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승부(단편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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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승부(단편3-2)
2022-05-07 조회 302    프린트스크랩

스님은 멀거니 서 있는 정수를 쳐다보며 대견한 듯이 말했다.

앉거라, 꼭 장승 같구나.”

 정수는 스님 앞에 꿇어앉으며 어리광을 부리듯이 말했다.

스님, 제가 그렇게 커 보이십니까?”

 스님은 애잔한 눈길로 정수의 얼굴을 어르며 받았다.

그래 네 어머니를 많이 닮았구나. 참 세월도 빠르지…….”

정수도 스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스님, 제가 어머니만 닮았습니까?”

 그러자 스님은 화들짝 놀라며 당황하다가 바둑판을 당기며 얼버무렸다.

그러면 이제 슬슬 시간을 죽여 볼까.”

 정수는 여전히 스님 얼굴을 바라보면서, 흑 돌을 하나 집어 우 상귀에 살며시 갖다 놓았다. 서로 양화점으로 시작된 포석은 불과 10여 분 만에 30여 수가 진행되었다. 이제부터가 어렵다. 100여 수가 넘어가자 집의 윤곽과 흑백의 경계가 드러나고 있었다. 꼭 이겨서 스님의 그동안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 스승을 이기는 길이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었다. 이제까지 물 흐르듯 자연스레 진행되던 판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자 흑 돌끼리 서로 엉키고 있었다. 그것은 힘의 과다한 낭비로 아군끼리 충돌하고 있었다. 백은 시종일관 흐름이 일정하고 고요한 호수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목산을 해 보니 이미 집정도 뒤처져 있었다.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 좌 상 귀에서 변으로 발전한 백 집에 침입하였다. 어딘지 허술해 보였고, 두 집을 내고 사는 데는 성공을 하였으나, 중앙을 제압당해 미래는 불투명하였다. 덤이 없는 바둑이라 약간의 희망이 있을 듯도 싶었다. 이제껏 날 일자 한 칸, 일 립 이전, 단순하다면 단순한 초식으로 일관하던 백은 판 전체를 조여 왔다. 숨이 탁탁 막혔다. 호수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던 백 진이 살아서 움직이는 하나의 생명체인 듯 꿈틀대기 시작했다. 용트림을 하는 듯 무서운 힘의 압박을 느끼고, 정수의 가슴은 물결처럼 흔들렸다.

 상대가 강하게 나올 때는 두 가지의 방법이 있다. 물러나서 움츠렸다가, 상대가 힘 빠질 때 역공한다. 더욱 강하게 받아친다. 그러나 정수의 군사들은 저마다 제각각 뿔뿔이 흩어져 힘을 모으기에는 무리였다. 제각각 도생하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 베트콩처럼 땅을 파고 두더지 작전으로 나오자, 백은 승부를 서두르지 않고 더욱 두텁게 장거리 경주에 대비했다. 전투는 소강상태였다. 벌써 끝내기 단계에 이른 것이었다. 진짜 실력은 끝내기에 달려있다. 끝내기라면 연구생 시절 부단하게 연마하여 거의 완벽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승부수가 성공을 하여 목산을 하여보니 두 집정도 흑이 두터웠다. 이럴 때 더욱 판을 세밀하게 쪼개어서 백에게 승부수를 던질 여유를 주어서는 안 된다. 이제 기나긴 여정의 끝이었다. 스님은 고요히 가라앉아 있었다. 승부를 초월한 편안한 얼굴이었다.

다 두었구나. 계가를 해 볼까.”

 공배를 다 메우고 계가를 하니 흑은 48, 백은 46집이었다. 스님은 대견하다는 듯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두 집 차이군, 그동안 바둑 실력이 조금 는 것 같구나. 그래, 이만하면 국수전에서 우승도 가능하겠다.”

스님은 만족한 듯 넉넉하게 웃으며 말했다.

오늘 바둑은 흑이 엷었지만, 그 엷음을 보완하여 잘 둔 바둑이구나. 크게 지적할 것이 없어. 그래, 네 아버님은 직장에 잘 다니시냐."

, 학생들 잘 가르치시고, 요즈음은 한용운 시인의 시에 관해서 틈나는 대로 연구하고 계셔요. 여동생하고 같이 생활하고 있어요.”

음 홀아비 생활이 쓸쓸하겠구먼. 방금 대구의 도솔사에서 연락이 와서 내가 거기에 좀 다녀와야겠다. 너는 며칠 수행하다가 가거라. 식사준비는 아랫마을 보살들이 와서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내 다녀올게. 다음에 보자꾸나.”

 정수는 합장하고 스님을 배웅했다.

정수는 스님의 서재에 들어가 여러 가지 서적들을 바라보았다. 천여 권의 책들이 책장에 빼곡했다. 그중 눈에 들어오는 책이 하나 있었다. 고흐의 그림책이었다. 겉표지에는 고흐의 자화상이 그려져 있고, 강한 눈빛의 고흐가 구레나룻을 기르고 중절모를 쓴 모습으로 나와 있었다. 정수는 책장을 넘기고 목차를 보았는데, 거기에 노트 반장 크기의 메모지에 스님의 필체로 쓴 글씨가 노랗게 변색된 종이에 깨알같이 적혀있었다.

-바둑판을 대하면 점점 두려운 생각이 든다. 타이틀을 다 따고 전관왕이 되었지만, 비어있는 공간에 절대적인 한 수. 두지 않으면 안 되는 한 수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진리에 이르지 못하는 지리멸렬한 승부는 별 의미가 없다. 앞으로 나이가 들면 내가 노 국수들로부터 타이틀을 빼앗아왔듯이 젊은 세대에게 나 또한 타이틀을 빼앗길 것이다. 19로의 한정된 공간에 갇히고 싶지 않다. 나의 인생 모두를 걸만한 가치가 과연 바둑 속에 있기는 있는가? 진리를 찾아 떠나야 한다.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 도와 학문을 닦으면, 내가 염원하는 삼라만상의 진리를 찾을지도 모른다. 정상을 정복했지만, 이것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제 백일 된 내 아들과 아내는 어떻게 될까. 그동안 기사생활 해서 모아놓은 돈으로 생활은 되겠지만 장구한 세월을 외로이 살 것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구나. 오늘 새벽에 집을 떠나기 전에 아내에게 개가를 권하는 메모를 남겨야겠다. 곤하게 잠들어 있는 아내와 저 어린 아들을 위해서 주체할 길 없는 슬픔을 안으로 삼켜야 한다. 더 이상 눈물이 앞을 가려 쓸 수가 없다. 일도一道

 메모지에는 눈물로 보이는 누런 자국이 여러 곳에 얼룩이 되어 남아있었다. 젊은 시절 스님의 고뇌가 마음으로 전해져 가슴에 찡한 통증이 왔다. 동시에 마음에서 까닭 없이 한 가닥 의혹이 일어나고 있었다. 예전과는 다르게 좀 전에 스님과 바둑을 두었을 때, 스님이 자신에게 보낸 애잔한 눈길, 물속에 어른거리던 어머니와 스님의 모습. 왜 아버지의 모습 대신 스님의 얼굴이 겹쳐서 보였을까, 정수는 혼란한 마음에 책을 덮고 서재를 나와 버렸다.

 

 정수가 일곱 살 때 어머니는 아들에게 재미있는 놀이를 가르치려고 찾던 중, 바둑교실이 주변에 있음을 알고는 아들을 그곳에 맡겼다. 어린 정수는 마치 고기가 물을 만난 듯 바둑 놀이가 너무나 좋아 밥 먹는 시간도 잊을 만큼 바둑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때 옆집에 전세로 들어온 삼십 대 중반인 버스운전사 아저씨가 12급을 두었는데, 정수는 처음에 25점을 놓고 두었으나, 일주일에 한 점씩 반년 뒤에는 백을 빼앗아 버렸다. 어린아이에게 백을 빼앗긴 어른은 분을 못 이겨 판을 엎고 말았다. 그러고도 이튿날이면 무엇이 아쉬웠는지 어김없이 정수를 불러와 바둑을 두었는데, 얼마 안 가서 어른이 4점을 놓고 두는 비참한 신세를 만들어 버렸다. 정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프로가 운영하는 도장에서 본격적으로 바둑을 공부하였다. 5년 정도 공부를 하였는데, 더 이상 지방에서 적수가 없어 서울의 이모 댁으로 혼자 바둑유학을 갔는데, 그때가 중학 1년이었다. 이미 아마 5단 이상의 실력을 닦았으나 프로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2 때부터 입단 대회에 나갔으나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마냥 세월만 흘러갔다. 3 62패를 하여 최종전에서 떨어진 것이 최고의 성적이었다. 영철이와 마지막 입단 결정 국에서 한 집 반 차이로 아까운 판을 놓쳤던 것이었다. 그때 입단한 영철이는 지금 프로 무대에서 본선만 무려 5개나 올라가는 쟁쟁한 기사가 되었다. 겨우 한 집 반 차이로 인생의 가는 길이 확연하게 바뀌었다. 음지와 양지, 양지는 항시 사람들이 들끓고 매스컴도 타지만, 음지의 그늘에서 도약을 꿈꾸는 아마추어들은 내일에 대한 어떠한 기약도 없이 시들어가고 있었다. 전국의 바둑 수재들만이 모인다는 연구생 조에서 항시 112명도 유지하기가 쉽지 않았다. 전국에서 모인 바둑 영재들 100여 명이 대기하고 있는 예비조에도 들어가려면 경쟁이 치열했다. 남녀 합해서 프로 200여 명이 있고, 프로로 생존하려면 그 실력이 미미하지만 앞서야 했다. 중학교 1학년부터 연구생에서 나올 때까지 매일 정수는 학교에서 오전 수업만 하고 도장에 와서는 밤늦게까지 바둑공부를 했다. 정수는 고2가 되면서 바둑에 엄청난 회의를 느끼고 마음속으로 방황했다. 그날 원생들과 둔 바둑 중에서도 억울하게 진 바둑으로 정수는 날밤을 새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특히 유리한 판을 지켜내기가 쉽지 않았다. 유리하면 부자 몸조심하게 되고, 추위를 곧잘 타게 되어 역전을 허용하게 되곤 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도장에서 공부를 하고, 토요일 하루는 집에서 휴식을 취한다. 일요일은 서울 홍익동에 있는 한국기원에 아침 9시까지 나가서 오후 6시까지 바둑을 두는데, 각자 제한 시간 1시간에 30초 초읽기 세 번이었다. 하루에 두 판정도 두었는데, 매달 각 조에서 성적이 가장 뛰어난 두 명은 상위 조로 올라가고, 낮은 두 명은 바로 밑 조로 내려갔다. 요즘은 일 년간의 성적을 통틀어, 연구생 중에서 가장 내신 성적이 뛰어난 한 명은 추천으로, 입단대회를 거치지 않고도 프로가 되었다. 입단대회가 아닌 하루하루가 입단대회나 다를 바 없었다. 이런 제도가 있었기에 연구생 112명은 이미 입단하기 전에 프로 4단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프로 최강도 이들을 선으로 접기에는 무리가 간다는 소문이었다. 피를 말리는 나날이었다. 십 대에 이미 국내의 최고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인간 인내의 한계를 시험당하는 모르모트였다. 정수는 만 18세를 여섯 달 앞두고, 한국기원 연구생을 스스로 물러났다. 연구생 시절 가끔씩 다녀왔던 현암사로 가서, 보고 싶었던 책을 마음껏 읽고, 반년 간 머물렀던 적이 있었다. 그때 바둑책은 한 권도 보지 않았고 생각조차 하기 싫었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가, 문득 어머니의 손을 잡고 처음에 바둑교실 가던 생각이 났었다. 고사리 손을 한 꼬마들이 가부좌를 틀고, 작은 손으로 바둑알을 하나씩 하나씩 진지하게 갖다 놓는 그들의 눈빛은, 호기심과 의연함으로 빛나고 있었음을 지금도 또렷이 기억한다. 정수는 즉시 판을 꺼내어 첫수를 천원에 놓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주의 중심이 있고, 그 주변에 8개의 행성이(화점) 돌아가고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지구란 조그만 별에서 살고 있었다. 어쩌면 바둑은 내 인생의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 단지 내가 가야 할 곳을 잘 가도록 이끌어 주는 단순한 길잡이라면……?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가장 잘 알고 잘 사귄 그 길잡이의 손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래 가자. 아직은 가장 멀면서도 도달할 수 있는 목표이므로, 풍랑을 만난 배가 좌표를 잃고 바다를 헤맬 때 만난 등대가 정수에겐 바둑이었다. 정수는 연구생에서 물러나 새로운 목표를 정했다. 이제는 국수전이다. 그 전에 마법의 공주를 만나 진 빚을 갚는 게 순서일 것이었다.

 

그는 예정보다 이틀이나 먼저 절을 떠나 부산역에서 경부선 열차를 탔다. 차창 밖으로 플라타너스가 바람에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갔다. 기차 안은 평일이라 그런지 띄엄띄엄 빈자리가 눈에 띄었다. 창밖에 한 여자의 실루엣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마법의 공주로부터 메일이 와 있을까. 와 있다면 무슨 내용일까. 과연 그녀는 나의 도전에 응답을 해올까. 정수는 맥주 한 캔을 빈속에 들이부었다. 잠시 후, 얼굴이 달아오르며 나른한 잠 속으로 떨어졌다.

 밀밭이었다. 수많은 새떼들이 밀을 쪼고 있었다. 훠이훠이 이놈의 새떼들아 물러가라. 정수는 하얀 돌을 주워 새들에게 던졌다. 그러나 새들은 꿈적도 않고 그가 애써서 가꾸어 놓은 밀을 포식하고 있었다. 일순간에 밀밭은 간데없고 새까만 새떼가 들판을 뒤덮고 있었다. 새들은 밀알들을 다 먹고 난 후 그를 노려보았다. 저 수많은 눈 들 굶주린 눈들. 그는 새들로부터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숨이 넘어가도록 힘겹게 달리다가 돌부리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꿈이었다. 제기랄, 꿈은 반대라 했는데 개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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