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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6)/ 추사(秋史)를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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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6)/ 추사(秋史)를 알고 싶다
2008-06-16     프린트스크랩

 

  

현묘한 이치 이곳에 있으니 

들판의 여우 속이는 것이라 믿지 마라.

승패에 먹은 마음 없고

지고 이기는 것 스스로 알기에

돈을 걷어 먹고 마시며 한판 대국을 벌이니

날을  나누어 곁에서 즐기며

나는 술을 청해 마시도다.

 

추사 김정희가 쓴 바둑에 대한 시다. 이 절세의 인물은 바둑을 노래하며 조금은 저어하는 감정을 드러낸다. 바둑이 현묘한 사술(?)로 시대의 반시론을 받고 있던 탓일까. 추사는 이 시 외에도 10여 편의 바둑 시를 더 남기고 있다. 

조선의 후기를 살던 추사, 다산, 낙하생, 초의 등이 서로간의 지인지감을 느끼고 시와 학문을 교류했던 것은 문사철을 최고의 덕목으로 알았던 조선 시대의 국풍의 영향이다. 

식자들은 시를 알아야 했고 주역을 알아야 했으며 사기(史記)를 읽고 두루 펼쳐낼 수 있어야 했다. 문장과 철학과 역사에 해박한 경지가 식자들의 수준을 갈랐고 이 수준의 차이로 조선시대의 전 식자층의 서열이 정해질 정도였다. 다산은 이 속에서 우뚝했다. 다산이 강진에 유배를 와 있을 때 전라 경상도의 식자들이 그를 주목했고 그와 교류하기를 소원했다. 다산은 몰락한 식자였지만 당대의 세도 문벌인 노론의 사족들의 관심을 끌 정도로 대단했다. 노론 사족의 대표 주자가 추사 김정희다.

추사는 다산의 아들인 학연의 연배로 다산과 나이 차가 많았지만 학문의 장에서 구별을 두지 않았던 다산의 관심으로 교류를 갖게 된다. 그들 사이에는 초의까지 끼어들어 남도의 전설이 된다. 추사는 시서화 삼절이다. 문장 서예 그림 등의 분야에서 천재적인 기질을 발휘하여  당시대 한중일 삼국에 알려진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추사는 고단한 삶과 여건으로 고생하던 위항의 선비들과는 달리 노론 계열의 경화사족으로 일찍부터 조정의 주목을 받고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추사가 과거에 급제를 하고 얼마되지 않아 순조의 명을 받고 충청우도 암행어사로 발탁되어 활약을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추사는 1826년 6월 '충청우도암행어사서계별단'이란 긴 제목의 보고서를 순조 일성록에 남겨 놓고 있다. 추사는 6개월여의 암행어사 활동을 통해 충청우도에 만연한 사회적 부조리를 강력하게 지적 하고 군수 한명을 본보기로 파면을 유도하여 실제로 그렇게 만든다. 

추사가 본 당대의 사회상은 부조리 일색이다. 이미 문란해진 삼정(군역 세금 토지)과 삼정의 문란을 부추기는 악질적인 지방 토호들과 관리들을 고발하고 있다. 그러나 추사의 고발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이미 부정부패는 조선의 고질병이 되어 있어 있던 탓이다. 그런데 추사는 이 보고서에서 흥미 있는 건의를 하고 있다. 안면도를 절개하여 조운의 편의를 도모하자는 안면도 운하 계획을 검토하자는 것이다.

안면도는 경상 호남 지방의 곡물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가장 중요한 해로상에 있고 특히 안면도 외해는 파도가 높아 수많은 조운선들이 침몰하는 사고가 빈발하여 고려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안면도 운하의 필요성이 지적되어 온 곳이다. 중종 연간은 실제로 상단한 진척을 보이다가 중지한 사실도 있다. 추사는 이 운하의 조속한 착공을 건의하고 순조 또한 지대한 관심을 갖고 검토를 한다. 그러나 더이상은 논외다. 추사가 간 지 150년 충청도청은 안면도운하 계획을 세우고있다. 조금 더 두고볼 일이지만 추사의 생각이 현실로 나타나기를 바란다.

추사는 결과적으로 이 암행어사 시절 탄핵한 지방관의 재탄핵을 받고 아버지 김노경이 실각하고 추사 자신도 얼마후 일단의 측근들과 귀향을 가게 된다. 귀향이 결정되던 날 함께 귀향을 간 사람이 한명 더 있으니 이 사람이 바로 조희룡이다. 조희룡은 필자가 이 땅의 최초의 바둑평론가라 말한 호신외기를 쓴 사람이다. 이 날 추사는 북청으로, 조희룡은 전남 임자도로 남북행을 떠나게 된다.

추사는 지방관을 탄핵한 이후 또 한사람을 탄핵한다. 그가 바로 심상규다. 그는 천생오태사(天生五太史)로 칭하던 정조의 다섯 신하 중의 한명이다. 정조에게는 김조순 남공철 심상규 이만수 서영보라는 최고(?)의 측신이 있었고 그들이 정조사후 조선정치를 이끌고 있었다. 추사는 아버지 김응로의 정치노선에 부합하여 순조의 아들인 효명세자를 지지하며 노론의 중심을 공격하다가 효명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몰락한다. 아버지 김응로가 '전권사간신'으로 지목되어 노론의 철퇴를 맞은 것이다.

조희룡은 추사의 심복이었던 듯하다. 추사의 경제적 도움을 받아 참모로 학문적 동지로 함께 한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이후로 추사는 다시 벼슬에 나가지 못한다. 추사가 남긴 바둑시는 모두 이 시절의 작품이다. 추사의 바둑 실력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알려 주는 자료는 없다. 다만 지켜 보면 판세를 알 수 있는 정도였던 듯하다.

 

(승정원일기 정조11년 7월23일)

上曰, 諸執事入侍。賤臣承命出傳, 贊禮徐有隣, 典祀官金魯慶·洪樂淵, 執禮宋翼孝, 大祝尹行任, 以次入侍。行晝茶禮奠酌禮.

(순조실록 26년 6월25일)

乙亥/忠淸右道暗行御史金正喜進書啓:

論瑞山郡守韓用儉, 禮山縣監李溟夏, 韓山郡守洪羲錫, 魯城縣監李時在, 泰安前郡守許晟, 保寧前縣監宋在淳, 庇仁縣監金遇明, 靑陽縣監洪逸淵, 鎭岑縣監黃䆃, 結城前縣監曺錫駿, 藍浦前縣監成達榮, 前水使尹相重等不治狀, 竝分輕重勘罪。 別單言: 軍田糴三政, 拯米白徵, 安眠島松政, 安興掘浦魚鹽船稅等弊。

令廟堂。 從長採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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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 |  2008-06-17 오후 6:00: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당진으로 고고....  
팔공선달 나에게 연락하고 가렴...^^*
후지산 |  2008-06-17 오후 6:55: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당진에 뭐가 있나요? 암행어사 김정희 특이한 어감이네요.  
은선도 |  2008-06-27 오후 11:25:5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추사 고택은 당진 합덕과 이웃한 예산 고덕에 있음.  
본ㅂㅂㅂㅂ |  2008-07-04 오후 3:35: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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