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토우 10회/ 첫날밤을 위하여 (5)
Home > 소설/콩트 > 여설하
토우 10회/ 첫날밤을 위하여 (5)
2009-08-14     프린트스크랩
▲ 송곳형 장식
 

 


시집 가는 신부가 첫날밤을 맞이하려면 무엇보다 사내가 원하는 게 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얼굴 한번 보지 않았던 신랑이지만 사다함(斯多含)은 장부 중의 장부라 했다. 청조는 자신의 문제에 대해 지소태후가 양시의를 부른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할머니(옥진궁주)의 당부를 생각하며 심각해졌다.


  - 왕실은 참으로 냉혹하다. 어제까지 자신의 친구가 됐어도 손톱만큼의 이익만 따르면 안면몰수하고 돌아서길 자랑거리로 삼는다. 청조야, 너는 누구에게나 마음을 열어선 안 된다. 어느 누구를 믿어서도 안 된다. 너에게 힘든 일이 생기면 내명부의 이을지(李乙之)를 찾아가 도움을 청하거라. 도학에 밝은 그는 할미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사람이다.

 

청조는 왕실로 출발하기 전 은밀히 사람을 보내 이을지의 면담 요청을 했었다. 그랬기에 향섭랑 복도를 걸어보고 보명궁(寶明宮)으로 내려왔을 때 예순이 가까운 백발머리의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내명부에서 아녀자들을 지휘 · 감독하는 이을지(李乙之)라는 여사(女史)일세. 내명부에선 날 을을도인(乙乙道人)이라 부르지.”

 

‘을을’이라는 것은 이(李)를 ‘두 이(二)’ 자로 생각해 을을(乙乙)이라 한 것임을 넌지시 밝힌 것이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삼월삼짇날은 3, 3이라는 양(陽)이 겹친 날이다. 잠든 뱀이 깨어난다는 이 날은 봄을 알리는 첫 번째  뱀날(巳日)인 답청절(踏靑節)이다. 월성(月城)은 후꾼 달아 가는 곳마다 함성이 어우러져 봄날의 열기를 한층 달구는데 젊은이들의 여흥을 돋우려 보명궁을 활짝 개방했다.

 

보명궁을 지은 건 진흥왕 원년(540)이었다. 궁을 짓고 동서 양쪽으로 거처를 마련해 주인들이 들어오길 기다렸으나 엉뚱한 일이 벌어졌었다. 삼산공(三山公)의 딸 준정이 자신의 세력이 약화된 것에 위기감을 느끼고 남모 공주를 물속에 넣어 살해한 것이다. 당시 원화(源花)로 뽑힌 두 처녀가 머물러야 할 곳이 보명궁이었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던 이 일은 궁밖에서 놀던 아이들이 이상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여 서너 달이 흐른 7월에야 세상에 드러났다.


준정이 남모 공주를 꾀어 술을 먹였다네

준정이 공주를 시기하고 있었다네

술 취한 공주를 강물에 빠드렸다네

공주는 돌밑에 깔려 죽었다네

불쌍한 공주는 물속 바위밑에 누워있다네


사건의 내막을 아는 자가 궁 밖의 아이들에게 노래를 가르쳐 이것을 궁 안 왕족 아이들이 배워 노랠 부르며 뛰어다녔다. 준정을 잡아들인 지소태후(只召太后)는 호되게 다그치며 고문을 자행했다. 그것은 역대 신라인들이 사용했던 고문수법이 아니라 수(隋)나라 왕실에서 사용하던 ‘당나귀 말뚝 뽑기’였다. 죄인의 목을 매달아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는데 죽지 않을 만큼의 높이였다. 그러므로 지독한 불안과 공포에 치를 떨며 버터야 했지만 이 형벌의 마지막 단계인 분뇨통에 집어넣은 고통은 참을 수 없어 자백했다.

 

상처 난 몸이 똥오줌이 질척거리는 분뇨통에 들어가자 상처난 곳은 더욱 짓무르고 곱던 얼굴도 부스럼 딱지가 앉아 흉하게 일그러졌다.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호사였을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을 술술 불 수밖에 없었다. 자신은 모른다는 능청스러운 거짓말은 남모 공주의 시체가 북천(北天) 바위 아래서 나오자 준정은 지체없이 사형에 처해졌다.

 

그 이후 보명궁(寶明宮)은 비워 있었다. 지소태후는 주인을 맞기 위해 봄날의 단장을 마치고 삼월삼짇날 행사를 치러 주인을 정했다. 새주인의 선출은 춤과 음악 · 노래에 월등한 재질을 보인 묘화(妙花)가 뽑혀 보명궁 서쪽 거처의 주인이 되었고, 동쪽은 사다함(斯多含)의 짝으로 청조가 선출되었다.

 

지소태후의 명으로 궁에 들어온 두 소녀는 홍상미판(鴻上未判)이란 열넷의 나이로 이제야 천계(天癸)가 열리고 있었다. 청조가 궁으로 들어가게 됐을 때 그녀의 할머니 옥진은 무거운 표정을 지었었다.

 

“내가 어둑새벽 꿈을 꾸었는데 조개들이 함지박 안에서 다투고 있었다. 너는 바지락조개고 묘화라는 아인 대합조개였다. 서로 자신의 음식 맛을 자랑했는데 그 아인 왠지 가만있더란 말이다. 용모나 기예로 보면 네가 훨씬 앞지르는데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 알 수 없구나.”

 

꿈꾸는 듯한 낯으로 옥진 할머니는 뒷말을 덧붙였다.

 

“내가 이제껏 너를 밖에 내보내지 않은 것은 우리 집안의 인통(姻統)을 결정할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 집안은 색공지신(色供之臣)이라 네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

 

옥진은 손녀딸을 위해 온 정성을 다했다. 묘도의 자궁에서 미끄러지듯 얼굴을 내밀었을 때 청조는 어둔 밤을 적시는 야명주같은 홍보석이었다. 만지기만해도 톡! 터져버릴 것 같은 얼굴에 귀하디 귀한 제왕의 씨를 보존시켜줄 옥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청조 이 아이에게 그런 기운이 넉넉히 도사리고 있다는 믿음 때문에 가르침을 내릴 때도 정성을 다했다.

 

“지금은 한 마리 새가 되어 네가 궁에 들어간다만 장차 너는 색으로 대왕을 모실 것이다. 귀물을 회임해 신라를 번성시킬 것이다만 그 전에 알아둬얄 게 있다. 대왕을 모시기 전엔 너의 이름은 청조(靑鳥)다. 네가 ‘아름다운 방(美室)’으로 행세할 때는 대왕의 마음을 얻었을 때다. 알겠느냐?”

 

옥진궁주는 이제까지 사내 죽이는 방사에 대해서만 설명해 왔었다. 사내가 뿌린 씨는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갈무리 해 회임하는 게 중요함을 강조했다. 더구나 청조가 머물 보명궁은 연년택(延年宅)이니 토(土)와 금(金)이 상생한다. 일가는 화목하고 음양이 좋다. 정중앙에 문이 있는 모양은 조개를 닮았으니 이름하여 보합문(寶蛤門)이다. 음(陰)의 기운이 풍만하니 손녀딸이 뜻을 펼칠 것이라 보았다.


 

▸인통(姻統) ; 왕과 혼인할 여자나 색공을 할 여인을 배출한 모계혈통

천계(天癸) ; 월경이 시작됨

▸여사(女史) ; 내명부에 근무하며 대왕이 방사를 치를 때 행동 하나 하나를 기록하는 직급. 흔히 섹스 기록관으로 알려졌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당근돼지 |  2009-08-14 오전 2:41: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감사 합니다.  
여설하 질문을 주시면 성실히 답변을 드립니다
은선도 |  2009-08-14 오후 4:06:4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나도 여사를 한명 고용하여 나의 방사를 세밀하게 기록하도록 해야쥐...호호호...  
여설하 선덕여왕은 공중파 드라마기에 밝히거나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걸 밝혀드립니다
한돌희망 |  2009-08-14 오후 6:48:5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여설하 작가님 더운 날씨 수고가 많습니다,
주말 시원하게 쉬세요....  
여설하 희망 님은 가까운 친구같이 정겹습니다
여현 |  2009-08-14 오후 9:10:2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주말 재충전 하세요^^*  
여설하 출중한 학문이 늘 눈에 띕니다. 좋은 지적 감사드립니다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