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착 펄먼, 나이젤 케네디, 길 샤함, 미도리, 초량 린….



이들의 공통점은?

생소한 외국인 이름이라고? 그렇다면 아래 한국인 이름을 더 보면 퍼뜩 떠오르는 악기가 있을 것이다.



장영주, 김지연, 이유라….



위 사람들은 세계적인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게 첫 번째 공통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 공통점…. 이들은 모두 도로시 딜레이(Dorothy DeLay, 1916~2002)의 제자라는 점이다.



도로시 딜레이는 줄리어드 음대에서 50년 이상 재직해 오면서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을 길러낸 명교수다. 그녀는 3세 때 이미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신동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연주자로서 무대에 서는 것보다 가르치는 게 더 천직임을 느끼고 하나같이 음악사에 남을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육성했다.



이세돌, 최철한, 윤준상, 원성진, 이영구, 백홍석, 강동윤, 김지석….



이들 프로기사의 이름을 보면 도로시 딜레이처럼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권갑용(권갑용, 50) 7단!

설명이 필요 없는 한국 최고의 프로기사 조련사다. 지금까지 권갑용바둑도장이 배출한 프로기사는 89년 1호 박승문 5단을 시작으로 2006년 입단한 윤찬희 초단까지 국내기사만 41명. 유학하기 전 다듬은 류시훈 9단, 김수준 7단 등 해외기사까지 포함하면 50여 명에 육박한다. (기사 ②편 마지막 도표 참조) 현재 한국기원 소속 기사가 216명. 이 가운데 20%가 권갑용바둑도장 출신이라는 얘기다. 2003년 김지석 군이 입단하면서 권갑용바둑도장 출신 기사들의 총 단위가 100단을 돌파했고 지금은 155단을 기록하고 있다. 도로시 딜레이 교수처럼 권갑용 7단이 이처럼 많은 천재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천재를 발견하는 천부적인 눈과 뛰어난 교수법'이 있었기 때문이다. 토너먼트 기사로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던 권갑용 7단이 보급기사로 혁혁한 족적을 남긴 게 이를 뒷받침한다.

내제자 25명이 한달 먹는 쌀이 세 가마니


천재를 키운 명조련사. 사람들은 여기까지 주목한다. 박수갈채를 보내는 대상은 언제나 무대의 주인공(천재)과 연출자(조련사)까지다. 무대 뒤의 스텝들을 주목하는 관객은 별로 없다.



권갑용 7단의 부인 박옥주(朴玉珠, 50) 씨.



남편이 ‘반상의 명조련사'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무대 뒤에서 궂은일을 도맡아한 협력자이자 권갑용 문하생들의 어머니다. 문하생들을 데리고 살면서 가르치는 바둑도장의 수업 방식을 헤아린다면 박옥주 씨야말로 권갑용바둑도장을 명문으로 자리하게 한 원동력이다.



박옥주 씨를 만난 건 반포동 서래마을 권갑용 7단 집의 철쭉이 만발한 화창한 봄날이었다.  권갑용 7단의 자택이라고는 하나 가정집 개념의 자택일 수가 없다. 도장 기숙사라고 표현해야 정확할 것이다. 방 7개가 딸린 대지 104평에 건평 90평의 2층 벽돌집에는 내제자 25명이 살고 있다. 여기에 바로 이웃해 살고 있는 큰딸 권효진 5단-사위 위에량(岳亮) 4단이 데리고 있는 8명의 중국 문하생과 수시로 들락거리는 외국 유학생까지 더하면 식탁 숟가락만 30개를 훌쩍 넘기기 예사인 대군단이다.



사소하지만, 그러나 평소 궁금했던 질문부터 했다.



-지금 데리고 있는 도장 내제자들만 25명이라니 먹는 게 장난이 아닐 텐데, 한 달 쌀 소비량이 얼마나 되나요?

“호호, 엄청나게 먹죠. 쌀 한 가마니가 80킬로그램인가요? 저희 집 나무 뒤주가 60킬로그램짜리인데 열흘도 안 가 바닥을 보이니 한 달에 세 가마니 가까이 들죠. 한창 자라는 애들이라 영양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부식이며 간식이며 장보는 일도 보통이 아닐 텐데요?

“아이구, 말도 마세요. 장보는 게 가장 힘들었죠. 음식 만드는 거며 밥상 차리는 것도 혼자 다 하다가 애들이 늘고 힘들어지면서 뷔페식으로 바꿀 수밖에 없었죠.”



-어린 애들이 많을 텐데 빨래는 어떻게 하나요?

“아줌마를 안 쓸 때는 다 제가 했죠. 그때는 그 많은 애들 양말부터 팬티까지 하나하나 다 알아 개켜서 각자 서랍장에 넣어주었다면 믿으시겠어요? 아줌마를 쓰면서부터는 빨래를 해놓으면 본인이 가져가게끔 바꾸었답니다.”

2003년 12월 12일 팔래스호텔에서 거행한 권갑용바둑도장 100단 돌파 기념식. 이때는 총 33명의 프로기사를 배출했다.

스승의 양주를 꿀꺽한 이세돌


-애들이 모여 살다 보면 별의별 녀석들이 다 있었을 텐데?

“내 손을 거친 애들이야 다 기억에 남죠. 음…, 개중 (백)홍석이가 기억에 남네요. 먹는 걸 무척 밝혔지요. (웃음) 그런데도 희한하게 살이 안 찌는 거에요. 그 또래에서는 키가 좀 작았고 비쩍 말라 별명이 ‘가시'였어요. 권사범이 과일을 좋아해서 냉장고에 과일을 놔두면 남아나지를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추적을 해보면 꼭 홍석이가 걸리는 거에요.

그런데 걔가 성격은 또 그만이에요. 하여간 무슨 일이든 시키면 “예!” 하고 대답 하나는 참 잘 하는데 도대체 실전에 옮기지를 않아 야단도 많이 들었지요. 호호. 휴지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꼭 가구들 사이 구석진 틈에 끼워 넣어 많이 혼났지요.”



옆에서 권갑용 7단도 거들고 나선다.

“하하. 어디 과일뿐인가. 한번은 손님 모셔 놓고 크게 망신 당한 적도 있었지. 녀석들이 양주를 몰래 훔쳐 먹고선 그 안에 물을 채워 놓았던 게야. (이)세돌이가 많이 먹었지. (권)오민이도….

세돌인 엉뚱한 데가 있는 데다 호기심이 많았고 오민이는 감수성이 예민해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며 눈물을 흘리며 시를 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