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왔어요!”

둘째딸이 뾰로통한 낯으로 들어와 주방 쪽에 빈그릇을 던져놓고 쿵쾅대며 이층으로 올라가자 부인 송여사는 혀끝을 톡톡 차며 주방에서 나와 이층을 노려보며 한소릴 내놓았다.

“저런 버르장머리 하곤…. 당신이 귀엽다고 오냐 오냐 해주니 그런 거예요. 따끔하게 야단 좀 쳐요. 그나저나 모처럼 일찍 들어왔는데 당신도 지금 식사하셔야죠?”

“그러지 뭐.”

달호(達浩) 씨는 늦가을 햇볕이 여물게 쏟아지는 정원을 내다보며 심드렁히 대꾸했다.

이렇게 분위기가 살가운 목요일 오후에 일찌감치 들어오긴 처음이었다. 삼성화재배 준결승 세 번째 판이 벌어진 바람에 이창호 바둑을 구경해야겠다는 야무진 생각으로 kbs 중계화면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조훈현이의 안타까운 해설에 귀 기울였다.

대개 이런 시간엔 박교수와 내기바둑을 두거나 워커힐 가까이에서 부킹해 가을 공기 마시며 골프 치러 갔을 것이다. 필드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세속의 때가 바람에 씻기느라 그렇게 개운할 수 없었다.

며칠 전부터 박교수는 골프 약속을 확인 사살하듯 조석으로 채근했지만 한겨레신문의 TV채널 안내를 보게 되면서 부득이 약속을 파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졌다. 바둑을 졌다. 알거머리 치우쥔인가 하는 위인의 거머리 된똥누기에 걸려 3집반인가 4집반인가를 지고 우리의 국보 이창호가 불계패로 물러났다.

그래서인지 달호 씨는 마음까지 무거워 외부 전화도 받지 않은 채 오후 내내 소파에 묻혀 지냈다. 이창호가 알거머리한테 진 건 자기 탓이라고 달호 씨는 괜한 이유를 들이대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신기료 노인 때문이었다.

이 노인을 본 날이면 종일 재수가 없었다. 한수 아래 박교수와 내기바둑을 둬도 멀쩡한 대마가 촉촉수로 쫓기다 회돌이축으로 비명횡사했고, 골프를 치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풀숲을 뒤적이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럴 때면 이러한 모든 일이 신기료 노인 때문이란 생각이었다.

노인이 골목에 나타난 건 한 달 쯤 전이었다. 퇴근을 하여 골목길에 들어서는데 누군가 담 옆에 엉성해 뵈는 개집을 짓고 있었다.

“여기서 뭘 하십니까?”

“에헤헤, 보시다시피 가게를 짓고 있습지요.”

달호 씨는 개집(달호 씨가 보기엔 영락없는 개집이었다)을 휘둘러보며 물었다.

“가게라니오?”

“에헤헤 신기료 가겝지요. 선상님도 한번 오십시오. 아주 염가루다 봉사해 드립지요. 네네.”

신기료라는 말에 달호 씨는 얼른 이해가 가지 않았다. 요즘에도 신발 기워 신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였다. 더구나 얍살맞은 노인은 소란스러운 일이 생길 걸 대비해 달호 씨의 집과 이웃집 담벼락이 잇대어지는 곳에 가게(?)를 짓고 있었다.

“문패를 보아하니 선상님도 나와 종씨데요잉. 에헤헤, 나도 선상님같은 양반 성씨지라우잉.”

‘그것 참.’

달호 씨는 씁씁히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그런데 가게가 완성된 다음날부터 골목 안이 여간 시끄러웠다. ‘돌아가는 삼각지’를 시작으로 한밤중 내내 명함을 내민 뽕짝 메들리가 페스티벌을 이루었다.

처음엔 ‘울어라 기타줄’을 비롯해 꽃피는 동백섬이 어쩌고 하더니 해묵은 축음기를 틀어놨는지 약간 울린 듯한 분위기로 궁따라닥닥 삐약 삐약! 소리가 꼰질스럽게 들려왔다. 더구나 출근길 아침이면 빈소주병이 아무렇지 않게 골목 안에 뒹굴고 라면 봉지가 예저기 흩어져있기 예사였다.

그것뿐이 아니었다. 지난밤엔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달호 씨의 대문 가까이 게워놓은 오물이 흥건했다. 평소 주택가라고 자부심을 갖던 골목 안이 쓰레기하치장으로 둔갑한 느낌이어서 달호 씨는 어떻게든 노인을 쫓아버리려 노심초사 궁리를 해댔다.

마침내 기회가 온 것이다. 두어 시간 전에 큰아들 내외가 물 좋은 복어를 사들고 왔었다. 복어로 매운탕을 끓이면 그 맛매가 여간 시원해 평소 술을 가까이 한 달호 씨는 즐겨 드는 편이었다.

그러나 복어엔 테트로도톡신(tetrodotoxin)이라는 유독물질이 있어 조리할 때 여간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흔히 말하는 복중독으로 혀끝과 입술이 마비되며 급기야 호흡곤란으로 생명이 위독해지는 위험이 있었다.

“피가 잘 빠졌는지 몰라···.”

요리를 하면서 송여사는 자못 걱정스런 어투로 달호 씨를 건너다보았다. 그때 달호 씨의 머리에 기막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독이 들어있을 지도 모를 복어매운탕을 신기료 노인에게 갖다주어 시식케 하는 것이었다. 매운탕을 먹은 노인이 괜찮으면 그때야 먹겠다는 약간은 야비한 계산이었다.

“여보, 신기료 노인에게도 매운탕을 갖다 주구려. 보아하니 간밤에도 술께나 마신 것 같던데···.”

둘째 딸은 음식을 가져다 줄 때나, 한 시간 쯤 후에 빈그릇을 가져 올 때도 좋은 낯은 아니었다.

깨끗이 먹어 치운 빈그릇을 보면서 달호 씨는 그제야 주방에 들어가 오랜만에 복어매운탕을 안주로 하여 따끈한 정종을 반주로 들이켰다. 아르르하니 술기가 차올랐다. 달호 씨는 식사 후 산보를 겸해 느릿하게 정원을 돌아본 다음 밖으로 나갔다.

고개를 빼들고 대문께를 바라보던 노인이 화다닥 개집에서 튀어나왔다.

“하이고 종씨, 그렇듯 귀한 음식을 다 보내시고···, 맛이 괜찮았지요?”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큰아들 내외가 가져 온 아주 물 좋은 놈입니다. 나는 복어매운탕 덕분에 밥을 두 공기나 더 먹었습니다.”

어깨를 으쓱 펴 보이는 달호 씨를 바라보며 신기료 노인이 환하게 웃었다.

“그래요? 그럼 빨리 먹어야겠네. 어찌나 먹고 싶은 걸 참고 있었던지···. 종씨도 괜찮은 것 같은데 아무려면 독이 있을라구요.”

신기료 노인은 부리나케 개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매운탕을 쩝쩝대며 먹기 시작했다. 낡은 축음기에선 흥겨운 엿장수 박자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싸루비야 꾸역 꾸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