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자식 같이 키웠는데 섭섭할 때도 많아

-안타까울 때 말고 남의 자식을 키우다 보면 속상하거나 섭섭할 때도 많았을 텐데요.

“솔직히 성격 까다로우면 남의 애들 여럿 데리고 살지 못합니다. 다행이 우린 무던한 편이라 그러구러 넘어갈 수 있었죠. 생색내자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만, 소정의 생활비와 수업비를 받고는 있으나 기숙사식 도장운영은 남는 게 거의 없어요. 강남 비싼 땅에서 집값이 벌써 얼마입니까. 물가도 비싸죠. 지방에 사는 애들이라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있어야 하므로 기숙사를 운영하지만 집세, 물세, 아줌마 인건비 따지면 유지하기에도 벅찹니다.



물가가 올랐다고 하여 중간에 올려 받지도 못합니다. 돈 문제라는 게 좀 그렇잖아요. 8년째 그대로 받는 애도 있지요. 1년간 생활비도 안 내고 간 애들은 양반 축에 속하고요 3~5년 동안 안 내는 애들도 있지요. 몇 개월만 함께 살아도 식구 같은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수업비를 못 내는 아이를 어떻게 야박하게 내보내겠습니까. 권사범은 제자 욕심이 많아서 재주가 있는 애는 무조건 키워야하는 성미지요. 문제는 가능성도 안 보이는데 부모가 나 몰라라 하는 경우지요. 이럴 땐 솔직히 대책이 없어요. 애야 무슨 문제겠어요. 부모가 문제지. 이런 부모들한테서는 좋은 소리도 못 듣습니다. 오히려 더 서운해하죠.”



-사람이라는 게 잘못되면 조상 탓, 잘 되면 자기 덕으로 알기 예사인데 입단한 뒤 나몰라라 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권7단) “내 입장에서 서운한 건 입단 후 도장에 와서 후배들을 위해 자주 바둑을 두어주지 않는 거지. (웃음) 그래도 저들 입단시킬 땐 얼마나 고생했는데…. 스승이 되어서 너 좀 와라, 이럴 순 없는 거고. 그래도 난 운이 좋고 행복한 사람이지요. 애들이 다 잘 되었으니까.”



-스타로 뜬 기사들은 종종 찾아뵙나요?

“세돌이는 후배들에게 자주 밥을 샀고 철한이나 준상이도 타이틀을 땄을 때마다 찾아오고 인사 전화도 잘 하고 부모님들도 고맙다고 인사하시니 보람을 느끼죠.”

유창혁도 제자, 누나라고 불러


권갑용 7단이 후학양성에 나선 것은 83년 잠실에서 수양바둑교실로 처음 문을 열면서였다. 이때 가르친 제자가 지금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시훈 9단이다. 이전에는 권갑용연구실 차원에서 몇몇을 지도했는데 박성수 3단이 고등학생, 박승문 5단이 중학생 때였고 유창혁 9단이 초등학교 5학년 때 가르쳤다. 권7단이 군대에 가기 전의 일이고 그때 유창혁 9단은 박옥주 씨를 ‘누나'라고 불렀다. 박씨는 유9단의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 알 정도로 부모 누나들을 잘 알고 지냈단다. 지금도 유9단은 권7단을 스승이라고 한다.



87년 반포에서 도장+바둑교실 형태로 지도하다 89년부터 본격 도장으로 간판을 달고 후학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요즘은 둘째 딸 효영 양의 뒷바라지를 위해 잠시 바둑교실에서 손을 떼셨다고 들었습니다.

“남의 자식을 거두면서 정작 우리 애들에게 신경 쓰지 못할 때가 가장 미안하고 안타까웠죠. 효영이도 처음엔 바둑을 배웠고 기재도 꽤 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만두더라고요. 한창 사춘기인데 봐주지도 못하고 꼬락서니도 안 되겠다 싶고…. 할 수 없이 아줌마를 고용하고 가정집과 기숙사를 분리하여 따로 살림집을 차렸지만 우리 집에도 애들을 데리고 있게 되고 결국 두 집 살림만 하게 되더군요. 해서 일시 손을 떼고 지금은 골프 공부하는 효영이 뒷바라지에 매달리고 있답니다. 권사범이 힘들어졌지요.”



인터뷰 장소에는 큰딸 권효진 5단과 사위 위에량(岳亮) 4단도 함께 했다. 권효진 5단은 2년 넘게 중국에서 도장을 운영하다 돌아와 남편과 함께 아버지를 돕고 있다.

-중국에서 도장이 꽤 잘 되었다고 들었는데 왜 돌아오셨나요? “가족과 떨어져 사니 힘들어서요. 친구도 없고. 바쁘다 보니 경기에도 못 나가고…. 때마침 아기도 생기고. 차라리 잘 나갈 때 그만두는 게 낫겠다 싶어 아주 귀국했죠.” -남편 위에량 4단이 한국기원 객원기사로 활동하게 되었지요. 사위 사랑은 장모 사랑이라는데 장모 자랑 좀 들어보고 싶군요. 통역 좀 부탁합니다. (위에량 4단) “참말 잘 해주시는 장모님께 항상 감사합니다. 우리를 늘 지지해 주시고 반대하지 않아 더욱 고맙구요. 음식이 무척 맛있습니다. 장모님 밥이 최고입니다.” 기다렸다는 듯 장모도 맞장구를 친다. “식성이 중국사람 같지 않고 매운 음식이든 뭐든 가리지 않고 잘 먹어 예뻐요. 편하고요.”

바둑계의 도로시 딜레이 여사

사위가 장모의 무량한 지지에 고마워하는 까닭이 있다. 권효진 5단이 사연을 설명했다.

“제가 결혼 의사를 밝히고 아빠 엄마와 함께 가족이 노래방에 간 적이 있어요. 이 사람이 아직 테스트를 받던 시기였죠. 이이가 노래를 잘 하는 편인데 목소리가 특히 크답니다. 엄마도 목소리가 크고 통이 크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데 이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보더니 ‘목소리 큰 사람은 사람을 속이진 않는다'며 아빠를 설득하셨죠. 우리 결혼은 순전히 엄마 덕이었죠.”



장인도 슬그머니 한마디 거들고 나선다.

“글쎄 이 친구가 처음엔 내게 막 반말을 쓰는데 기가 차더라고. 그리고 도장 애들한테는 존댓말을 쓰는 게야. 알고 봤더니 내가 애들한테 반말을 쓰니까 그걸 자연스레 배운 거고 애들은 자기에게 존댓말을 쓰니까 애들한테는 그렇게 하는 게 한국의 예법인 줄 알았던 거지. 하하.”



마지막으로 박옥주 씨에게 남편의 지도 비결을 물어 보았다. 25년 가까이 곁에서 지켜보았으니 뭔가 색다른 점을 발견했을 것이다.

“인재를 발굴하는 혜안이 있는 거 같아요. 처음에는 키워봤다가 재주가 없으면 그만 두게 하는데 지도방식이 일률적이지 않아요. 칭찬해서 되는 아이, 윽발질러 되는 아이를 잘 구별하고 그에 맞게 가르치죠. 잘 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