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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환기가 먼저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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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환기가 먼저다 (2)
2011-12-11     프린트스크랩
▲ 루빈의 컵, 흰쪽을 보느냐, 검은 쪽을 보느냐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달라진 다.


감성의 환기가 먼저다(2)



4. 上手의 입장

이런 이야기는 따로 하나 묶어서 할 정도로 만만찮은 분량이니, 오늘은 약간만 다루자.

上手는 생각하면 아니 된다.
이기려고 하되, 최선으로 둘 수 있다고 판단 말라.
접바둑에서는 “수법의 최선”이 아니라 “태도의 최선”이 중요하다.
...

왜 그런가?

첫째.
좋은 수의 정의(定義)가 없다. 어떤 수도 주어진 조건 속에서의 한계를 갖는다.
운명이다. 불리한 여건에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반상은 열려있다.
변화만이 있을 뿐이다.
물론 지침은 있으나, 백의 입장에서는 불리한 조건을 타개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한다.

둘째.
제한된 조건에서는 “최선”이 없다.
“최선”이 있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전제가 주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중앙이 변보다 귀보다 중요하다”는 전제가 주어진다면 그 때는 중앙지향적인 수법을 최선으로 선택할 수 있다.

셋째.
이미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하는데, 흑이 즉 下手가 “나쁜 수”를 반드시 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러므로 애초에 “이기는 수법”은 없다. “下手가 이러저런 악수를 반드시 이쯤에서는 이런 저런 확률로 둘 것이다”고 판단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요컨대,
上手는 태도를 가져야지, 수법을 정해놓으면 아니 된다.
태도가 정해지면, 큰 지침이 정해지고, 수법은 따라오게 된다.

그러므로 패기있게 두라.
태도 드넓게 가지고 패기있게 두라.

그것이 上手가 가져야 할 가장 귀중한 지침이 되겠다.

맞바둑과는 바로 이 점에서 꽤 다르다.
맞바둑에서는 서로가 비슷한 실력. 조건은 서로가 공정하다. 따라서 상대보다 잘 두면 반드시 이긴다.

그러나 접바둑에서는 상대보다 잘 두지만, 그러나 반상의 불리한 조건을 충분히 만회할 수 있느냐? 그에 대한 답은 어떠한 수법도 말해주지 못한다.
그러므로 수법보다 태도가 먼저다.

그 태도에서 지침이 나오고 수법이 결정된다.

이기고 지는 것은 알 수 없다.
上手에게 선택권은 주어지지만 결정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다음 10도는 1930년 슈사이 명인이 당시 을조 승단대회 우승자와 둔 바둑인데, 중앙 두점머리 붙임을 둘 때는 - 짐작컨대 - 1초도 생각지 않았으리.
“두지” 않았으리.
“두드렸으리.”

실패하면?
아, 그런 거까지 생각하면 접바둑 못 둔다. 그냥 만만한 바둑이나 두시라.
던질 수 있어야 한다. 승부도 패배도.


      10도 (실패하면 던져야 하리 - 上手의 자존심이다)


5. 두칸걸침의 근거 이제 하나 알겠다

중앙을 중시한다면 이제 하나 이해된다.
중앙을 중시한다는 것은 귀와 변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니, 하나 알 수 있다.

다음 11도는 오청원 선생의 바둑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것이다.


      11도 (오청원이 즐기는 접바둑 초반 수법)

저 백1, 백3을 주의하자.
백1은 귀에서 멀다. 귀를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변과 중앙에 가까우니 변과 중앙을 중시하는 것이다.
백3은 걸침이 아니다. 흑을 협공하는 것으로, 역시 귀에서 멀리 떨어진 것임을 주의하자.
물론 백A 흑B 백C도 노린다.

4점 이상의 바둑에서 - 3점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3점과 2점은 귀가 6점 바둑보다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왜냐. 돌이 선점하지 않고 있으니까. - 두칸걸침은 유력하다. 上手의 입장에서.

물론 11도와 다음 12도의 차이는 말하기 힘들다.


      12도 (백3은 걸침의 성격 강하다)

그러나 11도와 다음 13도의 차이는 분명하다. 13도에서 두칸걸침은 없다. 세꼬에의 접바둑 책에서 나온 사례인데, 흑4를 허용한다. 11도 두칸걸침은 흑돌에서 다소 멀기에 쉽게 공격받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자. 세분화에 알맞은 수법임도 알겠다.


      13도 (1930년대 세꼬에의 접바둑에서)

물론 두칸걸침이 절대적이다,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접바둑의 이해를 높이는데 바람직한 소재라서 여기 강조했을 뿐이다.
그래도 말할 수 있다.
11도 두칸걸침은 권장할 만한 수법이다.


6. 수법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과 가깝다

다음 3 가지 포석은 매우 창의적인 것이다.
그리고 창안자의 반상 감성이 숨결처럼 불어넣어진 것이다.


      14도 (수책류 秀策流 포석)


      15도 (도책류 道策流 포석 - 오늘날의 중국식 포석 착상)


      16도 (3연성 포석 - 아마도 기타니를 창안자로 해도 될)


수법에 익숙해야 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에 불어넣어진 감성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 수책류에서 얼마나 부드러운 흐름을 보는가.
아마도 오청원을 150년래의 천재, 라고 부른 것은 이유가 여기에 있으리.

단순히 잘 둔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슈사쿠의 바둑 흐름을 그대로 재현하는 인상을, 1920년대 북경의 14살 소년일 때 보여주어서 그러하리.


      17도 (1960년대 오청원이 쓴 "현대의 포석" 첫 장면)


반상에서 감정은 우연히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돌을 마주할 때 우리가 길어올리는 감정은 메마르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보다도 우리 스스로 자유롭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린 앞선 시대를 모두 다 이해하거나 경험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그 앞선 시대의 감성이나 이해 없이 우리를 이해하는 것은 난감하다.

말을 하다보니, 주제에서 다소 벗어나는 감이 있는데, 가볍게 다루면 
이 글은 반상 이해의 축을 이리 두고 있다.

비록 우리가 자유롭다 할지라도 반상은 쉽게 얻어지는 세상이 아니다.

물론 다른 이해, 다른 이론이 없는 것은 아니나, 이 글은 감성, 그것도 예술적 감성이 표현될 때는, 공간감을 표현할 때에는, 그 어떤 시대나 문화의 전제(前提)가 들어있다는 것으로, 이 글은 이해한다. 그 설명이 좋다.

우리에겐 우리에게 주어진 안경이나 프리즘이 있다.
반상에도 있다.
그것은 선인(先人)들이 만들어놓은 것이다.
물론 그것만이 우리를 이뤄놓지는 않는다.

다만, 반상을 폭넓게 가지려면 감성의 폭을 넓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착상에 대해 논리만이 아니라 감수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강조하고 싶다.
“두터움”이라는 것이 - 그 어떤 질감을 안겨주기에 - “감수성” 또는 “감성”과 밀접하다는 것만 보아도, 이 글의 이해는 반상을 보는데 있어 그럴 듯한 시각이라고 본다.

미술사가(美術史家) E. H. 곰브리치가 강조한, 도식(圖式)과 수정(修訂).
과학에서는, 철학자 K. 포퍼가 제시한, 가설과 반증.
바둑에서는 선인(先人)들의 반상 안목과 대국 실험.
...

다들 같은 맥락의 이해를 강조한다.
그렇지만 견해는 한계를 가정하는 것.
바둑에서도 과연 그런 듯하여 강조하는 것일 뿐.
누군가 다른 이해로 다른 세계 열어 주시면 더 넓어지리.

 

7. 중앙 감성을 불러일으키라

그러므로 말할 수 있다.
중앙이 중요하다는 것을 내면에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

명인의 바둑을 보라.
그들이 중앙을 얼마나 환하게 피어나게 하는가를 보라.
우리에겐 아직 없다. 그러니 필요하다.
정서를 열어놓고 받아들이라.


      18도 (오청원의 적극적인 감성을 받아들여야 수법이 이해된다)


      19도 (수법에 담긴 오청원의 공간감)


표현은 쉽지 않다.
언어적 사고와 이미지로서의 사고는 차이가 있다.
감성과 지성은 차이가 있다.

저 백의 수법을, 감상자와 연구자는 감수성을 크게 허용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당연히 수법, 그 구체적인 패턴으로도 받아들여야 하지만
장기적으로 바둑을 진보하려는 자, 가능하면 - 아마도 반드시 - 저 장면을 놓고 바라보고 음미하고 옆에 두어야 하리.

그러면 는다.
실력이 는다.
안목이 중앙 지향적인 것이 된다. 감성이 발달하니까.


8. 감성을 이야기 하다 보니까

다음 글에는
그래서 이런 거 다룰 생각이다.

“두터움”이라는 질감은 대체 언제 나타난 거야?
왜?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지?

sniper77님께 드리는 답이기도 하다.
접바둑에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도 반드시 알아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오늘 강조한 감성, 반상의 감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특히나 다루어야 할 난제이기도 하다.

물론 엄밀하게 다룰 수는 없다.
자료도, 전거도 한계가 있다.
그저 가벼운 추론과 오가는 이야기로 채우겠다.

논뚜럭님에게 대한 답으로서도 일부 필요할 듯하다.
말씀하신 위기(圍碁)의 뜻에서, 아마도 중앙, 천원을 두지 않은 이유 하나는 공간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제일 큰 거 아닌가 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뚜렷하지 않은데 과연 잘 설명이 될 지 모르겠다.

아, 물론.
하다가 모자라면 던지면 된다. 아까 슈사이 명인에게서 배웠듯이. 하하.
접바둑만 바둑이랴.


12시를 넘었다.
겨울 햇살이 들녘을 환하게 비추니 오늘은 이만 그쳐야겠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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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믿었네 |  2011-12-11 오전 9:00: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루빈의 잔으로 와인을 마시는 이 시간..  
CreasyBear |  2011-12-16 오후 2:49: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용직 사범님, 책 좀 많이 써내 주셨으면 해요.. 문 사범님 글을 보면 머릿속의 탁함이 말끔히 흩어지는 느낌을 받습니다.  
하이디77 |  2011-12-21 오후 12:42: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저 배울때는 '발상의 전환'이라는 표현으로 정리하고 말았는데...
귀와 변이 전부가 아니라는, 중앙도 있다는 ...
오늘 감성으로 바라보라는 말씀 하나 새기고 갑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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