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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고를 피하라 - 上手의 입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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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고를 피하라 - 上手의 입장(1)
2012-01-15     프린트스크랩
▲ 가버나움 유적, 갈릴리호수 북동쪽에 있는 고대마을. 문명의 폐허, 다시 돌이 킬 수 없 음이다. 사진출처 http://blog.ohmynews.com/js1029/194551

응고를 피하라 - 上手의 입장


I. 두터움을 짧게 다루었다는 아쉬움이 남아서

지난 번 다루었던 두터움. 이야기가 되었는지?
짧아서 아쉬운 점 없지 않은데 이상하게도 길게 쓸 힘이 없었다. 잘 몰랐기에 자신감이 결여된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다. 이해 제대로 짚었다고 보고 있다.

몇 차례 전에 소개한 세잔의 말씀, “색채가 풍부해지면 형태도 충실해진다.”
그것을 되살리면 이리 된다. “형태가 충실해지면 색채도 풍부해진다.”
그러면 또 이리 된다. “형태에 따라 색채도 달라진다.”

그러니, 반상에서 충실한 세모가 등장하면 어찌 두터움이라는 색채감각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겠는가. 형상과 색채 간에 있을 그 어떤 해석학적 연결고리를 왜 얻지 못하겠는가. 그것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되면 우린 한 걸음 더 나아가리. 출발은 했다, 그리 본다. 다양한 비평을 거쳐서 하나의 독립적인 반상 설명과 반상 해득의 능력으로 발전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다양한 예를 들면서 - 실전에서 자료를 모아서 - 세모와 두모의 차이를 구별하는 책 한 권 누군가 쓴다면 두터움은 5급도 이해할 수 있는 개념이자 감성이 되리라고 본다. 형상이 있는데 어찌 상징의 울림이 없겠는가. 감성의 확인이 없겠는가. 약간이라도 확인하는 그 순간부터 이미 두터움은 5급의 힘이 될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제 두터움은 곧 익숙한 개념이 될 것이다.

익숙하다...
이 묘한 현상이 바둑의 이해에 무서운 태도 형성하는데
지나 10년 전의 바둑을 보면 이미 뭔가 그 때의 바둑이 허술해 보인다.
당시는 명인 국수의 바둑임에도 불구하고.

과연 지금이 더 나은 실력수준에 도달했는가?
그렇지 않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다.
공정한 안목을 갖는 것은 어렵다. 승부를 중시하는 세계에서 현재의 지배적인 감성과 유행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태도는 거의 갖기 힘들다.

사실, 두터움 다룰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리고 이 정도라도 다룰 수 있을 줄은 감히 상상도 못했다.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과연 반상엔 우리가 이해해야 할 많은 것들이 쌓여있구나, 그리 놀란다. 잘 모르고 있다는 것도 약간 알겠다. 물론 이건 겸손이 아니다. 제대로 다루지는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다루어야 할 것의 주변은 긁고 있다, 그리 생각하고 있다.

물론 이런 저런 여러 개념들을 제대로 익기도 전에 주방에서 들고 나와 맛을 보시라, 그리 하고 있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점도 있지 않을까. 그 언젠가 제대로 잘 익혀서 나오기 위해 여러분도 함께 주방에서 음식 테스트 하고 있는 거 아닌지?

쓰고 읽는다는 것만 해도 가치가 없다 할 수 없는 일이다.
때로는 - 아니 대부분의 경우 - 글이 다하기 전에는 실로 제대로 된 주제를 다루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이 글이요, 말이요, 행동이다.

그러므로 분명한 것은, 바로 그 때문에 - 글이 완결되기 전에는 글 자신도 자신을 잘 모른다는 - 글 쓰는 이는 누구보다도 먼저 독자가 된다. 그 글에 의해 첫 번째로 배우는 독자가 된다. 나르시즘에 빠지는 점 없지 않겠지만.

여하튼 쓸 기회 있고 쓸 꺼리 있고 쓰고 난 다음 돌아볼 기회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II. 응고(凝固)의 개념이 필요한 이유

응고(凝固).

적절한 개념인지 모르겠다.
견고하다, 결정되다, 굳어진다는 것 등을 강조하고픈데 글을 좀 더 이어가보면 알리.

차이를 느낀다.

1) 결정 - 이는 상식적인 용법으로 널리 쓰인다.
          우리는 결정한다. 언제나 결정한다.
          그러니 그 어떤 구체적인 현상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쓰기는 좋지 않다.
2) 응고 - 해소의 기미가 없다.
          얼음 정도가 아니라, 결석(結石)이나 무생물 같은 것을 지칭하는 인상 온다.

왜 이런 개념을 다루어야 하나?
그건 접바둑에는 맞바둑과는 다른 점이 하나 있기 때문이다.

맞바둑에서는 이러하다.
착수교대의 원칙을 생각하면 서로가 한수씩 교대로 둔다.
그러면 백을 잡은 사람은 급하게 서둘면 아니 된다.

처음 흑이 먼저 두면 이리 된다.
“1: 0” “1: 1” “2: 1” “2: 2” ... “151: 150” “151: 151” ...
이런 식이다.

즉 수수(手數)가 흘러갈수록 시간이 지날수록 흑과 백의 비율 차이가 줄어든다.
처음에는 흑이 “1: 0”
다음엔 “1: 1”
그 다음엔 “2: 1”
..
이런 식이 되는데, 초반에 차이가 큰 것을 알 수 있다.
비율로 보면 “2: 1”과 “151: 150”은 대단히 큰 차이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지침은 다음과 같다. - 白의 입장에서.

(표1) 맞바둑에서 白의 지침
--------------------------------------------
급하게 서둘지 말라.
바둑의 흐름을 유연하게 이끌라.
공격보다는 수비, 그것이 초반에는 바람직하다.
--------------------------------------------

그런데 접바둑에서는 다르다.

분명히 천천히 두어가면 비율은 맞바둑에서의 힘의 차이가 줄어드는 것처럼 줄어들긴 한다.
9점이라면 돌의 비율이 “1:9, 1:10, 2:10, 2:11, ...” 이런 식이 된다.
그런데 반상의 성격을 이런 식의 논리로 다루는 것이 적절할까?

예컨대 맞바둑과 같이
지침으로 주어진 (표1)과 같은 행동을 취하면 좋을 것 같지만 - 논리가 일단 비슷하니까 -
그렇지 않다.

접바둑에서는 맞바둑과 달리 다음과 같은 현상이 하나 추가된다.

(표2) 접바둑에서 추가되는 현상/ “주변 환경이 굳어진다”
--------------------------------------------------------------------
부분 부분 전투에서는 분명히 上手가 이길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세는 만만치 않다.
이긴 만큼 반상은 유리해질 것이나, 그 과정에서 - 돌이 점차 많이 놓여짐에 따라 -
주변 환경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반상이 의외로 빠른 속도로 좁아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

어떠신가.
(표2)를 읽을 때 반상이 좁아지고 있다는 인상이 - 자신도 모르게 - 머릿속 스크린에 잡히지 않으신가. 이 글은 그리 잡힌다.

반상은 그러하다.
잠시 실전을 따라가보자.


      1도 (반상이 굳어지는 예 - 초반)


      2도 (반상이 굳어지는 예 - 중반)


      3도 (반상이 굳어지는 예 - 중반)


1도를 보자.
좌하귀만 보자. 흑2 이하 흑8까지 보면, 무언가 흑이 허술한 행마를 하고 있음을 알겠다. 다부지지 못하다. 효율이 떨어지는 돌의 흐름이다.

2도를 보자.
여기저기 백이 발 빠르게 집을 얻었음을 알겠다. 집으로만 보면 형세가 상당히 미세하다. 그런데 집을 추구하다보니 백에게 중앙이 허술함을 알겠다. 중앙은 아무래도 흑에게 더욱 힘이 실려있다.
그런 과정에서 흑1 자리가 흑에게 주어지고나니, 백2 이하 싸우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싸움의 전장(戰場)은 흑의 영지(領地)에 속한 것이다. 이건 두려운 일이다. 백에게.
 
3도도 실전인데,
내친 김에 백은 싸운다.
그러나 결과는, 돌이 잡힌다. 초반에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것인데 - 의외로 하변의 흑세력이 백의 살길을 가로막는 벽이 되고, 보기보다 백은 몸을 뛰쳐나갈 자유가 부족했다.



      4도 (좌변에서 중앙의 변화를 먼저 꾀했어야 했다)

4도는 가상도.
3도가 아니라 이리 두었어야 했나? 그런 그림이 있었다.
누구의 바둑인가. 오청원 선생이 아마추어 3점 지도한 바둑이다.  


부분은 백이 이기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백이 변화할 공간이 급격하게 좁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그것은, 싸움의 성격에서 맞바둑과 접바둑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애초 반상이 출발할 때, 조건이 백에게 불리하다는 것이다. 반상의 상당 부분이 백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아무런 통고도 없이 주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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