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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환기가 먼저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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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의 환기가 먼저다 (1)
2011-12-09     프린트스크랩
▲ 지각 심리학에서 자주 애용되는 ‘루빈의 컵’,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따 라 보이는 것이 다르다.

감성의 환기가 먼저다 1


1. 반상은 환기되어 다가온다
 
역시 그러하다.
반상은 먼저 환기(喚起)되어야 한다.

다음 1도를 보시라.
오청원의 전성기 바둑인데, 과연 저 백의 착상이 수법을 먼저 전제해서 나오는 걸까. 백2는 백4를 미리 확인했기에 둘 수 있는 반발이다. 물론 백6 백8을 미리 예측한 것인지 여부는 모르겠다. 아니다. 백6은 분명하다. 백8은 흑5가 와야 둘 수 있으니까.


      1도 (오청원의 감성이 빚어낸 수법)

2도도 보시라. 과연 저 백의 수법이 돌의 논리를 전제로 해서 나오는 걸까. 그렇다면 그 논리는 무엇일까. “세력이 있으니 그 세력을 살려낸다.”는 정도만으로 저 백2 이하의 착상을 구할 수 있는 걸까.


      2도 (오청원의 풍만한 공간감이 빚어낸 착상)

1도에서는 좌상귀를 배경으로 공간의 풍요로운 질감 느끼지 못하면 백2 반발은 생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2도 또한 그러하다.

그러하다.
“창조”라는 것은 단지 창조되었을 때에만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 말하고 싶을 정도다. 오청원이 분명히 그 어떤 환상을 품었었기에 저 착상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 흔히 말하듯이 그리고 아마도 맞을 듯한데 - 오청원도 미처 저 착상을 인식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저 세상은 등장하였다.       

반상의 넓이와 깊이를 먼저 몸으로 감성으로 체험하지 않고서는 저런 착상의 충동 나올 수 없다. 먼저 무의식적으로 파악하고 난 다음에야 그 접한 세상을 표현하고픈 충동이 들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도 그것이 맞는 이해이자 수순일 것이다. 물론 충동이 그 파악을 앞섰을 가능성 또한 아마도 현실적인 이해의 하나일 것이다.


2. 반상의 환기가 착상보다 먼저인 이유

왜 그런가.

실험해보시라.
아무 바둑이나 하나 가져다 놓고 실험해 보시라.
다음 3도에서 좌변 백진을 보면서 동시에 우상귀 흑진이나 우하귀 흑진을 볼 수 있으신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3도 (현기증을 느끼지 않으시나)

4도는 흑의 착상인데, 이는 반상을 전체로 바라봐서 얻은 수법임에 틀림이 없다. 전체를 문득 바라보다가 내면에 그 어떤 크나큰 방탕감(放蕩感)이 일어났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얻은 결정일 것이다. 


      4도 (검푸른 바다의 깊이가 다가오는가/ 부분만 보아서는 나올 수 없는 착상)

4도를 약간 더 부언하면
흑1은 이 한수의 감각이다. - 감각이란 말도 이제는 달리 좀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이 글 쓰다가 문득 생각 든 것인데, 잠시 숙성시키자. 적당한 때 부화시켜서 다루도록 하자.

흑1을 좌변 A 침입하는 것은 백1로 두게 한다. 백을 불러들인다. 검은 바다로 불러들여서 흑 세력을 오히려 감쇄시킨다.

흑1을 우상귀 B에 지키는 것은 우상귀만 보았을 때에는 얻을 수 있는 착상이다. 그러나 이 경우 백은 C 두 칸 뛰어 흑을 삭감할 것이다.

흑1은 전체를 부지불식간에 보았을 때 나올 수 있는 착상이다. “구한 것”이라기보다 “나온 것”이다.

물론 바둑은 - 한 판의 바둑에서 - 논리적으로 쫓기듯이 착상을 선택해야 할 경우가 많다. 흑백이 경쟁하는데 한가로이 감상에 젖어있을 수야 없다.

그러나!
다음 5도와 6도를 보자. 삭감의 두 경우를 대비시킨 것이다.
 

      5도 (제대로 된 감정의 환기는 형태의 단순성과 솔직함에 합해진다)


      6도 (어긋난 형태감으로 내면에 불쾌한 인상 남는다)

잠시 설명하면
5도에서 흑의 삭감돌이 하변 흑돌(▲)과 일직선 위에 놓인 것을 볼 수 있다.
6도는 그렇지 못하다.

두 개의 돌은 하나의 선분 위에 있을 때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가장 간단한 예로 7도를 보자.


      7도 (돌의 힘은 돌의 형태와 밀접하다)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우하 방면 마늘모가 있지 않으냐?
바둑에는 패가 있다. A와 B는 불확실한 영역인 것이다.
 
형태(또는 형상)은 감정과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반상에서 - 형태는 논리와도 떨어진 것이 아니다.
반상의 격자무늬가 형태와 논리를 강하게 접목시킨다.
 

다시 돌아가겠다.

이 부분을 보면 저 부분은 의식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서
부분 부분을 합친 상태에서 - 그리 출발해서 - 우린 반상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는 이리 될 곳이고, 저기는 저리 될 곳이며, 또 저어기는 이런 인상을 주니, 그 이것저것을 합해서 우린 이리 반상을 판단한다.

그리 말할 수 없다. 

물로 그리 말한다.
그러나 이건 해설할 때나 설명할 때 그리 하는 것이고
실전에서는 그리 하지 않는다.
실전에서 상대의 돌이 놓인 다음, 또는 그 중간에서도
우린 반상을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다.

우린 반상을 먼저 전체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맞다.

그렇다면 이렇다.
 
반상을 먼저 감성으로 환기하라.

반상은 풍성한 질감 먼저 느껴야 하는 세계이다.
왜냐.
실제로 풍성한 질감이 먼저 - 논리보다 - 안겨오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돌아보시라.

산책길 나갔을 때, 山河를 바라볼 때, 아니 그 이전에 접할 때, 무엇을 먼저 보시는가?
산을 보고, 그 다음에 길을 보고, 나무를 보고, ...
그런 식으로 보지는 않으실 것이다.

전체를 볼 것이다.

나무를 보면 그 배경이 되는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산을 보아도 그러하다. 산과 강을 동시에 의식하면서 동시에 볼 수는 없다. 그것이 심리학이 강조하고 이해하는 바다.

그러하다면
반상에서도 우린 부분 부분을 합쳐서 반상을 보는 것이 아니다.

전체를 먼저 본다.
전체를 먼저 본다는 것은 전체의 의미를 파악한다는 것이다.
파악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다.
시각은 인간의 능력 중에서 가장 강력하게 상상력을 이끌어내고 - 아니 그 이전에 상징으로 잡아채는 능력이다.

시각적으로 다가오는 반상은 상징적인 큰 울림 안겨준다.
그리 안겨온다.

그것을 받아들이자.


3. 맞바둑에서보다 접바둑에서 중앙은 더 중요하다

上手에게 반상은 좁다.
맞바둑에서도 많은 사람 그런 마음 갖지만
접바둑에서는 더더욱 반상은 上手에게 좁게 제시된다.

그 좁은 반상을 넓히려면 양보해야 한다.
발전의 가능성이 없는 곳은 과감히 양보해야 한다.

다음 8도에서 그 양보해야 할 영역은 귀이다.
귀는 흑이 선점한 곳. 그 상대가 선점한 곳은 양보해야 한다.


      8도 (4점 바둑의 결정적인 조건 - 중앙이 비어있다)

백이 취해야 할 태도는 중앙지향적인 자세이다.
9도는 후지사와 선생이 말씀하신 4점 바둑. 바둑의 神과 바둑을 둔다면 3점이면 하겠다, 그리 말한 다음에, 얼굴을 붉히더니 “만약 목숨이 걸렸다면 4점으로 하겠다.” 말씀하신 바로 그 포석.


      9도 (후지사와의 神과 4점 바둑에서의 예상포석 - 목숨을 걸고 둔다면)

아마도 9도처럼 두면 흑이 이길 것이다.
그리 예상한다.
神의 관념, 신의 권능, 그런 것은 논외로 하고.

그러나 4점 바둑에서 - 만약 프로와 아마가 둔다고 하자 - 흑이 저리 두어서 이길 수 있을까. 어려울 것이다. 저리 두어서 이긴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예전에 이런 책 있었다.
4점 바둑을 하수는 어떻게 두어야 하느냐?
그에 대한 지침을 준 책이 있었는데

“지킨다.”
“연결한다.”

그것이 下手의 필승전술로 제시되고 있었다.

그렇게 두어서 과연 下手가 이길까.
그렇지 않으리라고 본다.

지키고 연결?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연결한다는 걸까.

대상이 없다.
지키고 연결하는 것은 부분적 패턴일 뿐인데, 그 부분적 패턴을 이끌어줄 보다 높은 단계의 안목이 없다면, 그런 부분적 수법으로는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한다.
일반화된 상황을 상정하지 못하고서 무슨 지침이 될 수 있겠는가.

잠시
下手의 입장에 대해서 하나 말씀 붙이면,
下手의 입장도 上手의 입장과 다를 바 없다. 上手의 태도에서 下手의 태도도 추론된다. 白 이 강조하고픈 것은 黑도 중시해야만 하는 것이다.
下手도 上手 이긴 바둑 적지 않은데, 기세 좋게 중앙을 중시한 바둑이 대개 그 이길 확률이 놓다. 물러서서 이긴 바둑 못 봤다.

반상을 열어가지 못하고 반상을 닫아가는 바둑을 두어서 무슨 희망이 있겠는가.
논리이자 현실이다.

잠시
上手의 입장을 약간 이야기할 필요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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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객잔 |  2011-12-10 오전 3:33: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 칸의 맛.
한 칸 뛰고, 한 칸으로 누르고(지키거나 선포하거나)...,
저기 저 중앙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사범님 글 잘 봤습니다.  
남자믿었네 |  2011-12-11 오전 8:58: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심오함의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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