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소태후 입장에선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자신의 힘을 빼앗겨 왕실의 자리만 차지하는 사람이 되기보단 남아있는 여력을 모아 끊어질 듯 위태로운 끈을 단단한 동아줄로 만드는 방법이었다. 사실 그녀에겐 진흥왕이 쉽게 거절치 못하는 비방이 있었다. 그것은 불교의 한 갈래인 좌도밀교파(左道密敎派)가 전한 오마사회(五摩事會)란 비밀의식이었다.

연화사가 은밀히 속삭인 이것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지금도 살아있다. 수준 이상의 수행자들을 오마사회(Panchamakara)라고 부르는 비밀의식(秘密儀式)이다. 역사적으로 이 의식(儀式)은 역대 중원의 주지육림(酒池肉林) 놀이를 펼치는 제왕들에게서도 나타난다. 한마디로 말해 ‘집단성희(集團性戱)’다. 나라와 민족의 가장 높은 자리에 있다보면 남들이 못하는 짓을 하고 싶은 게 권력자들의 탐심(貪心)이다.

진흥왕이 어려서부터 기가 약해 여인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것을 지소태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의 힘이 날아간 화살의 끝자락처럼 힘없이 떨어지면 그것을 되돌릴 방법으로 생각해낸 게 이 비방이었다. 그 방법을 쓰기 위해 겉으로는 전장에 나간 화랑들을 위무한다는 명목으로 만월성에 복숭아나무를 심고 ‘남도’라 부르며 꾸준히 준비해 온 것이다. 서른 명 남짓한 측근들을 불러모은 것은 그 숫자로도 가능한지를 살폈지만 연화사(蓮花師)에게 들은 그런 정취가 없자 생각을 바꾼 것은 사실이었다.

오마사회(五摩事會).

연화사는 이 모임을 이끌려면 일정한 수행을 한 수련자 64명이 모여 정욕을 해탈한 경지에서 돌아가며 상대를 교체하는 모임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임에 참석하는 여인을 신비(神妃)라 칭하는데 좌도밀교에선 ‘샤크티’라 부른다. 밀교에서는 방사를 통해서만 성취자가 될 수 있고 그로인해 성불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런 여인을 부르는 이름이 있다. ‘다키니(Dakini)다.

사내를 믿음의 세계로 인도하는 요정(妖精)이라고 불교에서는 ‘다키니’를 인정한다. 이 요정은 사람이 죽기 6개월 전에 그 사람의 심장을 파먹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의학에서도 환자가 암 등으로 밝혀질 때 그 사람에게선 생체에너지 오라(Aura)가 발생한다. 이것은 본인이 알 수 없는 전조이기 때문에 현대의학은 이것을 측정하는 데 힘을 기울인다.

한방의학은, 듣고(聞) · 묻고(問) · 얼굴 색을 관찰하고(望) · 맥을 짚는(切) 네 가지 진단법을 사용한다. 특히 ‘얼굴 색을 관찰하는’ 관형찰색(觀形察色)의 연구를 독립시켜 정밀하게 연구해오고 있다.

지소태후는 자신이 알고 있는 오마사회의 성희(性戱)를 앞자리에 놓고 진흥왕에게 협상을 벌였다.

“주상, 다행스럽게도 주상이 사내의 힘을 찾았으니 종사를 위해 그만큼 기쁜 일이 어디 있겠소. 그런 주상에게 어미로서 줄 수 있는 선물이 있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오만, 그걸 이유로 세종 전군에게 병부의 권한을 달라는 건 다소 무리겠지요.”

“아닙니다, 태후마마.”

“주상이 세종을 중히 쓴다 했으니 어미가 무엇을 더 바라겠소.”

“소자는 진즉부터 세종 전군에게 병부의 대사(大舍) 자리를 내리려 했나이다. 그런 차에 마마께서 하신 말씀이 있어 결정을 앞당긴 것 뿐입니다.”

“오호호호, 그래요. 역시 주상은 나의 아드님이십니다. 내가 지금껏 편히 숨 쉬고 있는 건 모두 주상의 덕입니다.”

얼굴에 깔린 온갖 잔걱정이 진흥왕의 포용력있는 덕담으로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즐거운 분위기를 깬 것은 대전약사의 보고였다. 그는 남당으로 달려온 세종 전군 처소의 시비(侍婢) 입을 빌어 사태를 다급하게 전하고 있었다.

“태후마마, 대전약사 아뢰옵니다. 세종 전군은 하루 전부터 일체의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 채 자리에 누워 일어나지 않는다 하옵니다. 평소 한 끼니의 식사도 거르지 않는 전군이고 보니 그 같이 행동하는 걸 처소의 시비들은 안절부절못한다 하옵니다.”

“무어라, 세종이 굶어?”

“예에, 태후마마.”

“요즈음 미실이란 요망한 계집이 쫓겨났으니 마음이 상했을 것이오. 귀여워서 키우는 새 한 마리가 새장을 나가도 마음이 스산하거늘 제 계집이 쫓겨났으니 마음인들 아프지 않겠소. 가만 두시오. 전군(殿君)은 하루쯤 앓다 나올 것이오.”

“하오나 마마. 세종은 마음이 여려 식음을 전폐할까 걱정입니다. 태후마마께서 찾아가시어 위로해주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아닙니다, 주상. 내가 어찌 세종의 마음이 움직이는 걸 모르겠소. 하루만 지나면 문을 열고 아무렇지 않게 나옵니다. 그때까지 모른 척 하는 게 세종을 도와주는 것이에요. 울고 싶으면 맘껏 울고 버릴 게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그게 사내지요. 왕궁에서 쫓겨난 계집을 마음 속에 담아 병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주상!”

▲대사(大舍) ; 지금의 대대장 직급

▲오마사회(五摩事會) ; 64명의 남녀가 집단 성희(性戱)를 일으키는 모임

▲말 장식은 무인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