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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시간연장책이 부른 패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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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시간연장책이 부른 패착!
| 최진용 2007-05-26 오후 08:08 [프린트｜스크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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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바둑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수식어로 '돌부처', '기다림', '끝내기의 화신' 등을 꼽을 수 있다. 피 말리는 막판 초읽기에 몰리면서도 신기에 가까운 끝내기 솜씨는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 않았던가.
허나 어느새 그런 말들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최근에는 오히려 끝내기까지 가지 않으려는 모습을 더 자주 보인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초읽기에 몰리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만큼 체력이나 정신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증거가 아닐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제41기 KT배 왕위전 도전5번기 제1국
백: 윤준상 6단(도전자)
흑: 이창호 9단(왕위)
장소: 중국 쓰촨성 청두
날짜: 2007년 5월 25일
결과: 240수 끝, 백 불계승
장면 (심상치 않은 기운)
이창호 9단은 해외 대국을 특히 싫어한다. 우선 비행기 타는 것부터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가급적 비행기 대신 기차를 이용하고 있다. 이번 왕위전처럼 외국에 가는 경우만 어쩔 수 없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흑의 이창호 9단이 조금 앞선 가운데 맞은 종국. 큰 변화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이다. 세 불리를 느낀 도전자 윤준상 6단은 백1로 끊어 변화를 모색해 본다. 흑2로 몬 이상 백11까지는 거의 외길과 같은 수순. 그런데 돌연 중앙으로 발길을 돌린 흑12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생겨나고 있었으니….
참고도1 (지켜서 충분)
<장면> 흑12는 흑▲ 두점을 능률적으로 연결하려는 의도. 물론 나쁘지 않은 수다. 허나 지금은 흑1에 이어도 충분했다. 이것으로 흑▲는 끊길 염려도 없고, 바둑을 이창호 9단이 무난히 이길 수 있었다. 전성기의 이창호라면 충분히 그런 계산서를 뽑아냈을 것이다.
실전진행1 (시간 연장책이 부른 승부수)
도전자 윤준상은 중앙을 받기 전에 먼저 백1로 절대선수를 행사한다. 이 무렵 두 선수는 막판 초읽기에 몰려 있었을 터. 따라서 각자 주어진 2시간을 다 써서 깊은 수읽기를 하기가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흑4는 끝내기를 겸한 응수타진이기도 하지만 시간 연장책으로 둔 수로 보인다. 흑6과 흑8은 확실한 시간 연장책.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당연히 받아줄 것이라 여겼던 흑8에서 윤준상은 과감히 손을 빼 백11로 반상을 흔들어버린다. 도전자가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22집이나 되는 좌상귀 현찰을 내버려 둔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었다.
참고도2 (중앙 잡히면 바로 역전)
흑1로 좌상귀 백△를 '꿀꺽' 삼키는 것은 백이 잡을 경우와 비교할 때 22집 가치다. 허나 지금은 중앙이 훨씬 크다. 백2로 흑▲ 두점이 백의 수중에 떨어지면 여기서 바로 역전이다. 백◎가 승부수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흑이 중앙을 받아야 하기에 지금 좌상귀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실전진행2 (흔들리는 이창호, 윤준상의 역전)
이창호 9단은 예전과 달리 초읽기에 몰리는 것을 염려한다. 한국바둑리그에서도 초반에 빨리 두는 이유가 주어진 10분의 생각시간이라도 아끼기 위함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런 염려는 두려움으로 이어지고, 심지어 좋은 바둑마저 그르친다는 데 있다. 이 바둑에서도 도전자 윤준상이 과감히 던진 승부수에 초읽기까지 몰린 이창호는 확실히 흔들리고 있었다.
이창호는 흑1, 3으로 끊고 뻗어 중앙을 처리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흑3이 최종 패착이었다. 흑13까지 중앙에서 타협하는 과정에서 애초 손을 뺐던 좌상귀를 윤준상이 지켰고 귀중한 선수마저 차지해 큰 곳 우변을 달렸다. 중앙을 약간 벌어들인 만큼 백의 역전이 분명하다.
참고도3 (흑이 이기는 길)
흑1로 끊은 점까지는 괜찮다. 여기서 흑은 중앙을 더 두지 말고 22집짜리 좌상귀를 접수할 때다. 요석 흑▲ 두점만 백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으면 백은 이기지 못한다. 백4 봉쇄에 흑은 탈출로가 마련되어 있어 염려할 게 없다. 수순만 좀 길 뿐 과정은 대체로 쉬운 편이다. 흑이 통과해야 할 마지막 관문은 백14. 위의 넉점을 버리고 연결하는 그만이다. 이곳에서 잃은 실점은 좌상귀 접수로 충분히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다. 이것이라면 흑이 역전 당할 일은 없다.
참고도4 (간명한 선택)
앞서 보여드린 <참고도3>이 너무 복잡하다면 좀더 간명한 길도 있었다. 흑1로 백2를 유도하는 것은 당연. 이때 흑3으로 되 몬다. 흑은 5까지 늘어두는 것까지만 처리하고 좌상귀를 챙기면 그만이다. A, B가 흑한테 선수이므로 중앙에서 끊기는 일은 절대 없다.
이창호 9단이 이런 정도 변화를 못 읽어냈을 리는 만무하고, 아마도 이 변화에 대한 자신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장차 백C로 막히는 수와 백D로 끊기는 단점 등을 고려할 때 충분히 불안심리로 작용할 수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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