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한쪽에서 회돌이 하는 건 보명궁 좌측에 거처를 정한 묘화(妙花)였다. 그녀가 흥그러지게 방사를 펼칠 기교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지만 사내를 살리는 방법을 알지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색공(色供)의 기대감으로 입궁하는 청조에겐 위험한 걸림돌일 수 있었다. 더욱이 ‘묘화(妙花)’라는 이름부터 옥진의 마음자릴 괴롭혔다.

‘묘화라···, 그 이름은 계집이 아주 작다는 뜻이다. 아주 작은 꽃. 꽃은 작지만 내용물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큼 풍부한 그런 계집이 묘화(妙花)다. 그 아인 왕실의 피를 받지 않았으나 때가 되면 크고 작은 색공에 나설 것이다. 그리되면 청조가 곤란을 당할지 모른다.’

청조는 지소태후 명으로 입궁한 상태니 당장 무슨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도 부스럼딱지처럼 마음판에 생채기를 내며 마음자리를 잡아가는 불안감에 손녀를 싣고 가는 가마에 호자(虎子)를 넣어주며 당부하는 걸 잊지 않았다.

“내가 이레 안에 너에게 사람을 보낼 것이다. 심부름간 사자(使者) 편에 불편한 일이 있거든 말을 하거라. 나는 몸이 불편해 동행을 못하니 지소태후에게 안부 전하고···. 청조야, 쓸데없는 일일수록 덩어리만 클 뿐 이득이 되는 건 없다. 이제까지 할미의 장원(莊園)에서 지낸 기억은 잊거라.”

“할머니!”

달칵 문이 닫혔다. 청색의 수실로 치장한 가마는 대왕마마가 기거하는 월성을 향해 떠났다. 하늘은 맑고 청량했으며 날씨가 풀린 탓에 흰 나비가 눈에 띄게 궁원을 날아다녔다. 삼월엔 뱀과 흰 나비를 봐야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던가. 손을 뻗으면 잡을 것 같은 나비의 하늘거림 때문인지 가마의 작은 문을 열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나비들을 바라보았다. 곳곳에서 벌어지는 봄 나들이 여흥 때문인지 월성은 함성이 파고(波高)처럼 일렁였다가 내려앉기를 몇 차례였는지 모른다.

북문을 타고 오르다 보명궁에 도착하자 가마에서 내린 그녀를 기다린 것은 목욕물을 받은 시비(侍婢)들이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거처의 주인이 나타나자 그녀들은 얘기를 서둘렀다.

“아가씬 무슨 꽃을 좋아하세요?”

“앵두.”

욕실로 안내하려던 두 계집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새콤달콤한 맛을 내는 앵두. 봄의 열매라기보다 6월의 과실이다. 지금 욕실에서 사용할 꽃 이름으로 앵두를 말했기에 시비들은 실소(失笑)를 깨물었다. 청조가 그런 말을 한 것은 이곳 보명궁 우측 숙소엔 유난히 앵두 나무가 많았고 좌측은 수국(水菊) 일색이었다.

“아가씨, 묘화는 자신의 이름을 수국(水菊)으로 고쳤다며 더운 물에 수국을 좍 깔고 목욕했다지 않아요. 그래서 아가씨께 무슨 꽃을 좋아하느냐 물은 거예요.”

한번 빙그레 웃어주고 쉬고 싶다는 핑계를 댔다. 창문 가까이 다가가 하늘 저 멀리로 시선을 뿌려보았다. 문득 옥진 할머니의 목소리가 뇌리를 파고들었다.

“지금 궁안은 지소태후와 사도왕후라는 두 여인이 권력을 잡고자 암투를 벌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신분 제도 역시 왕위계승이나 가계계승이 부계의 혈통원리를 따르지 않고, 모계에 의해 귀족들의 정치적 · 사회적 신분이 정해지고 있다. 그렇다 보니 모계에 의해 진골정통(眞骨正統)과 대원신통(大元神統)이 정해지고 1대에 한해 그 계통을 이을 수 있으나 부자간이라도 계통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1세 풍월주(風月主) 위화랑(魏花郞)의 딸 옥진궁주는 어느날 칠색조(七色鳥)가 가슴에 안기는 꿈을 꿨다. 그녀는 법흥왕과 영실공이 축구를 하는 내정(內庭)으로 달려가 왕의 손을 잡아끌었다. 약간 졸린 듯한 그녀의 자태는 헝클어져 있었다.

“마마, 빈첩과 자리를 함이 좋겠나이다. 칠색조가 날아드는 꿈을 꾸었으니 아들을 가질 징조가 아니겠습니까. 하오니 빈첩과 잠자리를 함께 하소서.”

법흥왕은 입술을 뾰로통히 내밀며 심각해졌다. 7색은 섞인 색이고 새는 여자다. 꿈대로라면 계집애를 가질 징조다. 법흥왕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번져흘렀다.

“자네는 그대 지아비와 색사(色事)를 하라. 대신 한가지는 약속하마. 아들을 낳으면 태자를 삼을 것이오 딸을 낳으면 빈(嬪)으로 삼겠다.”

법흥왕과 내연의 관계였던 옥진궁주의 지아비는 법흥왕의 누이 보현공주의 아들 영실공이었다. 그러니까 외삼촌과 조카며느리 사이에 정분이 난 것이다. 옥진은 영실공과 관계해 묘도(妙道)를 낳았다. 묘도가 자라자 왕은 약속대로 그녀를 빈으로 삼고 사랑을 나누었다. 그러나 양기가 센 법흥왕을 맞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녀는 옥문이 작고 좁아 밤만 되면 괴로움으로 진저리쳤다.

옥진궁주는 골품이 없었으나 법흥왕의 후궁이 되어 비대공(比臺公)을 낳았으며 진골정통과 대립한 대원신통의 시원(始原)이 되었다. 묘도는 2세 풍월주 미진부공과 사랑을 나눠 청조를 낳아 보명궁 안주인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다.

▸호자(虎子) ; 여기서는 요강

▸진골정통(眞骨正統) ; 어디서 어디까지라고 분명히 선을 그을 수 없으나 지소태후를 정점으로 한 적자녀(嫡子女)의 혈통을 가리킨다.

▸대원신통(大元神統) ; 사도왕후를 시원으로 한 서자녀(庶子女)의 혈통을 가리킨다.

▸풍월주(風月主) ; 화랑의 우두머리

▸색사(色事) ; 성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