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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버오로 사무실에서 이강욱 8단 |
"요즘엔 다들 저를 보고 베트남 현지인 같다고 그래요."
7월 3일 서울 중구 초동의 사이버오로 사무실을 방문한 이강욱(프로바둑 8단)이 점잖게 웃으며 그리 이야기한다. 정부와 대한바둑협회가 힘을 쏟고 있는 바둑세계화 사업의 일환으로 베트남에 바둑보급하러 떠난 지 벌써 3년이 됐다.
지난 6월 28일, 이강욱은 베트남 체스선수단과 바둑선수단을 이끌고 함께 한국에 왔다. 2013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에 베트남 바둑선수단을 인솔하고 온 것이다. 베트남에서 바둑과 체스의 차이는 크다. 체스가 베트남 국비지원으로 실내무도 대회에 국가대표로 참여한다면, 바둑대표단은 선수부터 이강욱까지 자비참가다.
6월 28일 한국에 온 이강욱은 바삐 움직여야 했다. 체스협회 수석부회장 당탓탕(Dang Tat Thang), 부회장 팜응업선(Pham Ngoc Son), 그리고 베트남 선수들과 함께 한국기원을 방문해 양재호 총장과 면담했으며, 선수들에겐 개인적으로 쇼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줬다-한국산 화장품이 인기가 높다-통역의 역할을 같이 해야 하니까 이강욱은 더욱 바쁠 수밖에 없다.
베트남에서 체스의 위상은 매우 크다. 체스협회의 한 분과처럼 바둑이 속해 있다. 체스엔 세계랭킹이 높은 선수가 많고, 이번 실내무도 대회에서도 무난한 입상권이다. 같이 한국에 온 체스협회 임원들은 "메달 걱정은 안 한다. 메달 색깔이 조금 걱정이 된다"는 정도로 자신감이 크다. 전국대회도 많고 베트남 현지 기업이 1만달러 정도의 상금을 걸고 하는 대회도 여럿이다.
이강욱은 체스(바둑)협회와 소통을 강화하면서 전국에 점처럼 흩어져 있는 베트남 바둑팬을 모아 기초를 다지는 데 집중하고 있다.
○● 링크1 : 베트남 사람 다 됐다? 알 듯 모를 듯 빠져드는 베트남
▲ 베트남에서 생산된 커피, 쭝응엔(Trung Nguyen) 브랜드의 커피다. 우리식 한자로 하면 '중원'커피가 될 것 같다. 베트남어는 한자 어원을 가진 말이 많지만 한자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알파벳을 쓴다. 베트남인들은 미국이나 프랑스는 물론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도 강했다. 이 커피는 아주 쓴맛이 난다.
- 이강욱의 Wbaduk Cup 베트남 바둑리그
베트남에서 가장 중요한 바둑대회는 LS배 베트남 전국대회가 있다. '이강욱'이 동기가 되어 시작한 대회였고 전국대회로서 큰 역할을 하는 대회이긴 하지만 좀 더 소규모로 지속적인 활동이 보장되는 대회도 필요했다.
지난 6월부터 이강욱은 대한바둑협회와 사이버오로의 후원으로 베트남 바둑리그를 시작했다. 구상은 좀 오래되었지만 일단 조촐하게 '2013 Wbaduk컵 베트남 리그'라는 이름아래 온라인으로 시작했다. 이강욱이 활동무대인 북부 하노이와 남부 호치민에서 주로 참여하리라는 예상이이었지만 이강욱이 전혀 모르는 중부지역의 학생들도 꽤 참가했다.
전체 참가인원은 80명, 이 정도면 베트남에선 전국대회 수준이다. 참가자의 나이는 주로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까지로 청소년 학생이거나 대학생이 대부분이다. "참가자가 40명도 안될까봐 전전긍긍했는데 예상보다 반응이 무척 좋았다"는 이강욱의 말.
예선을 거쳐 8명의 본선진출자를 꾸렸고 이 8명은 풀리그를 치른다. 여기서가 중요하다. 본선부턴 승자에게 대회상금 개념의 대전료를 지급하고, 패자에게도 약간의 대전료를 준다. 바둑을 두니까 수입이 생긴다는 느낌, 혹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다.
실력이 없어서 참가신청을 못 했거나 중도에 탈락한 선수들도 자기 도시 출신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매번 대국이 벌어질 때마다 응원전을 펼친다. 다음 대회에 참여하겠다고 벼르는 학생들이 많아진 것도 이강욱으로선 더 기쁜일이기도 하다.
대회는 6월초에 시작해 7월말에 끝날 예정이다. 이강욱은 "대회 기보를 들고 오면 강평도 조금씩 해준다. 본선이 더 진행되면 같이 접속해서 관전자들에게 실시간으로 (베트남어) 해설도 같이 할까 생각 중이다"고 한다.
▲ 6월 28일 한국기원 이사장실에서, 한국기원 양재호 사무총장(뒷 줄 왼쪽에서 두 번째)과 베트남 체스협회 부회장, 베트남 선수들이 함께 했다.
- 베트남, 태국에 라이벌의식 강해
베트남은 중국장기도 두는 사람이 많고 체스도 인기가 높은데 왜 바둑 두는 사람은 없었을까? 근대 이전엔 유교국가라서 분명 바둑 둘 줄 아는 사대부도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마 프랑스의 식민통치와 긴 전쟁기간 동안 사대부 계층이 소멸했고, 미국과의 전쟁 후에 이어진 중국-베트남 전쟁에서 바둑을 알고 있던 베트남 내 화교들이 모두 몰락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동남아시아에서 바둑팬의 인구가 가장 많은 곳은 태국이다. 상권을 장악한 화교의 존재도 한 가지 이유가 된다. 실력으로만 따지면 단연 싱가폴이며, 말레이시아에도 바둑팬이 은근히 있다. 이곳 태국-싱가폴-말레이시아 3개국은 자기들끼리 순번을 정해 3개국 단체 바둑대항전을 벌인다.
베트남도 최근 이 '동남아리그'에 참여하려 한다. 저변으로야 태국에 못 미치겠지만 베트남인들의 자존심이 묘하게 강하다. 베트남 바둑팬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를 이강욱이 전한다.
"설마 태국을 못 당하겠어요. 태국은 이길 수 있어요."
태국의 바둑 실력이 전체적으로 조금 더 높아보이긴 하지만 지기 싫어하는 베트남 바둑팬들이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으니 바둑 실력 느는 데에는 좋은 여건이다.
이강욱은 "동남아시아 같은 경우 큰 비용을 안 들이고 이런 자체의 국가대항전이나 혹은 국가선발전을 리그로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전한다. 베트남 리그가 안착되는 대로 그 베트남리그에서 선발한 대표로 동남아 4개국 리그전으로 발전시키려는 구상이다.
이강욱은 "동남아시아에선 국경을 넘는 것이나 서로를 방문하는 게 다른 곳보다 굉장히 편하다. 또 라이벌 의식도 강하니까 동남아가 바둑으로 경쟁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 보녁밍과 이강욱
베트남인 최초 프로 나올까?
이번 한국방문은 12살 소년 보녁밍(VONHATMINH)과 관련이 깊다. 2년전 권갑용도장을 방문해 한국바둑 맛을 봤던 이 소년은 이후 꾸준히 성장해 지금은 프로에게 4~5점으로 버틸 실력이 됐다.
이번에는 '녁밍' 소년이 권갑용도장에서 기숙하며 본격적으로 프로수업을 받을 것이라 한다. 한국 원생들에 비하면 나이도, 실력도 나을 것이 없지만 베트남 최초의 프로기사가 한국에서 수업을 받아 탄생하리라는 의미가 크다.
2년전 권갑용 원장은 시험기를 두어 본 후 "재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다만 아직 산만하서 잘 잡아줘야 한다"고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소년의 어머니와 소년이 당시에는 주저했지만 한국 권갑용도장에서의 경험이 모자의 결심을 굳혀준 것 같다.
○● 링크 2 : 개구장이 베트남 바둑 영재 '녁밍'과 스승 이강욱 (김수광)
이강욱은 오는 수요일 한국을 떠난다. 선수단의 통역과 일종의 한국 가이드까지 맡은 상황이어서 고향인 강릉에도 방문을 하지 못했다.
베트남에서 바둑을 알린다는 것은 여전히 먼 길이다. 벌써 3년째, 베트남어 한 마디도 모른 채 베트남을 밟았던 이강욱은 베트남에서 계속해서 바둑 보급을 진행할 생각이다. 현지인 같아 보인다는 말은 이강욱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이강욱의 국적은 여전히 한국이지만 그는 동시에 진정한 '베트남 바둑인'이기도 하다.
▲ 2013 인천 실내무도 아시안게임 바둑대표로 참가한 한 베트남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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