동안, 여러분은 마주편의 상대와 얼마나 교감을 하고 계시는지요? 하드보일드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얼굴로, 줄담배를 피워대는 동안 단 한 번도 상대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는 그 멋쩍음의 이유를 ‘바둑은 원래 수담인 거여 ….’하고 돌리시는 분들, 많으실 테죠? 꽤 오래 전, 어떤 사람과 바둑을 두었습니다. 양실짱은 바둑을 얼마나 두냐고요? 양실짱의 기력이 궁금하신 분들께서는 지난 굿모닝오로 <양실짱의 비밀기력! 대공개!> 편을 참조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할 듯. -_-; 바둑은 30분쯤 진행 되었고, 결국 양실짱이 돌을 던짐으로써 종국되었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30분 내내 양실짱의 고민이 ‘이 바둑을 어떻게 하면 이길 것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질 것이냐’라는 것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유는 아주 사소한(?) 데에 있었습니다. 바둑이 시작되기 전만해도 오랜 지기를 만난 듯 화기애애하기만 했던 그 자리가 대국 개시와 함께 유격훈련장을 방불케 하는 살벌한 분위기로 돌변해 버린 데에는 정말로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있었지요. 바둑이 진행되는 동안, 우리는 단 한 마디의 말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반상으로부터 시선을 떼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습니다. ‘이기고 싶다! 당신의 대마를 모조리 때려잡고 싶다!’ 그는 온 몸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승부에 대한 열망이 태양처럼 이글대는 눈빛, 꽉 깨문 이빨, 단단하게 조여진 입매, 바둑판이 패이도록 내리꽂는 뇌전과 같은 한 수 한 수! 숨이 막혀 왔습니다. 돈이 걸린 것도 아니고, 명예가 달린 것도 아니고, 그저 반갑게 오랜 만에 만나 바둑 한 수 두자는 것인데, 그는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만난 듯 비장한 모습이었습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동안 내가 저 사람에게 뭔가 못할 짓을 한 것은 아닐까.’하고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는 바둑을 두었지만, 양실짱은 그와의 지난 인간관계에 구멍은 없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되돌아보고 있었습니다. 결국 30분 만에 바둑은 종국되었고, 우리 모두는 기뻐했습니다. 그는 바둑을 이겨서 좋아하였고, 양실짱은 더 이상 바둑을 두지 않아도 되어서 좋아라하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행복해 보였지만, 더 이상 행복하고 싶지도, 또 다시 이런 행복감을 맛보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프로들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기기 위해 젊음을, 돈을, 영혼을 361로 바둑에 바친 사람들이 프로들이니까요. 이겨야 하고, 또 이길 권리가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프로가 아닌 우리들은 조금 달랐으면 좋겠습니다. 옛말에 ‘이겨도 져도 좋은 것이 바둑’이라 하였습니다. 이기면 좋지만, 설사 지면 또 어떻습니까? 정히 마음에 들지 않으면 걷어치우고 다시 한 판 두면 그뿐. 바둑을 둡니다. 가끔은, 상대방의 눈을 바라봅시다. 그래서 수담이 미처 채우지 못한 2%의 모자람을 목담(目談)으로 따뜻하게 채워줍시다. 이겨도, 져도 결국 바둑이란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 테니까요. 오늘도 양실짱은 바둑을 둡니다. 우리들의 바둑이 승부가 아닌, 사람을 남기는 대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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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각파악동 |  2006-09-22 오후 6:18: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양실땅님 글은 너무 좋다..  
통몰라 |  2006-09-23 오전 11:44: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음, 이제 쳐다보지 말아야지 자 너 이제 어떻게 둘래 하는 눈빛으로...  
운영자V |  2006-09-25 오후 4:0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계의 양필봉 이시랍니다. 필봉 화링!  
정말말세 |  2006-09-26 오후 4:3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좋아요. 양실짱 ㅋㅋㅋㅋㅋ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마로니에™ |  2006-10-02 오후 1:42: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양필봉님 글이 너무 좋아서 目談만 해왔는데 이젠 筆談(댓글)도 나누어야 되겠습니다.근데 게을러서 속으로만 "그래 잘썼어.."하고 지나가게 되지요.  
mildwind |  2006-11-01 오후 12:2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양실짱님 오늘도 잘 읽고 갑니다.  
무아귀심 |  2007-01-02 오전 9:4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쳐다봄과 2%의 모자람이라~~~  
무아귀심 |  2007-01-02 오전 9:5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쳐다볼때 고운 눈초리로 바라보면 받는이는 행복함과 포근함을 느낍니다..반대로 쳐다보는 눈초리가 심상치 않을 때는 경계심을 가지게되는게 2% 의 모자람이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白力 |  2007-03-31 오후 1:4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어렵고 젬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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