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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서보아야 정상으로 가는 길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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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거기에 있기에 오른다 했던가.
그러나 오를 수 있는 자, 그 얼마나 될까. 누구나 프로기사가 되면 첫 번째로 꼽는 염원이 바로 본격 프로기전에서 우승해보는 것이건만, 현실은 얼마나 냉정하고 어려운가. 한국기원 프로기사는 180명. 그 중에서 정상을 밟아본 경험이 있는 자, 그 얼마나 될까. 불과 10명 남짓이다. 그들만이 정상에 서 보았다.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정상에 서 본 사람만이 다시 정상에 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실력의 세계이니 만큼 정상의 실력자만이 정상에 서는 것은 당연한 듯하지만, 그 뜻은 무섭다. 정상에 서보지 못하는 자, 패배와 좌절감이 자신감을 억누른다. 산의 높이를 알 수 없다. 자신의 키를 알 수 없다.
승부에서는 그를 두고, 정상에 서 보지 못하는 자, 그 올라가는 길을 모른다고 표현한다.
최근 제6회 박카스배 천원전 우승을 두고 두 신예 기사가 맞붙었다. 26세인 윤성현 7단과 16세의 박영훈 2단. 10대와 20대의 만남인데 어느 쪽이 이기든 생애 최초의 우승. 한 마디로 필사적인 승부를 만났다. 승부에 임하는 기백과 집념이 대단할 것은 불문가지.
반상의 내용 또한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기보를 보자. 박 2단의 흑1, 3을 보자. 집을 지키는 자신감과 기백이 가히 압도적이다. 백도 침입에 필사적이고. 우리 아마추어가 익혀둘 것은 흑1의 마늘모 굳힘. 실전과 같이 주변이 튼튼하면 흑1과 같이 마늘모로 지키는 것이 A보다 더욱 단단하며 굳세다. B의 날일자 굳힘보다도 탄력적이다.
누가 천원에 올라설 것인가. 승자는 정상으로 이르는, 그 어려움과 쉬움을 알게되어 앞으로 자신감을 얻을 것이지만, 패자는 당분간 패배의 그림자를 떨쳐내기가 힘들 것이다. 패자는 패배감을 이겨내는 긴 터널을 밟아야만 한다. 비록 그 터널이 짧던 길던, 패자는 외로울 것이다. 냉혹하지만, 그것이 프로세계의 속성이다.
(문용직 2001.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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