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은 관록을 잉태하고 관록은 승리를 낳는다.
마음을 비우고 묵묵히 기다린 끝에 결실을 수확한 1국이라면 2국은 저우허양의 사심(邪心)이 발동했다. 어른거리는 우승컵에 슬그머니 탐이 났다. 평정심이 살짝 흐트러진 데다, 그런 그를 이창호는 더욱 세차게 압박해 갔다.
‘V16’과 ‘만년 8강’. 차이는 이미 벌어져 있었다.
제5회 춘란배 결승5번기 제2국
○이창호 9단(한국) ●저우허양 9단(중국)
- 장소 : 중국 후난성
- 날짜 : 2005. 03. 16
- 결과 : 220수끝, 백불계승
장면 (타이트한 압박)
초반에 눈여겨 볼 대목은 우상 공방. 저우허양의 흑1은 활용. 백가로 받을 때 흑나까지 품을 넓히려는 스토리이다. 그것으로도 한판.
백2가 이창호의 달라진 근황이다. ‘유연한 평범’이 아닌 ‘타이트한 압박’. 나가끊은 데 그치지 않고 흑9에 대한 백10, 우직한 최강수로 응전했다.
참고도1 (적당한 타협)
▲는 급소. 저우허양은 백1로 받을 줄로 생각했을 터. 검토진의 대부분도 이 수를 예상하고 있었다.
흑은 한점을 희생타로 백 두점을 잡고 백은 변의 실리를 확보하는 타협. 백5 이후 A의 곳을 누가 먼저 두느냐도 초점이다. 수순 중 백3으로 4에 잇는 것은 흑3으로 넘어가므로 백의 불만. 결함없는 흑의 실리가 돋보인다.
실전진행1 (엉뚱한 기수 변경)
저우허양은 흑1로 물러섰다. 일단 강수가 먹혔다. 이제는 귀의 실리가 대단치 않으므로 중앙 두점마저 포기할 입장이 아니다. 흑3으로 움직였다. 백이 4로 강화되면 A의 건너붙임 때문에 흑5는 절대 수비. 6으로 몰아치며 백이 채찍을 쥐고 있는 공중전이다.
이창호의 강경한 태도에 저우허양의 마음이 움츠러 들었다. 엄습해 오는 칼바람에 주눅이 들었다. 흑7은 생뚱맞은 기수 변경. 백이 9로 받아주면 흑B로 키울 심산이었을까. 백8에서 10으로 중앙에 대궐을 형성, 단숨에 승세를 탔다.
참고도2 (회피한 이유)
흑1로 막는 흐름을 탈 수 있어야 지당하나 저우허양은 고심 끝에 그 수를 두지 못했다. 2의 곳이 귀의 약점.
백10까지 살아버리면 실리를 빼앗긴 데다 아래쪽 흑이 곤마로 좇기는 상황을 싫어한 모양이다. 흑은 A에 약점을 지녀 B로 잡으러 갈 수 없다.
참고도3 (움직일 곳)
한번 움직여서 덩치를 키워놓고 손을 뺀 건 엇박자. 계속해서 달아나는 게 옳다. 세 귀에 견고한 실리가 있으므로 백에게 커다란 집모양을 허용하지 않으면 나쁠 이유가 없다.
물론 좇기는 처지는 감수해야 한다. 그럴지라도 우중앙 일대에 ‘35집 플러스 두터움’을 제공한 실전진행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
실전진행2 (명암 교차)
수순이 흘러 변의 끝내기가 한창이다. 상변 1은 최대. 좌하에서 실족한 백에게 다시금 서광이 드리웠다. 반면 흑2는 영원히 암흑의 터널 속에 갇히게 만든 패착감이었다.
다만 이단젖힌 백5는 다소 과격하다. 최근 이창호의 호흡이 거칠어지고 격렬해졌음을 느낄 수 있다.
참고도4 (속단)
후수를 잡은 <실전진행2> 흑2는 수많은 질타를 받았다. 저우허양은 선수라고 속단했던 것 같다. 다음에 흑5로 빠지는 수가 크므로 백1부터 정비해야 되지 않느냐고. 이와 같이 된다면 <참고도5>의 백A～흑D로 처리되는 것보다 이득이다. 아니면 끝내기의 크기 계산을 그르쳤거나.
참고도5 (선수 권리)
중앙쪽이 크다. 3까지 권리를 행사하고 나서 좌변을 경영했더라면 미세한 상태로 종반 승부에 임할 수 있었다. 좌하 백이 약하므로 좌변 흑진을 깨러가기는 힘들다.
적어도 흑1, 3까지는 두어놓아야 했다.
참고도6 (유연한 착상)
<실전진행2>에서 좌변을 처리한 수순은 종전 이창호의 모습이 아니다. 백1부터 7까지면 유연하다. 흑진을 어느 정도 견제하며 허약한 좌하 백의 보강도 겸한다. 또 중앙이 강화됐으므로 흑A의 침투도 방비된다(흑A에는 백B).
‘끝내기 달인’의 명성에 오점을 남길 만큼 1국을 내주었던 이창호는 마음을 다잡은 2국에서는 일방적 승리로 명예를 회복했다. “생각지도 않은 강수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며 국후 저우허양은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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