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흐르듯 공격을 해본 적이 있는가. 잡지 않아도, 슬슬 공격해도 실리를 차지할 수 있는 그런 공격.
반면 상대는 살기도 쉽지 않고 산다 해도 별 낙이 없는 국면. 바둑에서 이런 장면이 찾아온다면 어떤 기객이라도 콧노래를 부를 것이다.
이 바둑이 그랬다. 조한승 9단과 김지석 9단의 맞대결. 제19기 GS칼텍스배 8강 첫 대국이 5일 저녁7시 서울 성동구 홍익동 바둑TV스튜디오에서 펼쳐졌다. 김지석이 백을 들고 290수 만에 반집승을 거두면서 4강에 진출했다.
조한승과 김지석은 4승4패로 상대전적이 팽팽했는데 이 전적은 김지석이 4연승 중인 것이어서 기세로는 김지석이 유리하다고 할 수 있었다.
▶ 초반은 조한승의 흐름이었다. 슬슬 몰아도 흑이 유리한 국면.
조한승은 그저 초연했다. 바둑 내용이 그랬다. 실리는 초개같이 버리고 중앙에 두터움을 쌓았다. 김지석은 그 사이 실리를 잘 벌어들이는 듯했는데 조한승의 공격이 신랄해지면서 대세는 조한승에게 넘어갔다. 이 공격은 용의주도한 조한승의 책략이었다.
좀 희한한 장면이었다. 조한승은 평소 자신은 공격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힌다. 공격을 몹시 싫어하는데도 공격 위주의 바둑을 만든 것이다.
불리해진 김지석은 이 점을 최대한 활용했다. 중앙 대마에 최소한의 탄력만 만들어 놓은 채 아래 쪽 실리를 또 챙겼다. 조한승이 대마를 잡지 않으면 안 되는 국면으로 변했다. 올인 바둑이었다. '공격'이 능기가 아닌 상대의 기풍에 기댄 것이다. 기대한 대로 대마가 거의 잡힐 뻔했지만, 조한승은 잡지 못했다. 다 죽어가던 돌을 김지석은 기적같이 살려냈다. 나중에 김지석은 “맛이 나쁜 곳이어서 쉽게는 잡히지 않을 걸로 봤는데 막상 위험했다.”고 안도했다.
보통 이렇게 타개가 잘 되면 타개한 쪽이 유리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경우는 좀 달랐다. 김지석으로서 이것은 한 고비를 넘은 데 불과했다. 조한승이 오른쪽 아래 대마를 잡으면서 다시 약간이나마 우세해졌다. 김지석은 괴로워했다.
◀ 조한승이 마지막 패착을 범한다. 흑1이 안이하게 물러난 수. 백이 2로 찝으면서 이득을 많이 봐 바둑은 뒤집혔다.
바둑은 극히 미세해졌다. 종반, 집중력이 떨어지는 시간, 두 기사 모두 흥분 상태였는지 끝내기에선 잔실수를 주고 받는 가운데 조한승이 마지막 실수를 범했고, 김지석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무리해 승리를 거머쥐었다. 천신만고 끝에 8강 첫 대국 승리는 전기 우승자 김지석의 것이었다.
대국이 끝나고 복기를 마친 김지석은 “내용이 안 좋아서 부끄럽다. 조한승 9단은 마지막에 여러번 이길 찬스가 있었고 쉬운 착각을 했기에 미안한 마음도 든다.”고 했다. 김지석은, 이영구 9단과 목진석 9단 간 승자와 4강전을 벌이게 됐다.
매일경제신문과 MBN․바둑TV가 공동주최하고 (주)GS칼텍스가 후원하는 제19기 GS칼텍스배의 총예산은 4억 2,500만원이며 우승 상금은 7,000만원, 준우승 상금은 1,500만원이다.
▲ 대국시작 5분 전 대기실에 도착한 김지석. 학생 같은 모습이다. 김지석은 대국이 없어도 연구를 하기 위해 거의 매일 한국기원이나 한국기원 근처에 있다.
▲ 왼쪽은 GS칼텍스배 바둑TV해설을 하는 홍민표 8단. 두 사람 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기자 : 신혼 재미 좋아요?
홍민표 : 좋죠~ ^^ (대답한 뒤 김지석 쪽을 바라보며) 김지석 9단의 신혼은 어떤가?
김지석 : 신혼은 벌써 지났죠~ ^^
▲ 돌을 가렸다. 김지석이 홀짝을 맞히지 못해 자리를 바꿨다.
▲ 홍민표 해설자(오른쪽)와 김여원 캐스터가 리허설을 하고 있다.
▲ 방송의 현장! 카메라는 위쪽만 잡으므로 의자는 아주 편안한 걸로~.
▲ 전에도 김지석에게 GS칼텍스에서만 두 차례 진 바 있는 조한승은 이 판에 대한 의욕이 컸다. 그리고 내내 유리했지만 마지막 집중력 싸움에서 밀렸다.
▲ 홍민표 해설자는 조한승에게 ‘포석의 신’이라고 이름 붙이길 주저하지 않는다.
▲ 대국 중 실수를 자책하면서 괴로운 모습도 보였던 김지석은 대국이 자신의 승리로 끝나자 활짝 웃었다.
▲ 복기 도중 김지석이 자신의 의견을 밝히고 있다.
▲ 깊어가는 밤, 김지석이 바둑TV의 인터뷰에 응했다. 4강 상대로 목진석 9단과 이영구 9단 중 누가 좋은가? 물음에 “상대전적에서 뒤지고 있어 이영구 9단이 더 끌린다.”고 답했다(이영구는 8승3패로 김지석에게 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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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도사
고요한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