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실이 보명궁에서 동륜태자와 만난다는 보고를 듣자 만호공주는 태후전을 찾아가 하소연을 풀어놓았다. 왕실의 가장 웃어른이기 때문에 가장 쉽고 냉철한 판단을 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했기에 순서를 지켜 첫째는 우는 연습, 둘째는 놀래는 연습, 셋째는 화를 내는 과정을 적절히 연출했다.

“태후마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무슨 일인데 그러느냐.”

“태후마마의 며느님인 미실 낭주께서···.”

“미실 그 아이가 왜?”

“태자마마와 염사(艶事)를 벌이고 있나이다.”

지소태후가 듣기론 ‘태자마마와 염사’는 만호공주가 잘못 아는 것이라 했다. 미실은 당연히 세종 전군의 품에 안겨 요망한 짓거리를 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만호공주가 잘못 말한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다시 동륜태자와 미실의 얘기가 튀어나오자 이마를 찌푸리며 반문했다.

“가만 가만···. 미실이 누구와 만난다고?”

“태자마마십니다.”

“세종 전군이 아니고?”

“그래서 신첩이 태후전(太后殿)으로 달려왔습니다. 태후마마께선 색공이 신국의 도를 이루는 지름길이라 하셨습니다만 이젠 그로 인해 왕실이 문란해지고 있나이다. 어찌 전군 마마를 모시는 미실 낭주가 언감생심 태자마마를 넘겨다 볼 수 있겠나이까.”

그에 대해 지소태후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왕실은 온갖 독벌레들의 난투장이다. 눈만 뜨면 지략과 계책이 꿈틀거리고 음모와 야합이 이루어진다. 하루 전까지 살생지수(殺生之讐)가 권력을 잡기 위해 음모의 동반자로 바뀌는 게 궁전이다. 그 점은 누구보다 지소태후가 잘 알았다. 지소태후에게서 무거운 신음이 쏟아졌다.

“그러니까··· 온갖 소동을 일으켰다가 이젠 그것이 잠잠해지자 다른 문제를 일으켰다는 것이구나. 가야 땅이 소란스러워 세종 그 아이를 출정시킨 것은 여러 모로 생각이 있어 벌인 일인데···, 미실 그 아이가 기다렸단 듯이 태자를 가까이 한단 말이지. 고얀 것, 전날 내가 사다함이 출정하자 전군에게 보냈던 일을 앙갚음한단 말이지. 태자를 움직여 왕실을 소란스럽게 하면 어떤 벌이 내리는지 내 따끔한 맛을 보여주리라.”

드디어 지소태후를 움직일 수 있다는 생각에 만호공주 역시 희색이 만면했다.

“언제부터 고것이 태자를 만난다는 말을 들었느냐?”

“그것은···.”

만호공주는 사실대로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오늘이 처음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뒷수쇄를 흐린 것인데 지소태후는 슬픈 감정 때문에 뒷말을 잇지 못한다 생각하고 희망있는 말을 던져주었다.

“네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는 알고 있으니 그만 물러가거라. 고 요망한 것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잊지 않고 내게 전해준다면 그것을 근거로 삼을 것이다. 내가 내명부 아이들 대신 너의 보고에 믿음이 있다는 걸 명심하거라.”

“예에, 마마.”

만호공주는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걸음을 빨리하여 자신의 처소로 돌아왔다. 의당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 초초(屮屮)라는 시비가 보이지 않자 다른 시비가 얼른 끼어들었다.

“공주마마, 초초는 보명궁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았나이다. 아무래도 오늘은 늦을 것 같다는 말이었나이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시각 보명궁엔 술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문을 보합문(寶蛤門)이라 한 것은 은밀한 비밀이 숨어 있었다. 즉, ‘귀한 조개들이 머무는 집’이었기 때문이다. 귀한 조개들은 단지 여인들을 나타내기 위한 명칭이 아니었다. 왕가의 자제들이 손을 댈 수 있는 여인들이란 의미에서 그런 말을 사용한 것이다.

이곳에선 상사주(相思酒)가 유명했다. 상사초가 피는 구시월에 꽃술을 신라주에 담그는 것으로 맛매가 신라주와 얼크러져 혀끝을 찌르르 울렸다. 풍류가들의 말처럼 그런 느낌이 오는 것은 바야흐로 ‘주도삼잔(酒道三盞)’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석 잔 술을 마셔야만 대자연을 품을 수 있는 지경에 빠진 것이니 이것은 사내의 호기(豪氣)를 시험해 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동륜태자는 그렇듯 운치 있고 멋들어진 풍류가들의 놀이는 아예 관심이 없었다. 그는 술에 취하자 다짜고짜 미실에게 덤벼들었다. 그것은 성희(性戱)를 나누기엔 적합지 못한 궤상(跪像)의 위치였다.

이것은 여인이 의자에 앉아있는 것으로 사내의 몸을 받아들이기엔 적합한 위치가 아니었다. 의자는 비록 호자(虎子)였지만 등을 움직이거나 엉덩이를 움직일 수 없었고 오로지 사내의 움직임과 기교에 의해 일을 치를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특히 궤상의 체위는 <동현자>나 <소녀경>에 이것이라고 가르침을 내린 부분이 없었기 때문에 섣불리 이런 장소에서 교합을 시도했을 때는 낭패를 보기 일쑤였다.

동륜태자가 그랬다. 그는 성급한 마음에 달려들었을 뿐 방법을 아는 것은 아니었다. 벌써 후회하고 있었을지 모르지만 자신의 하복부에 얼굴을 들이민 태자의 얼굴을 두 손으로 받쳐든 채 슬며시 엉덩이를 든 채 의자를 뒤로 밀었다.

▲염사(艶事) ; 사랑을 나누는 일

▲살생지수(殺生之讐) ; 원수

▲궤상(跪像) ; 여인은 의자에 앉아있고 사내는 무릎을 꿇은 자세

▲옥환(玉環) ; 옥으로 만든 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