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영흥사는 신령스런 거북이가 움직이는 영귀형(靈龜形)이다. 거북이는 인간에게 복(福)과 수(壽)를 준다는 신령한 영물로 신라가 천년의 왕업을 이어가는 데 보이지 않게 힘을 쏟았다고 할 수 있다. 도읍지를 보면 대부분 학(鶴)이 날개를 펴는 형이거나 달(月)이 차오르는 형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학보다 달을 선호하는 건 학은 잡을 수 있는 반면 달은 꿈속에서나 그런 일이 가능한 인간 한계의 정물(靜物)이다.

그렇다면 영흥사가 그런 형인가? 글쎄 올시다. 경주의 서악(西岳)이 사람들의 입바람을 타고 신령한 곳이다 보니 어느새 선도산(仙桃山)이란 이름이 생겨난 것처럼 이곳 역시 그런 흐름 속에 빠진 것 같다. 왜냐하면 영흥사가 서 있는 주위환경이나 경내를 살펴봐도 그런 지형이라고 못을 박기가 쉽지 않다. 특히 환합전 위쪽의 형태는 영락없이 돼지가 편히 쉬는 모양이기 때문이다.

옥진궁주는 그 점에 착안해 이곳에 옥돼지(玉豚)를 묻고 이름도 아리까리하게 환합전(歡合殿)이라 붙였다.

  암수가 정겹다고 하는 건 교미(交尾)다. 교미를 잘해 새끼를 주렁주렁 낳아야 대우를 받는다. 돼지를 뜻하는 시(豕)에 ‘달 월(月)’이 붙으면 ‘돼지 돈(豚)’이다. 이것은 ‘새끼 돼지’를 의미한다. 미식가들의 입맛을 당기는 두 살 된 암돼지는 ‘파(豝)’다. 이곳 영흥사는 ‘산구형(産狗形)’이기 때문에 그런 지명을 써야 하는데 옥돼지를 묻고 풍수학(風水學)을 변조시켰다.
  개의 경우는 ‘구(狗)’를 쓴다. 우리가 키우는 개도 현대에는 ‘구(狗)’와 ‘견(犬)’으로 갈리고 용도도 다르다. 구(狗)는 사내들이 정력보강의 원동력이라고 낼름대는 보신탕의 재료지만 견(犬)은 애완용 대접을 받으며 편한 삶을 누린다.

그렇게 보면 이곳 환합전도 사용하는 자의 용도에 따라 귀한 터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게 옥진궁주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왕실에서 나온 자가 격식에 맞춰 옥돼지니 뭐니 떠들어 그렇지 엄밀히 말한다면 이곳은 흔하디 흔한 돼지우리나 똥개가 머무는 곳에 불과했다. 
  개나 돼지가 대접받는 건 새끼를 많이 낳아야 가능하다. 그렇다면 미실의 할머니 옥진궁주는 그런 조각상을 안치해야 하는데 이름만 요상스럽게 환합전이라 붙이고 69의 소상을 놓아두었다.

머리를 짓누르는 의문은 사다함의 갈증난 음욕(淫慾)이 다소나마 채워졌을 때 깨달음이 왔다. 옥진 할머니는 자신이 아무리 선대왕을 섬겨 자식을 낳았어도 그것은 바람이 스쳐간 흔적일 뿐 자신이 살아날 방법은 아니었다.

왕실의 피 흐름은 진골정통(眞骨正統)만이 보위를 이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후손들은 69로 얽혀있는 소상(塑像)을 보고 무언가를 확실히 결정하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제왕을 섬겨도 대원신통(代元神統)은 먼지를 일으키지 못하는 대나무 그림자다. 내명부에서도 실권이 없다 보니 겉으로만 귀해 보이는 옥돼지처럼 실익은 없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가? 미실은 가만히 상체를 일으켜 잠이 든 사다함을 내려다보았다. 이 사내. 나라에 공을 세운 장부 중의 장부다. 왕궁에서는 북문의 수비대장 귀당비장(貴幢裨將)이요, 전장에 나가서는 적을 쳐부수는 맹호요 맹룡이다. 이 사람의 아내로 평생을 사는 것도 그렇게 싫지만은 않는 일이다. 더구나 자신의 뱃속엔 사다함의 씨가 자라고 있지 않은가. 자신을 사랑하고 미실이 새처럼 다른 사내의 품으로 날아갈 때도 슬픔의 삼키며 자신의 행복을 빌었지 않은가. 넉넉한 마음 자락은 항상 미실의 마음판에 양심의 비늘처럼 퍼득이고 있었다. 이제 태후의 명으로 첫사랑인 그에게 돌아가라는 명이 떨어졌으니 지난 일을 잊고 행복의 비단을 짜고 싶었다.

‘이젠 왕실 생각을 않는 거야. 사다함 이 사람이면 나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할 수 있어.’

그런데 왠지 마음자리가 어수선했다. 벌려놓은 일을 마무리 하지 않은 채 돌아온 아쉬움은 그녀에겐 떨어지지 않은 미련이었다. 시원한 바람이라도 쏘이면 나을 것 같아 겉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자 하오(下午)의 햇살을 피해 그늘에 앉아있던 비구승이 다가왔다.

“옥진궁주님이 영흥사 창건을 생각하시고 이곳에 들르셨을 때 절을 짓는 것만은 미실 낭주 손으로 해달라고 했습니다. 아마 공덕(功德)이 낭주에게 미치게 할 생각이셨겠지요. 특히 환합전을 지을 때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오욕(五慾)이 발동해 후손들을 많이 생산하라는 소원도 내놓으셨습니다.”

물론 오욕은 그녀 자신이 평소에 느껴왔던 징후지만 이것은 상대하는 사내가 당연히 느껴야 하는 것들이었다. 색사에 임하는 사내가 무작정 자신의 힘만을 내세워 전진해야 하는가. 아니다. 그건 허무맹랑한 강간이다. 사랑은 조율이다. 아름다움 음악을 연주해야 한다. 어느 여인이 소란스럽고 어지러운 음악을 좋아하겠는가.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은 상대방을 사랑하고픈 마음을 유도해낸다고 했다. 왕실의 약사들은 눈만 뜨면 방중서(房中書)를 끼고 살았기에 잠자리에 들어가는 제왕에게 한 소리 뜨거운 말을 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오욕이다.

<옥방비결(玉房秘訣)>에 전하는 오욕에 의하면,

첫째, 여인이 사내에게 껴안기고 싶으면 무엇보다 살며시 숨을 죽인다.

둘째, 사내의 심벌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면 콧구멍과 입이 열린다.

셋째, 정액이 솟아 흘러 괴로워지면 몸을 자주 뒤틀며 사내를 껴안고 나온다.

넷째, 절정기가 가까워지면 땀을 많이 흘려 입고 있는 옷을 적신다.

다섯째, 여인은 결정 직전에 이르면 몸을 경직시키며 두 다리를 뻗은 채 눈을 감는다.

이것이 오욕의 형상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상황까지 오기 전에 여인이 펼쳐야 할 비방이 있었다. 그것이 사랑하는 님과 정상적인 잠자리를 유도하는 ‘사내를 살리는 비방’이었다.

▲ 영귀형(靈龜形) ; 풍수학이지만 거북이는 서민적이라기 보다는 귀족적인 냄새가 강하다.

▲ 산구형(産狗形) ; 개가 많은 새끼를 낳는 땅. 이것은 손이 귀한 집안에서 찾는 땅이다.

▲ 옥방비결(玉房秘訣) ; 남녀의 즐거운 잠자리를 이끄는 방중에 관한 비결서

  ▲ 옥돼지 ; 이것은 귀한 자리에 있는 이들이 노리개 삼아 몸에 지닌 것이지만 다르게는 후손이 귀한 집안에서 자자손손 대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