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륜태자가 생각하기론 귀신들이 널뛰는 황천 언덕을 찾아갔으니 알게 모르게 혼령의 앙화(殃禍)에 빠져들었을 것이란 예감이었다. 그런 탓에 보명궁에 돌아온 그녀를 보는 순간 동륜태자는 무엇보다 그녀의 안색에 변화가 있는지를 살폈다. 물론 <양생요집(養生要集)>엔 귀교와 같은 방사(房事)의 금기(禁忌)가 있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유학의 경전에 대해 가르침을 내린다는 명목으로 사량궁에 들어온 염파는 왕족들이 관심을 가진 <화타침구경(華陀鍼灸經)>을 비롯해 방사의 금기에 대해서도 열변을 토한 적이 있었다. 특히 배(腹)나 머리(腦)를 여는 개복술과 마취술은 지금까지 그 비밀이 불가사의로 남아있다. 그게 오히려 <삼국지>를 읽게 하는 묘미인지도 모른다.

특히 <양생요집>엔 달이 뜨고 지는 날을 택해 금기일(禁忌日)로 잡았기에 반월성의 남녀들은 깊은 관심을 기울여 왔었다. 그들이 알기에 만월성에서 이곳 반월성으로 도성을 옮긴 것은 여인네의 득세를 내세웠기 때문이었기에 동륜태자가 흥미로운 관심거리를 놓칠 리 없었다.

“태자마마, 음력 초하루와 그믐, 상현(上弦)과 하현(下弦) 그리고 만월에는 달갑지 않은 금기사항이 있으니 유의하셔야 합니다. 날짜의 일진에 병(丙)이나 정(丁)자의 천간이 들어 있으면 그 날은 음신(陰神)의 날입니다. 또한 음력으로 매달 스무여드레와 큰 바람이 불거나 모진 비가 내리고, 지진이나 번개 천둥치는 날은 방사를 치르기에 적합한 날이 아닙니다. 또한 너무 덥거나 너무 추운 날도 피해야 하며 사계절이 시작되는 날도 피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요.”

계절이 시작되는 날이란, 봄의 입춘일(立春日), 여름의 입하일(立夏日), 가을의 입추일(立秋日), 겨울의 입동일(立冬日)로 이 날들은 방사를 치르기에 적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동륜태자에겐 한 가지 경고사항이 더 붙었다.

“태자마마께서는 특히 본명일(本命日)을 주의 하셔야 합니다.”

“그러지요.”

태자는 그러겠노라 고개를 끄덕였으나 본명일이 뭔지도 몰랐다. 염파가 몇 번이나 들려줬겠지만 태자의 관심사는 그 점을 빗겨나고 있었다. 본명일은 자신이 태어난 해의 간지가 들은 날이다. 예를 들어 갑자생(甲子生)의 경우 ‘갑자일(甲子日)’이 본명일인데 태자는 오히려 그 날을 택해 방사를 치르는 일이 많아졌다. 그는 언제나 자신만만이었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난 건 칠성신(七星神)의 보살핌 때문이야. 그런데 굳이 날짜를 택해 이런 날은 어째서 피하고 저런 날은 어떤 이유로 피한다면 웃기는 일이지. 그런 날을 피해 방사를 치른다면 몇날 며칠이나 되겠어. 그 <양생요집>인가 하는 것도 그래. 자신이 태어난 생일날 방사를 금하라는 건 너무 심하잖아.”

염파의 가르침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하지(夏至)가 지나면 동지(冬至)전까지에 병오일(丙午日)과 정사일(丁巳日)이 있고, 동지 후엔 경신일(庚申日)과 신유일(辛酉日)도 있다. 피해야 할 날이다.

목욕을 한 직후나 먼 길을 걸어서 피로했을 때, 너무 기뻐하거나 화를 냈을 때도 방사를 치르는 건 옳은 법도가 아니다. 사내는 정력이 쇠퇴해지는 나이에 이르면 아름다운 여인과 즐거움이 있다 해서 함부로 사정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라 했다. 그러나 성격이 별스럽게 뜨거운 태자가 그런 것을 염두에 둘 리 만무였다. 황천에 다녀온 미실에게서 이상한 기미를 발견하지 못하자 다짜고짜 달려든 것은 성격 탓이었다.

주위에 어느 누가 있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대로, 마음의 빈 곳을 채운다는 것밖엔 다른 의미가 없었다. 그렇다보니 방사는 자연 일방적이었다. 먼 길을 달려 온 망아지마냥 다급한 숨소리를 푸우! 푸 쏟아내고 사지를 쭉 뻗은 채 숨을 몰아쉬자 방안에서 무언가가 타오르는 기미가 있었다. ‘회춘방(回春方)’이란 미약 처방이 무르익는 중이었다. 이것은 나이든 사내가 아들을 낳기 위해 쓰는 것이지만 다르게는 파정(破精)을 하고 몸이 시들해진 사내를 위해 미향(媚香)을 피워 기력을 충동시키는 방법이었다.

한차례의 열정을 쏟아낸 후 늘어진 동륜태자는 흩어졌던 진기가 살아 돋고 힘이 모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점잖게 <동현자>의 비법을 생각하며 몸을 움직였다. 이 날이 음력으로 5월 16일이니 하늘과 땅의 암수가 서로 만나 기쁨을 나누는 날이다. 왕실에서는 당연히 방사를 피하는 날이다. 염파는 왕손들이 들척거리는 걸 막기 위해 언어를 교묘하게 내돌렸다.

“여러분들은 결코 이 날만은 방사를 피해야 합니다. 천지 대자연의 암수가 사랑을 나누는 날이니 이 날만은 양보를 해야 합니다. 이를 범하면 3년 내에 죽게 될 위험이 따릅니다. 어느 분이 저에게 근거를 대라고 하여 다시 말씀드립니다. 천지의 암수가 교합하는 이 날은 하얀 포목을 1자(尺) 끊어 16일 저녁때 동쪽 연못둑에 걸어둡니다. 다음날 아침 살펴보면 반드시 피가 묻어있을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은 이 날만은 방사를 양보해 주십시오.”

▲금기(禁忌) ; 달의 상현이나 하현 월식이 있는 날엔 방사를 피해야 한다.

▲미향(媚香) ; 불을 켜는 초를 3등분하여 방사가 이뤄질 수 있는 시간에 맞춰 요초분(瑤草粉)이 타들어 가게 하는 것을 말한다.

▲곰조각단검은 호신용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