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홍성지 어린이를 기억하는 팬들이 많을 것이다. 유년시절 각종 어린이 대회를 휩쓸며 될성부른 떡잎임을 자랑한 홍성지는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2001년 입단관문을 뚫는데 성공한다. 입단 후에도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정상권을 위협하는 무서운 신예가 되갔지만 아쉽게 초일류 대열엔 한 발 모자란 준비된 이무기로 머물렀다.
그런 그가 입단 7년째 되는 올해 대형사고를 터뜨렸다. 상반기를 넘어서면서부터 무서운 상승세를 타고 있는 홍성지 6단은 한국물가정보배 결선토너먼트에 진출해 이창호 9단에 이어 이세돌 9단마저 눕히고 생애 첫 우승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우승을 결정지은 최종국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특히 마지막 초읽기를 눈앞에 두고 절체절명의 위기를 순식간에 빠져나간 모습은 홍성지 6단의 기량이 무르익었다는 걸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았다. 우승의 감격과 덤으로 얻은 7단 승단의 기쁨을 만끽하게 한 결승3번기 최종국을 다시 뒤돌아본다.
제4기 한국물가정보배 프로기전 결승3번기 최종국
○이세돌 9단
●홍성지 6단
장소: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
날짜: 2008년 7월 27일
결과: 203수 흑불계승
장면1 (작은 불씨가 큰 불로 번지는 장면)
백1의 귀붙임은 상용의 응수타진이다. 흑의 응수에 따라 여러 가지 활용수단을 남겨두겠다는 뜻이었는데 홍성지 7단은 주변 배석이 튼튼하다보고 흑2부터 6까지 강하게 둬간다. 당장 움직이는 것은 별 수가 없다고 본 이세돌 9단이 방향키를 틀어 백7로 모자를 씌워가자 여기서부터 두 기사의 엄청난 힘겨루기가 시작되는데….
실전진행1 (응수타진 공방)
홍성지 6단은 흑1로 들여다보는 수를 들고 나온다. 바둑격언에 들여다보는데 잇지 않는 바보가 없다고 했지만 이세돌 9단은 당연하다는 듯이 백2로 반발했다. 흑은 엉뚱하게도 3, 5로 둬 또다시 백의 응수를 물어보는데 일련의 수순들은 무슨 속내를 포함하고 있는 걸까?
참고도1 (들여다본 의미) 실전진행1의 흑1은 다음 진행을 염두에 둔 예민한 후각이었다. 흑A와 백B의 교환이 없다면 보는바와 같이 백6으로 강하게 붙여가는 수가 성립한다. A, B 교환이 돼있다면 C로 치받는 수단이 있어 백6의 강수가 불발로 돌아간다. 활용하나 차이로 엄청난 결과가 초래된다는 기민한 수순이었던 것이다.
참고도2 (바로 뚫는 것은?)
백△로 반발했을 때 흑도 기세상 1로 뚫고 싶다. 하지만 백이 무식하게 8까지 끊어오면 다음 응수가 만만치 않다. 백X가 톡톡한 활용구실을 하고 있고 여차하면 A로 뚫는 수도 남아있어 알토란같은 흑진이 고스란히 백의 수중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참고도3 (좌하귀를 물어본 이유)
흑1로 좌하귀를 붙인 것은 참고도2와 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만약 흑1, 3에 백이 4로 곱게 받아준다면 이젠 사정이 달라진다. 보는바와 같이 하변백이 위험해진다.
실전진행2 (홍성지, 과속질주!)
흑의 의중을 빤히 들여다 본 백이 1로 끼워버린다. 흑도 내친걸음이라 좌하귀 추궁에 들어가는데 흑2가 하마터면 패착의 멍에를 뒤집어 쓸 뻔한 과속질주였다. 이세돌 9단이 마지막 초읽기를 짜내며 백17까지 초강수를 들고 나오자 흐름은 순식간에 롤러코스터를 타는 짜릿한 곡예싸움으로 치닫는다.
참고도4 (쉽게 두면 패)
솔직하게 응수하면 패가 난다. 이 패는 백의 권리가 더 강해 흑이 버티기 힘들다. 애초 백이 손빼버린 장면에서 흑이 먼저 손을 댔는데 사활이 걸린 패가 난다면 말이 안 되는 꼴이다.
실전진행3 (흑, 위기일발!)
어려운 장면의 연속이다. 두 기사 모두 수십 개의 변화를 40초 초읽기 안에 정확히 읽어내야 한다. 여기서 무너지면 그대로 낭떠러지다. 흑1의 껴붙임은 유일한 대안으로 일단 3까지 1선을 타고 넘어갔으나 백6으로 한 번 더 밀어간 수가 수상전의 묘수였다. 기막힌 수순으로 14까지 좌하귀가 살아버리자 졸지에 흑대마가 풍전등화다. 홍성지 6단이 이 난관을 극복했을까?
참고도5 (백 승리) 실전진행3은 필연적인 수순이다. 백대마를 바로 잡으러 가는 것은 백12로 따내는 순간 흑 응수두절이다. 13으로 물러선다면 이하 백16까지 좌변 흑이 수부족으로 잡혀버렸다.
참고도6 (거북등 따냄이 원체 두텁다)
흑이 살려만 한다면 자체적으로 타개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수순으로 산다는 것은 대마를 죽이는 것과 비슷한 고통이다. 백17로 거북등 빵따냄을 해버린다면 좌상귀 방면은 통으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백이 워낙 두텁다.
실전진행4 (수순을 달리하다)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마지막 초읽기가 가슴까지 파고들었지만 홍성지 6단은 흑1이란 수순의 묘를 들고 나왔다. 참고도6의 진행은 스스로 망하는 길이기 때문에 이 수만이 유일한 대안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세돌 9단도 이 수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초읽기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부리나케 백4로 손이 나갔는데 이 수가 처음이자 마지막 패착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흑17까지 그림 같은 수순으로 되레 흑이 칼자루를 잡았다.
참고도7 (침착하게 잡아뒀으면)
백은 쉽게 처리했으면 그만이었다. 백6으로 흑 다섯 점을 잡아버리면 참고도6보다 조금 못하지만 비슷한 결말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쉬운 수순을 내버려두고 어려운 변화만을 고집한 이세돌 9단은 백 몇 점과 중앙제공권을 바꿔치기 해버린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후의 실전진행을 보면 알겠지만 이 한 번의 결과로 다시는 백에게 찬스가 오지 않는다.
참고도8 (자중했어야)
실전은 백의 실수 덕에 상당히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지만 돌아본다면 흑은 다음 수순과 같이 자중했어야 했다. 좌하귀를 선수로 살고 9까지 처리했으면 선착의 효가 팽팽히 살아있었던 국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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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산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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