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등장이다. 이 대회가 출범한 이후 예선과 본선을 통틀어 단 한차례도 진 적이 없는 무적의 에이스. 그의 혁혁한 업적으로 한국은 불패신화를 차곡 차곡 쌓아가고 있다. 가토 마사오와는 3년만의 대결. 상대전적에서는 2연패 뒤 3연승을 기록 중이다.
제5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제12국
○ 이창호 9단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9단
- 장소 : 상하이 왕바오허 호텔
- 날짜 : 2004. 02. 13
- 결과 : 230수끝, 백불계승
장면1 (한번 싸워보자)
가토의 흑1이 끝내기 바둑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의식이 팽배한 저공비행. 이 수를 발판으로 국면을 흔들어 보려고 한 것인데….
이창호의 백2가 매섭다. 흑3은 기세인데 백4에서 8이 강인한 몰아붙이기. 좌우의 말이 양분당한 가토, 과연 이것이 자신이 의도했던 바였을까.
참고도1 (후퇴는 나약)
〈장면1〉의 흑3으로 본도처럼 백스텝을 밟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일단 백2로 막히는 것이 아프고, 흑3에서 5로 자리를 편 자세도 뽑낼 만한 게 못 된다. 백6으로 '공격'을 외치면 죽지는 않을지라도 위쪽의 흑과 얽기 공격에 휘말릴 우려가 높다.
실전진행1 (백의 판정승)
실전에서 가토는 흑1의 들여다봄을 활용하고 나서 3으로 붙였다. 이곳이 백의 유일한 약점. 백4에는 흑5로 젖혀가는 것이 후속수단이다.
그런데 이 부분에는 가토의 수읽기 착오가 있었던 같다. 백8 때 10의 곳을 끊지 못하고 11로 물러선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공방은 백의 판정승. 큰 집을 확정지은 데다 선수까지 잡아 우상귀에 선착했다. 가토는 왜 끊지 못했을까.
참고도2 (착각의 스토리)
처음에 가토는 흑1로 끊으면 백2로 이어줄 것으로만 수읽기를 했던 듯하다. 그것이면 흑3에서 5의 돌려치기가 통쾌하다.
그러고 나서 7에 젖히면 앞서 ▲의 활용이 안성맞춤. 게다가 실전과 달리 귀도 A의 패맛을 남겨 두었다. 이 차이는 크다.
참고도3 (흑 양곤마)
흑1에는 백2로 따내는 것이 최강의 대응. 흑5로 머리를 내밀면 백6으로 두어 놓고 응수를 살핀다. 만일 흑7이면 백8로 석점을 잡아들인 뒤 여전히 상하 흑에 대한 공격을 즐거움으로 삼을 수 있다. 백의 호조!
수순 중 흑5로 6이면 백5. A로 막는 수가 사라졌으므로 흑은 실전보다 손해다.
참고도4 (흑, 1수부족)
〈참고도3〉의 흑7로 본도 1로 석점을 살리면 백2 한방을 견디기 어렵다. 계속해서 흑3으로 귀의 백과 수상전을 벌이려고 해도 보는 바대로 흑의 1수 부족. 바둑도 여기서 끝난다.
이래 저래 여의치 않아서 가토는 실전처럼 마음을 바꾸었으리라.
장면2 (이창호의 닦기)
흑1 때 백2로 하변의 뒷문을 걸어잠근 것이 이창호의 '닦기'. 아직 흑대마에 대한 공격을 엿볼 수 있어 가로 달아나고도 싶지만 자칫 분란의 빌미를 제공하게 될지도 모른다. 또한 유일하게 엷은 이곳만 잘 단속하면 '승리는 내 것'이라는 정밀한 계산서가 뒷받침돼 있다.
실전진행 (명을 재촉하다)
흑1은 백A의 끝내기를 방지한 수. 그러나 백2 때 응수가 궁하다. 흑6이면 백4를 당하므로 흑1로 둔 의미가 사라진다. 그래서 가토는 3으로 젖혀 반발했는데 보고(寶庫)였던 우하가 돌파당해 오히려 명을 재촉한 꼴이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매섭기로 소문난 가토의 창이건만 이창호의 황금방패 앞에서는 허공만 가를 뿐 킬러다운 면모를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그에 비해 이창호는 주특기인 '선 포인트, 후 닦기'로 완벽한 승리를 일궈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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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