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철한 9단과 구리 9단이 맞붙은 응씨배 16강전은 최철한 9단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준 명국이었다. ‘독사’, ‘올인보이(All-in Boy)'라는 무시무시한 별칭만큼 화끈한 파괴력을 앞세워 상대방의 등짝을 서늘하게 만드는 최철한 9단. 이 판에서 보인 최철한의 투지와 배짱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한 판으로 평가될 것이다. 거대한 대마사활을 둘러싸고 낭떠러지 싸움을 펼친 두 기사의 열전보를 재조명해본다. 아직도 흥분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는 박력 넘치는 승부이다.
제6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대회 16강전
○ 구리 9단(중국)
● 최철한 9단(한국)
장소: 중국 상하이 응창기바둑기금회빌딩
날짜: 2008년 5월 2일
결과: 137수 흑불계승
장면 (좌변 흑대마는 살았을까?)
최철한 9단이 흑1, 3을 두면서 중앙 백대마의 탈출구를 꽁꽁 막아섰다. 중앙 백은 자체로 살던가 아니면 좌변 흑▲를 되레 잡아야만 목숨을 건질 수 있는 형편. 언뜻 보기에 좌변 흑▲가 아직 완벽한 삶은 아닌 것 같은데 흑은 이렇게 다짜고짜 중앙 백대마를 사냥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기만 하다. 과연 좌변 흑대마는 무사할까?
참고도1 (마늘모의 묘수)
미리 해답을 밝힌다면 좌변 흑대마는 절묘하게 살아있다. 흑대마를 잡기 위해선 백1로 막는 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흑2의 마늘모가 삶의 유일한 맥. 다른 수는 모두 잡힌다. 이 한 수로 좌변 흑대마는 기가 막히게 살아있었던 것이다.
참고도2 (가뿐히 산다)
이 사활은 변화가 굉장히 복잡하다.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백1의 끊음에는 흑 두 점을 떼어주고 간명하게 사는 모양이 나온다. 이건 뻔히 보이는 그림.
참고도3 (버티는 것은 패망)
참고도2에서 질기게 버티는 길이 있긴 하다. 백은 이렇게 강력히 잡으러 가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겠지만 이 그림은 되레 끝장나는 변화. 브레이크를 밟지 않고 끝까지 간다면 한 수 늘어진 패가 나지만 백이 불리한 패다. 패를 지는 순간 여기서 바둑도 끝난다. 어차피 사활싸움으로 승패가 결정되는 마당이긴 하나 이렇게 버티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참고도4 (1로 빠지는 것은?)
백1로 빠지는 변화를 검토해보자. 이 변화도 역시 흑대마를 잡을 수 없다. 흑10과 16의 연타가 삶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면서 흑대마가 살아간다.
참고도5 (다른 변화는?)
수순을 달리해 백1을 먼저 두면 어떨까? 재미있게도 이 변화 역시 흑이 잡히지 않는다. 흑10을 선수해 이하 흑24까지 떵떵거리며 산다. 수순은 조금 다르지만 참고도4와 비슷한 맥락으로 흑12, 14의 희생타작전이 주효.
참고도6 (패는 불가)
백이 이렇게 버티는 것은 참고도3과 마찬가지로 바둑이 그냥 끝나버린다. 사활이 걸려있는 패가 났지만 백은 버틸 재간이 없는 패.
참고도7 (치중수는 어떨까?)
백3으로 치중하는 것도 잡히지 않는다. 백모양의 약점이 노출되면서 이하 흑12까지 흑은 무사히 산다. 다시 봐도 흑▲의 웅크린 마늘모는 사활의 묘수였다.
실전진행1 (흑대마 삶)
묘수 한 방을 맞은 구리 9단은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다 백1의 찝는 수를 동원한다. 여러가지 변화도 중 하나를 선택한 것이지만 이 변화 역시 안 되는 그림. 백3으로 젖히는 수가 비수로 보이나 흑은 여전히 삶의 터전을 보장받고 있었다.
참고도8 (실전진행1 이후)
백이 흑대마를 계속 잡으려 한다면 이런 변화가 예상된다. 교묘하게 자충이 돼있어 백은 제풀에 무너지는 꼴. 흑24까지 알뜰하게 살았다.
실전진행2 (알기 쉽게 살다)
참고도8도 사는 그림이 나오지만 실전에선 최철한 9단이 더 알기 쉽게 흑대마의 삶을 찾았다. 4로 한 점을 끊은 후 6으로 꼬부리는 수가 간명한 길. 이하 흑12까지 좌변 흑대마는 삶을 확인했고 중앙 백대마는 아사 상태에 놓인다.
참고도9 (사는 길은 없었을까?)
좌변 흑대마가 애초에 살아있었던 돌이라면 중앙 백대마는 타개할 길이 전혀 없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었다. 수순을 살펴보면 잘 알겠지만 좌변 흑대마의 사활을 추궁하기 전에 하변을 먼저 공작하는 수가 기민했다. 백1의 건너붙임에 이은 3의 치중수가 좋은 수로 하변에서 패를 내 중앙백대마의 사활을 보장받을 수가 있었다. 좌변 흑대마를 잡자는 팻감이 굉장히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 진행이라면 쌍방 어려운 형세였다.
참고도10 (강경책은 없다)
참고도9의 수순에 흑이 발끈한다면 바둑이 순식간에 끝나버린다. 흑24까지의 패는 흑이 감당하지 못할 패. 결과적으로 구리 9단의 패인은 중앙 백대마의 안위를 쉽게 생각한 점, 그리고 좌변 흑대마가 절묘하게 사는 수를 간과한 것이 참담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단곤마는 잘 죽지 않지만 단곤마도 죽을 수 있다는 것! 최철한 9단의 멋들어진 수읽기 한판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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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일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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