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충(杜冲)의 힘으로 보명궁을 출입한다는 말에 사도왕후는 깜짝 놀랐다. 강정비약이란 달리는 말에 채찍질하는 약재다. 좀더 힘을 내 원하는 목적지까지 숨 가쁘게 달려갈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치는 힘의 원천이다.

그러나 비약이란 건 힘이 넘치는 사내가 이따금 사용할 때 약효가 뛰어난 것이지 아랫것들의 보고처럼 기력이 떨어진 사내가 방사를 위해 강정비약을 복용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라면 더 큰 문제를 불러들일 수 있었다. 사도왕후는 자신이 너무 방임(放任)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대책마련에 나섰다.

“오늘은 늦었으니 사실을 알아 볼 수 없다. 일단 날이 밝으면 미실(美室)을 내 거처로 불러 정황을 알아본 뒤 방책을 물어보리라. 그런 줄 알고 너희도 준비하거라.”

시비(侍婢)들이 물러가자 사도왕후는 자신의 거처에 머무는 약사로 하여금 보명궁 소식을 들었다. 약사(藥師)들은 각각의 전각에 있지만 그들이 사용한 약재는 보고가 의무화였다. 그러나 동륜태자와 미실이 기거하는 보명궁에서 사용한 약재는 지금껏 보고서가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다. 이에 대해 왕후 전각의 약사는 자신의 생각을 내비쳤다.

“소인이 생각하기론 그곳 보명궁은 사량궁의 염파(炎巴) 선생이 출입하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아마도 왕궁의 약재가 아니라 가야에서 가져온 것으로 이제껏 비장(秘藏)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 동륜태자와 왕래가 있었던 탓에 종류를 알 수 없는 미약을 상당히 제공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하면, 태자 몸에 이상이 생긴 건 미약 때문인가?”

“소인의 생각엔 그런 것으로 보여집니다. 다만···.”

“다만?”

“미약이 효능을 나타내려면 비싼 약재를 사용해야 하는데 거기엔 지소태후가 관여하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무슨 이유로?”

“왕후마마, 동륜태자에겐 만호공주가 정실입니다. 그러나 왕후마마도 만호공주를 살펴보십시오. 그는 지소태후마마가 정분을 이룬 분의 따님입니다. 이것으로 보면 이번 일은 지소태후마마의 엄명으로 이뤄진 일이라고 볼 수 있나이다.”

“하면, 태후마마가 내 아들의 명줄을 노린다는 게냐?”

“어찌 손자의 목숨을 취하고자 하겠나이까. 이 일은 당신의 아드님 세종 전군을 배반하고 동륜태자 품으로 날아간 미실 낭주의 미움 때문에 벌어진 일로 보여집니다. 태자마마의 몸에 이상이 생기면 그와 함께 한 미실 낭주가 당연히 책임 추궁을 당할 것이니 소기의 목적은 이뤄진 것이 아니겠나이까.”

“흐음, 중원의 고사에 그런 말이 있음을 내 들은 적 있다. 힘이 없고 나약한 토끼는 언제나 안전을 위해 피해 나갈 굴을 셋이나 판다지 않느냐.”

“그러하옵니다.”

“그 점이 형편없는 토끼라고 생각할지 모르나, 한편으로는 영악한 토끼로 평가할 수 있는 일이지 않느냐. 나는 가끔 녹송석으로 만든 물항아리에 든 고기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과연 저 물고기들은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잠을 자지 않고 우리를 지켜주는가’ 라고 말이다.”

사실 물고기에 관한 설화는 이후에도 끝없이 발전해 잠을 자지 않는 것처럼 인식해왔다. 끝없이 움직이며 우리의 시야를 즐겁게 만드는 물고기는 왕족이며 일반인들의 금고 자물쇠로 애용돼 오고 있다. 진흥왕에게 모든 실권을 넘겨주었지만 아직도 내명부엔 태후의 명이 칼날처럼 살아있었다. 대소신료를 비롯해 금단진전(金丹眞殿)의 계집들 역시 지소태후의 비위를 맞추고 눈치보기에 여념 없었다.

조정의 중신들 일부가 돌아섰지만 모든 권한은 지소태후의 한마디에 살아났으니 막강한 힘은 여전히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더구나 아드님 세종 전군을 위해 미실 낭주에게 독수(毒手)를 퍼부을 생각을 했다고 본다면 교활한 미실보다 사랑 놀이에 정신이 빠진 동륜태자가 위험에 빠질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몇 번이나 스스로 자신에게 묻고 답을 찾았지만 결론은 언제나 흐릿한 안개 속이었다. 그러던 사도왕후의 눈이 번쩍 치뜨였다. 바람처럼 묘안(妙案)이 떠오른 것이다. 약사에게 물음이 날았다.

“지금 대왕은 어디 계신가?”

“소인이 듣기론 한식경까지 공무 중이었으나 지금은 파한 줄 아나이다.”

“

어디 들르실 때는 없으시다던가?”

“예에.”

“그렇다면 자넨 대왕께 달려가 내가 잠시 보잔다고 말씀하시게. 혹여 다른 일이 있으시더래도 반드시 모셔와야 하네. 태자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음을 잊지 말게. 나는 대왕이 즐겨 마시던 소흥주(紹興酒)를 준비하겠네.”

▲소흥주(紹興酒) ; 중원의 명주

▲두충(杜冲) ; 약재의 하나

▲금단진전(金丹眞殿) ; 궁에 들어온 여인을 교육시키는 기관

▲녹송석물고기는 잠을 자지 않고 도둑을 지켜준다는 미음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