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는 옥(獄), 두 번째는 호(好), 세 번째는 기(器), 네 번째는 중(重)이었다. 글자를 밟을 때마다 송학수의 파자가 떨어졌다.

“두 마리의 개가 말하는 것을 보니, 여자 사구(四口)에 개를 타 좋은 그릇 얻겠네. 그러나 어쩌랴, 한 번 마음 잘못 먹으면 천 리 만 리 저승길 떠나게 됨을.”

어떻게 하여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그렇게 꿰뚫을 수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오노다가 질겁한 것처럼 이것이 서울 장안에 송학수의 이름을 높인 파자점의 묘미였다.

옥(獄)은 두 마리의 개(犭＋犬)가 말하는 것(言)으로 풀고, 호(好)는 여자(女子)로, 기(器)는 사구(四口)에 개(犬)를 타는 것으로, 그리고 중(重)은 상하를 파자해 천리(千里)로 풀어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호(好)와 기(器)를 풀 때 일진을 참조했다는 점이다. 파자의 원칙대로라면 ‘호기’는 아주 좋은 그릇이란 뜻의 ‘호기명(好器皿)’이다. 그러나 송학수는 ‘아주 좋은 그릇’이 아닌 ‘여자가 중언부언 지껄이며 개를 탄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점사가 좋지 않은 게 당연했다.

“허허허, 사람을 죽이기 위해 왔다면 어찌 자신의 몸을 내던질 각오를 했는가?”

오노다는 그 자리에 꿇어앉았다. 부들부들 몸을 떨며 고개를 숙이자 박인철이 환하게 웃으며 나무랬다.

“이 사람아, 아무 짝에 쓸모없는 내 목숨을 원한다면 내어 주어야지. 무에 감출 게 있는가.”

그녀는 더욱 사색이 돼버렸다. 공이오구(0259)의 규칙대로라면 실패했을 때엔, 어금니 안에 넣은 독물을 삼키고 목숨을 끊어야했다. 그러나 그럴 배짱이 그녀에게 없었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세상을 버린다는 것도 자신 없었다. 송학수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1천 몇 백 년 전의 닌자(忍者)가 어찌 사내뿐이겠는가? 어떤 것이 대의(大義)인지도 모르고 목숨을 가볍게 여기다니 참으로 불쌍한 위인들이로다.”

갑자기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한손으로 방바닥을 짚더니 옆으로 고꾸라졌다. 이미 독극에 중독된 듯 피부에 나타난 반점(斑點)이 도드라졌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청(靑) 2호’라는 독극물에 중독된 것이다.

전사(戰士)가 길을 떠날 때 결사의 의지로 마신 한 잔의 술이 화근이었다. 이 술 속에는 사흘 안에 해독해야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청 2호’라는 독극물이 풀어져 있었다. 공이오구의 원칙에 의하면 상대와 자폭하거나 일이 잘못돼 구금되더라도 사흘 안에 해독제를 못 구하면 목숨을 잃었다. 숨이 넘어갈 듯 턱 끝에 닿아있는 송학수의 연락을 받고 우암은 한달음에 사직동으로 달려왔다.

“도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토록 급하십니까.”

단독으로 우암을 맞이한 송학수는 대뜸 본론으로 들어갔다. 뜸을 들일 여유가 없었다.

“내 우암을 광주에서 만났을 때 그런 얘길 들은 기억이 있어 청했소이다. 내 먼 친척 되는 아이가 뜻하지 않은 증세로 고생하고 있지 뭡니까. 해서….”

송학수는 즉시 오노다가 누워있는 곳으로 안내했다. 그녀의 얼굴빛은 하얗게 착색되었다가 검은 빛이 짙어져가는 상태였다. 맥도 가늘게 뛰다 느려지는 사증(死症)이다. 이번엔 가슴 언저리에 손바닥을 얹어보았다. 온기가 있는 대신 주위가 차가왔다. 혀와 눈꺼풀까지 뒤집어보고서야 결과를 뽑았다.

“이 같은 증셀 본 적 있습니다.”

“아시겠소?”

“송원장께서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그렇잖음 저 역시 바른 처방을 줄 수 없습니다.”

“그리하리다.”

“이 처녀는 누굽니까?”

“허허허, 그리 물으니 아니 말할 수도 없습니다. 이 아이는 어떤 연유인지 사회민주당 부총재 박인철이를 살해하기 위해 왔답니다. 본래의 뜻은 거기 있었으나 이 집에 들어온 후 마음을 달리 먹었는데 갑자기 이 소란이지 뭡니까.”

“흐음, 그들이 공이오구(0259)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공이오구?”

“태평양 전쟁 당시 자폭대로 불리던 가미가제(神風)와 같은 거지요. 벽암(碧岩)이 그런 말을 했습니다. 머지않은 장래 신종 가미가제가 나타날 것이라고요. 그들은 실로 생각지도 못할 방법을 동원해 자폭할 것이라 했었지요.”

우암은 그 이유를 머리섶에 꽂은 금보요의 나비 장식이라 지적했다. 요즘이 어떤 시기인데 이런 장식을 쓸 수 있느냐였다. 서둘러 나비 장식의 고리를 풀고 두 개의 앰플을 찾아냈다.

“송원장께서 보셨으니 아실 것입니다만, 이 앰플은 일회용입니다. 이것을 자신의 혈관에 꽂은 다음 남자와 관계 하면 병원체가 자동으로 옮겨갑니다.”

“허어?”

“정계나 재계의 거물들을 손아귀에 넣을 때 미인계로서 상대를 제압하는 수법입니다. 상대가 순순히 따라 준다면 일정량의 해독제를 주겠지요. 그러나 고집을 피운다면 언론 등에 공개해 치명타를 입힐 겁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치명상을 입게 되지요.”

“어찌 그런 일이….”

“일본인이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그들은 지금으로부터 2천 4백여 년 전에 손자(孫子)가 만든 병법을 자기네 체질로 바꿔놓았어요. 바로 인술(忍術)이죠.

일본에서 닌자(忍者)들이 두각을 나타낸 것은 1천 3,4백여 년 전 성덕태자(聖德太子) 땔 겁니다.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인술은 가장 악랄하게 모양새를 바꿔 왔습니다. 어려운 고비를 반전시키기 위해 상대를 치는 법술이다 보니 상식을 벗어나기 마련이죠.”

송학수는 어이없다는 듯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는 차마 믿기지 않는다는 듯 재차 확인했다.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단 말씀입니까?”

“이렇게 보시고도 믿지 못하십니까.”

“한데 공이오구란 명칭은 어디서 온 겁니까. 이들 역시 닌자(忍者)들입니까?”

“아닙니다. 닌자완 다른 특성이 있습니다. 상대를 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도구 삼아 공멸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빛으로 표현합니다.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 일본을 세계 속에 빛나게 하려는 행동, 자신보다 전체를 생각하는 마음, 이러한 모든 것을 빛으로 나타냅니다. 그게 공이오굽니다.”

“?….”

“그들이 이런 명칭을 사용하게 된 것은 종교적인 문제 때문으로 봅니다. 한국 내에 급진적으로 확산되어 가는 기독교와 한국의 민간신앙 내지 불교를 믹서해 놓은 종교 행동이 그것이죠.

특히 기독교에서는 찬송가 259장에 ‘빛의 사자들이여’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죄로 어둔 밤을 밝게 비추라는 성도(聖徒)들의 전도 행위를 설명케 하는 찬송인데, 그들이 259장에 0을 붙인 것은 빛의 사자로서의 행위는 명예나 두려움, 공포나 또는 그 밖의 모든 것을 벗어나 더 이상 세상적인 미련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일단 명을 받으면 그들은 기계적으로 상대를 궤멸시킵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 그것도 여인의 몸으로 스스로를 자폭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신종 가미가제라는 말에 송학수의 머릿골이 쭈뼛해졌다.

“하면, 중독된 이 아가씰 살릴 방법이 없단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