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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일，명인도 때때로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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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책은 어느 정도 많을까.잡지를 제외해도 수천권 정도 되지 않을까.그 중에서 프로들은 어느 정도의 책을 읽을까.
솔직히 말해 다 읽지는 못한다.고금(古今)의 모든 책을 다 섭렵하지 못한다.그러나 웬만큼 이름을 날리는 책은 다 읽는다.그 정도가 되어야 바둑이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네모진 바둑판이 둥글게 보이는 정도가 된다.한 눈에 바둑 전체가 조감(照鑑)된다.부분과 부분이 따로 놀지 않고 전체로 융화가 된다.그래서 10명,20명,심지어는 100명과의 다면기(多面棋)를 둘 때 한 눈에 다음 수가 감각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그 정도가 되어야 프로급이라고 하겠다.
프로 중에서 명인 정도면,그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그들은 어느 정도의 책을 보고 연구하였을까.아마추어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야말로 모르는 것이 없는 실력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누구나 인간.명인이라도 평범한 수를 지나치는 경우가 가끔 있다.명인이기에 더욱 그러하다.왜냐,책에 얽매이지 않으니까.
다음 기보를 하나 보자.얼마전 KT배 16강전에서 일어난 사건.서봉수 9단(흑)과 김영환 6단의 대국인데,백 [△] 의 기초적인 수를 서봉수 9단이 못보았다.다음 흑A이면 백J까지 흑이 죽는다.흑C면 백D,흑I,백H,흑D,백J로 오궁도화로 죽는다.흑이 B로 받으면 백I로 붙여서 죽고.
백1은 강한 1급 정도의 수준에서 읽을 만한 맥점을 다룬 책인 ‘관자보(官子譜)’에 나오는 묘수.서봉수는 그 책을 보지 않았을까?그럴 리는 없을 것이다.‘관자보’를 읽지 않고,‘현현기경’을 보지 않고,‘발양론’을 탐독하지 않고 프로가 될 수는 없다.하물며 서봉수 정도 되는 명인급이 그런 책을 읽지 않았을 리 없다.
읽은지 너무나 오랜 세월이 흘러서 일까.아니면 너무나 기초라서 잠시 깜박한 것일까.아니면 잊는다는 것과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의 차이마저,명인이면 다 잊게 되는 것일까.그래서 천진해지는가.
(문용직 프로4단 2001/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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