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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5)/ 정조 이산(李蒜 ) 바둑을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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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정원(5)/ 정조 이산(李蒜 ) 바둑을 노래하다
2008-06-01     프린트스크랩
 
조선의 왕이 들려주는 바둑 노래


정조 2년 10월 14일. 

역사학자들은 영정조 시대를 조선의 르네상스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조선의 백성들에 있어 영정조 시대라 해서 별다른 감흥이나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영정조 시대에 특별히 백성들이 잘먹고 잘 살았던 것은 아니란 말이다.
역사는 영정조 시대에 이미 민의의 분노 분출과 민의를 억세게 억눌러온 권력의 퇴보현상을 나타낸다. 그것은 조선이란 나라의 붕괴의 단초였다. 어떤 현명한 군왕이 나와 별의별 제도를 다 동원해 보아도, 일부 기득권층의 행복과 대다수 하층민들의 가난과 질곡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현실을 해결하지 못했으며, 이에 당면한 사회가 혼돈에 빠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조선의 가난은 고질적인 것이었다. 조선의 가난은 세종대왕 때도 성종 때도 마찬가지다. 영정조 시대라고 해서 특별히 부강했던 것이 아니다. 조선의 28대 군왕들 중 한 사람이라도 나라가 부강했던 적은 없었다.

정조는 조선 28명의 군왕들 중 가장 학자에 가까운 군왕이었던 것은 맞다. 아니 당대의 최고 학자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정조는 25세의 역강한 나이로 군왕이 되었다. 정조는 오랜 세손 생활과 특유의 독서욕과 학문의 습득 능력으로 역강한 나이에 당대의 학자가 되어 있었다.

정조는 4살 때(1755) 남유용으로부터 '소학초해'를 배우고 다음해 '서지수' '김양택'으로부터 '동문선습'을 배웠다. 소학초해와 동문선습으로 기초적 한문을 습득한 정조는 왕세손이 된 후 홍봉한과 당대의 산림의 영수 '김원행' '송명흠'으로부터 본격적인 학문을 배우게 된다. 홍봉한 김원행 송명흠 등은 이이-송시열-이간으로 이어지는 노론 낙론계의 학자들로 정조 또한 은연 중에 노론 낙론의 학풍에 젖어들게 된다.

정조는 1762년경에 효경, 소학, 논어, 맹자, 시경을 독파하고 사단칠정에 대한 이해를 얻는다. 나이 11-12세 때다. 정조는 18세가 되던 1772년부터 스스로 저술 활동에 나설 정도의 학문의 깊이를 얻고 삼비, 오전, 구구, 팔색, 구류, 백가를 모두 통독, 왕위에 오르던 25세 때는 당대의 학계를 주도할 만한 학자의 반열에 올라선다.

정조가 자신의 일기인 일득록에 스스로 문왕의 후계자요 조선 산림의 영수로서 공맹의 법통이 자신에게 있다고 자신할 정도의 자부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이것이다.

정조가 조선의 군왕들 중 바둑에 가장 관심이 적었던 인물임은 필자의 칼럼 [조선사바둑전]에서 피력한 바 있다. 아울러 정조가 바둑의 문외한은 아니었다는 말도 한 바 있다. 승정원일기 속에 정조는 바둑을 몇번 언급한다. 자잘한 정사의 설명 속에 나온는 말이다. 그리고 정조는 바둑시를 한 수 남기기도 한다. 홍제전서에 수록된 시다.

碁.

하얀 댓자리 붉은 주렴에 해는 더디지네.
땅땅 바둑돌 놓는 소리 도끼자루 썩는 시간일세.

높은 누각에 손님 모시고 꽃그늘은 고요하고.
만가지 일들도  한판 바둑에  달렸구나.

(銀簟紅簾午景遲/丁丁落子爛柯時/高樓留客花陰靜/ 萬事輸贏一局棊)

정조는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 했다. 월인천강(月印千江) 즉 달이 천개의 강에 비추듯 자신은 천개,  만개의 강을 비추는 세상의 주인이란 것이다. 지독한 자기 확신이며 오만이다.
위의 시는 바로 그 사람 정조가 지은 바둑시다. 제목 또한 '바둑(碁)'이다. 조선의 군왕들, 아니 고려 삼국을 통털어 바둑을 제목으로한 노래를 지은 사람은 정조가 유일하다.

 

(원문)

又啓曰, 今番鞫獄諸賊之情節, 俱極巧惡, 而減死定配罪人德秀, 以逆宦國來之子, 德泰之弟, 與志恒綢繆之狀, 綻露無餘, 而前後嚴訊, 抵賴不服, 究厥情狀, 萬萬痛惡, 酌處之命, 雖出於好生之德, 揆以獄體, 不可不窮核得情。請減死定配罪人德秀, 亟令王府, 更加嚴鞫, 夬正王法。又啓曰, 鄭履煥, 特一龜柱之食客也, 私人也, 龜柱島配後, 特下傳敎, 斥黜履煥, 處分至嚴, 好惡大明, 而其黨後翼, 不勝狠毒之心, 投進凶悖之章, 右袒龜柱, 稱詡履煥之不已, 至有犯上不道之語, 今秋後翼, 始伏王章, 履煥, 自知其難免於黨與之誅, 身在罪籍, 敢投一疏, 外稱自引之義, 內售黨惡之心, 上款下語, 盛稱龜柱, 奮不顧身, 爲國討賊之事, 下段引罪, 不過取友不端四字而已。噫, 世所謂不端之友, 卽是博奕酒色, 操身不謹者類, 渠敢以亘古所無之凶魁, 强謂之不端, 見其疏者, 擧皆奇怪, 聞其言者, 莫不駭痛, 此輩眼中, 無君無國, 惟以愛護血黨, 抵死不悔, 使主勢國綱, 日趨孤弱者, 爲今日凜凜岌岌之憂, 而豈有如履煥之放恣無嚴者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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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forever |  2008-06-01 오후 1:08: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조와 바둑에 관한 이야기 유익하게 보고 갑니다.  
후지산 |  2008-06-03 오전 10:11:1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만천명월주인옹?
정조의 자신감이 엄청났었군요.  
dugubee |  2008-07-31 오전 6:57:37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이청 선생의 글은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아주 다르군요. 조선이 세종때 뿐만 아니라 28대 왕 재임중에도 가난했단 말은 근거가 있는 이야기인지요. 가령 당시의 세수량에 대한 근거라든가. 허기사 첫회에 믿지는 말라고하셨으니 독자가 취사선택해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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