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의 ‘농심배 대첩’이 끝난 지 1주일이 넘었지만 당시 커제의 과격 발언 후유증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바둑 국가대표팀 목진석 감독이 이 문제에 대해 입장 표명 필요성을 제기한 데 이어 4일 양국 관계자 화상회의가 열리는 등 어수선한 한 주를 보냈다.
문제가 됐던 바둑은 지난달 25일 온라인으로 열렸던 제23회 농심배 국가대항전 13국. 커제는 신진서에게 완패한 직후 중국판 유튜브 빌리빌리(bilibili)에서 30분가량 생방송을 진행했는데 상대의 치팅(cheating) 가능성을 암시하는 발언을 몇 차례나 했다.
가장 문제가 된 것은 ‘화장실’ 발언이었다. 커제는 ‘지인의 전언(傳言)’임을 전제로 “신진서는 나의 77번째 수를 본 뒤 착점하지 않고 화장실에 갔다”며 “상대가 두기 전 다녀와야 하는 규칙을 어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커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었다. 대국 영상 확인 결과 신진서는 백 76을 둔 뒤 이석(離席)했고, 커제가 흑 77을 두고 나서 54초 후 복귀했음이 밝혀졌다. 자리에 돌아온 것은 76을 둔 지 1분 4초 만이었고, 5분 42초 뒤 백 78을 착점했다.
커제는 신진서의 착점들에 대해 감탄하는 듯한 표현을 여러번 했다. 특히 백의 108번째 수에 대해 “AI 절예가 추천하는 수로 나는 상상도 못 한 착점이다. 너무 놀랍다”란 말을 반복했다. 또 자신의 SNS엔 “알파고보다도 강하다. 이제 신진서의 상대는 없다”고 했다. 인공지능에 대한 언급을 통해 신진서의 초능력(?)을 의심하는 뉘앙스였다.
이 방송이 온라인 뉴스로 급속 전파되는 것을 본 신진서는 상당한 충격에 시달렸다는 후문이다. 이튿날 일본 이치리키와의 최종전서 막판 고전한 것도 전날 밤 분노로 거의 잠을 못 잔 탓이었음이 훗날 밝혀졌다. 일부 중국 기사는 커제보다 더 심한 말을 쏟아내 신진서를 힘들게 했다고 대표팀 코치들이 증언했다.
목진석 감독은 한때 중국 측의 반성을 촉구하는 성명서까지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4일 오후 양국 바둑협회 화상회의로 대체됐다. 한국 측 양재호 사무총장의 유감 표명에 화셰밍 중국바둑협회 부주석은 “우리 측 공식 입장이 아니다. 커제가 개인적으로 행동한 것”이라며 “발언한 기사들에게 주의를 주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태의 중심에 놓인 신진서는 중국 측의 근거 없는 험담과 비아냥 속에서도 의연하고 품위 있게 대처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그는 한국의 우승이 확정된 26일 회견 때도 “어제 커제 9단의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것 같다”면서 “유명 기사일수록 언행을 조심해야 한다. 의도한 바가 아니더라도 중국 팬들이 다른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행동은 삼가야 한다”고 충고했다.
커제의 신진서를 향한 거친 언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둘의 첫 결승 대결이던 2019년 제4회 바이링배서 승리했을 때 “신진서는 아직 서툴고 부족하다”고 말해 한국 팬들의 격분을 샀다. 2020년 11월 제25회 삼성화재배 결승전 승리 때는 “신진서는 내게 계속 우승을 안겨주는 고마운 기사다. 그는 좀 더 노력해야 한다”며 노골적으로 조롱해 상처를 주었다.
신진서가 현역 세계 2관왕에 올라서고 중국 기사 상대로 23연승을 달리면서 중국 바둑계의 신진서 견제도 더 높아져가는 추세다. 양재호 사무총장은 “세계 바둑 발전이란 공동 목표를 향해 양국이 서로 노력하자고 제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바둑 패권을 둘러싼 두 나라 대립 분위기는 쉽게 호전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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