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온몸이 들끓어 오르는데 오늘만큼은 왠지 미인을 그냥 두고 싶다. 오늘은 미인을 완상하는 것으로 그치리라···.>

‘저런, 저런. 저 계집이 읽으라는 서책은 읽지 않고 무얼 하는 게야. 날 피말려 죽일 속셈이야 뭐야?’

동륜태자의 내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초의 넉살스러운 염담은 계속되었다.

<···아, 정말 이상도 하여라. 오늘은 왜 이리 몸이 말을 듣지 않을까.>

‘얼씨구, 지랄하고 자빠졌네.’

<···나는 미인을 사랑한다. 미인은 아무래도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아야 하리. 오늘밤은 욕망의 날개를 접고 미인을 보는 것만으로 그쳐야 하리.>

‘아주 육갑을 떠는구먼. 내 이년을 당장 거덜내리라.’

동륜태자가 서슬이 시퍼런 낯으로 침상에서 일어서려는 기미를 보이자 초초는 얼른 얘기의 물꼬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러나 미인을 어찌 두고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리. 아름다운 꽃향기는 자신만 취해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거늘, 동륜태자는 생각을 바꾸었다. 여인의 측면을 파고들며 강하게 조여안았다. 이것이 중원에서 유행하는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가 아니겠는가.>

바로 이 무렵에 미약에 취한 미실의 몸이 풀리는 기미가 일어났다. 이제껏 그녀가 잠잠히 있었던 것은 염파에게서 수면향(睡眠香)을 가져온 덕분이었다. 동륜태자는 죽은 듯 누워있는 여인의 모습이 들끓어 오르는 욕기를 자극했다. 동륜태자는 이제부터 흘러나올 다음 얘기를 기다리는데 초초는 김새는 짓을 고무줄놀이 즐기듯 하고 있었다.

<···아, 이게 왠일인가. 내 몸이 말을 듣지 않다니. 내 몸이 이렇듯 망가졌단 말인가.하긴 너무나 주색을 밝혀···.>

마침내 동륜태자는 노기가 차올라 침상에서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곁에 놓인 비도를 뽑아 날리려는 순간, 잠에서 깨어난 미실의 발길질에 저만큼 나가 떨어졌다. 놀란 것은 초초였다. 만호공주를 생각해 좀 더 고약스럽게 미실과 동륜태자를 괴롭히고자 힘을 기울였는데 뜻밖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다행히 급소를 피한 탓에 동륜태자는 멋쩍은 웃음을 흘리며 부스스 일어났다.

“중원의 사내들은 믿음이 가지 않은 말을 한다는데 그게 사실인 모양이야. 미인이 수면향(睡眠香)에 취한 게 욕탕에서 나온 것보다 훨씬 감칠맛이 있다는데 그도 아닌 모양일세. 저번에는 눈이 하나 뿐인 척안녀(隻眼女)가 별미라 하여 안아 보았더니 그 역시 별 맛이 없더라구. 헤헤헤, 미실 낭주. 나는 태자의 몸으로 서라벌 사내들이 하지 않은 방법으로 사랑을 나누고 싶다니까.”

일이 비록 들통났으나 동륜태자는 대수롭지 않게 흘려버리려 했다. 그것을 모를 리 없건만 미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비를 불러 술을 가져오게 했다. 그 바람에 어려운 자리를 모면할 수 있었던 초초는 한달음에 만호공주에게 달려와 모든 사실을 까발려 놓았다. 얼굴이 달아오른 만호공주는 초초의 얘기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들은 후 지소태후 거처로 달려갔다.

“그래, 태자는 돌아왔느냐?”

“아닙니다, 태후마마. 요망한 미실이 중원의 황제들이 즐겨 쓰는 방법을 사용하나이다.”

“그게 무슨 소린고?”

“태후마마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왕실은 이곳에 모인 상음(上淫)의 여인이 쓰는 방법이 있고, 민간에는 하음(下淫)의 아낙네가 쓰는 방법이 있다 했나이다. 하온대 요망한 미실은 태자마마를 움직여 뒷문을 열고 맞이했다 하옵니다.”

“뒷문을 열어?”

“신첩도 어찌 사용하는지는 모르나 이름이 옥수후정화(玉水後庭花)라 하온데···.”

“오호호호호. 미실 고 요망한 것이 급하긴 급했나 보구만. 달거리가 있어 음문(陰門)을 사용치 못해 지저분한 뒷문을 사용해?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나이 스물도 안 된 터에 그 문을 사용하는 방법을 아는 건 쉽지 않을 텐데.”

사실이 그랬다. 왕실에서도 남자들끼리 남색(男色)이 공공연히 행하다 보니 용양군(龍陽君)이란 잡직의 벼슬아치도 생겨났다. 신라의 왕과 중신들이 자신의 허전한 잠자리를 남색(男色)으로 채운 건 나라 법으로 정해 있었다. 부인이 먼저 세상을 떠난 늙은 대신을 위해 신라의 제왕은 신하들에게 상으로 용양군을 내렸다. 그들로 하여금 늙은 신하를 찾아가 하룻밤 남색을 제공하라는 뜻이었다.

이런 제도가 있었지만 옥수후정화는 제왕들의 뒷문따기다. 당시 신라에 알려진 것은 진(陳)나라의 제왕 진숙보(陳叔寶)가 즐겨 애창한 ‘옥수후정화’였다. 사내가 정상적으로 여인을 사랑하지 않고 뒷문을 따는 것이므로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 변태적인 성행위였다. 그런 이유로 주지육림에 빠져 나라를 망친 진숙보에 대한 비난의 노래가 후일에도 끊기지 않고 잇대어 진다. 당(唐)나라 시인 두목(杜牧)의 시에 이런 것이 있다.

안개는 한수를 싸고 달빛은 모래를 싸는데

밤에 진회에 머무니 주막이 가깝구나

술 파는 여자들은 모르리라 망국의 한을

강을 사이에 두고 여전히 노래하는구나 후정화를

▲옥수후정화(玉樹後庭花) ; 여인의 뒷문을 따며 부르는 노래. 진(陳)나라는 이로써 망했다고 전한다.

▲용양신 ; 남색꾼에게 내린 잡직 벼슬

▲봉황술통은 왕실에서 사용하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