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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과 4점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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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점과 4점의 차이
2011-11-25     프린트스크랩
▲ 폴 세잔의 대수욕도


6점을 앞두고 백의 초반 입장은


I. 넓게 바라본다는 그 기분은

접바둑은 2점부터 9점까지 다루는 것이 보통.
그 8가지 경우가 있지만, 2점이든 5점이든 9점이든 좌우간 접바둑을 관통하는 그 어떤 지침 또는 철학이 있겠다.
“아마도 있겠지.” 하는 직관 이상으로 있으리라고 본다.

그 중의 하나는 “넓히는 것.”

반상은 제한되어 있다. 19줄 격자로 제한되어 있다.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도 제한되어 있다.

하늘도 없으며 땅도 없다.
물론 이미지는 있다. 땅의 이미지는 무의식적으로 제1선에 머물고, 그 1선에서 우린 무의식적으로 땅의 이미지를 갖는다. - 이에 대해서는 저번에 “3점의 중앙”에서 논의했다.

그러므로 上手는 반상을 넓혀야 한다.
아니 그래도 제한된 반상인데, 접바둑에서는 반상은 더욱 더 제한되어 있다. “제한”이 아니라 “제약”되어 있다라고 표현하고 싶을 정도로 반상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백을 잡은 上手는 반상을 넓혀야만 한다.

문제는 넓히는 방법. 

아니, 반상을 이야기하기 전에 “넓힌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우린 바둑을 떠나서도 “넓힌다”는 단어를 긍정적인 뜻으로 많이 사용한다.

인생을 넓게 바라보자.
이 좁은 변방에서 우물거리지 말고 저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자.
아, 그 친구, 참 어깨 넓네. 믿음직하구만.

뭐, 그런 표현들.

반상의 19줄 격자무늬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여러 가지 이미지와 형상들을 많이 빼어 닮았다. 세상이 땅을 기초로 했을 때, 그 땅은 동서남북 그 지향을 벗어나지 못해서, 아니 그 지향점이 있음으로 해서만이 우리가 미래의 형상을 그리고 행동의 결과를 그려보며 마음을 한 장의 화면처럼 반추해볼 수 있어서 그러한가. 그럴 것이다.

우리네 삶의 질감은 반상에서도 동일하게 살아있는 것이다.
반상이 본래 그러한 속성을 갖고 있는지,
또는 우리가 얻은 관념을 반상에 투사할 수밖에 없어서 그러한지는 잘 모르겠다.


II. 3점에서는 세력의 질감이 4점과 다르다

백이 반상을 넓히는 방식은 여럿 있다고 예전에 이야기했었다.
2005년 연재했던 “접바둑의 하나 둘”에서

중앙으로 머리를 내밀라,
귀를 가벼이 여기고 세력을 가치 있게 여겨라.
... .

그런 이론은 치수에 관계 없이 모든 접바둑에 다 같이 타당한 이론으로 여겨진다.

백에게 반상은 좁은 처지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넓히려면 변화를 적극적으로 만들어내야 하기에
갇히는 것은 좋지 않다.

변화를 이끌어 내야하는데
변화는 귀보다는 변, 변보다는 중앙에서 - 백의 입장에서 보면 - 쉽게 구할 수 있다.
귀는 흑이 먼저 점거한 곳.
귀는 이미 화점 한 수로 점거된 곳.
그러나 변은 귀보다 트인 곳.

그런 조건을 생각하면 반상을 넓히는 방식으로 중앙을 중시하는 것이 필요하며
중앙을 중시하는 수법으로는 세력을 이끌어내는 “밀어붙임”
묶이지 않는 수법으로 “꼬부림,” “젖힘” 등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중앙을 강조하는 수법이 착상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보편적인 이해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특수한 상황은 언제나 있는 것이며
그런 상황에서는 같은 수법이라도 무게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본다.


      1도 (밀어두어도 4점에서의 가치는 갖지 못한다)

3점 바둑인데 있을 법한 장면이다.  
저렇게 흑이 죽죽 밀어가는 것은 권장할 만한 수법이다. 두텁고 세력도 좋다.
그러나 4점이었다면 저 세력은 지금보다도 더욱 큰 힘을 얻을 것이다.
아쉽게도 여기 3점에서는 좌상귀 백 한점이 빛을 발한다. 흑세력을 제한한다.

참고로 하나 말씀드리면 이른 시기에 저리 3三에 들어가는 것은 백의 입장에서 좋은 수법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1-1도 (첫번째 떠오르는 감각은 양걸침인데)

아마도 협공 받았을 때 첫 번째 떠오르는 감각은 - 백의 입장에서 - 반발일 것이다. 이 장면에서는 여기 양걸침을 뜻한다. 왜 그런가. 뒤에 말할 “세분화”가 필요하고 “19로 장통”을 피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여기서 단정은 피하자. 이론은 필요하지만, 이론에 또 얽매이는 것도 그리 활달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저 양걸침은 아래 2도 백의 첫 착점인 “두칸걸침”과 함께 깊이 다루어야 할 수법이다.
적당한 때 자주 자주 다루도록 하겠다.

세분화(細分化) 이야기가 나왔으니 좋은 때가 된 듯도 하다.
접바둑의 본질 하나는,
3점과 4점의 차이, 5점과 6점의 차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듯하다.

가령 6점 바둑을 둔다고 하자.


      2도 (백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 흑을 하나로 몰아두는 방식)


      3도 (백이 반상을 펼치는 방식 - 흑진을 분리하는 거)

2도와 3도 중 어느 것이 백에게 바람직할까?
판단하기 쉽지 않다.
프로들의 접바둑을 살펴보았을 때 두 경우 모두 많이 쓰이고 있었다.


      4도 (중도라고 생각되는 초반 전략)

4도는 2도와 3도의 중간 쯤 되는 태도라고 할 수 있겠다.

좌우간 어느 것이든 우린 선택을 해야 하는데, 어느 것이 백의 입장에서 바람직한가?
그에 대한 답은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다음 기본을 생각해본다.


      5도 (벽이 없기에 - 19로 장통이 큰 집 되는 이유)

5도는 19로 장통이 큰집되는 이유를 밝힌 것이다.
하변 19줄 집을 짓고 나면 그 집을 짓는데 필요한 돌의 개수가 최소한임을 알 수 있다.
상변과 중앙에서 보듯이 다른 경우는 그 어느 경우에나 벽이 필요하다.

우리가 살아갈 집을 짓는데 반드시 벽을 세워야 하듯이.
마당을 얻고자 한다면 담을 쌓아야 하듯이.

그러나 19로 장통에는 벽이 필요없다.


      6도 (세력 바둑이 무서운 이유 - 중앙이 집이 된다면 )

6도는 세력 바둑을 표방한 다께미야의 바둑에서 골랐다.
흑1은 과연 멋진 장문 감각. 반상을 묶어버린다고나 할까.

맛을 보시라.
그러하기에 일부러 이 정도 이 장면을 - 경계를 더 이상 뚜렷하게 그리지 않고 - 드렸다.

좌하에서 백이 달리 수를 낼 수 없다면 - 즉 중앙으로 돌파할 수 없다면 - 흑집은 19로 장통과 다름이 없다. 알파벳은 백이 침입할 수 있는 가능한 수순을 보인 것.

저 6도에서 흑집은 사이 사이 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벽이 필요 없다면 그 만큼 흑돌은 활발하게 두어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돌 하나 하나의 효율은 매우 높았던 것이다.
흑집이 무섭게도 크다. 반상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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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로 장통의 이야기는 그런대로 괜찮다.
반상은 격자무늬 세상. 네모가 그 기본적인 조건.

그 조건을 전제해서 얻어진 논리라면 그건 틀리지 않은 이해라고 해도 된다.
실전 대국에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지침이 된다.
조건에서 벗어난 지침은 실전에서 활용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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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6점 바둑의 초반은 - 백의 입장에서

어떨까.
6점 접바둑에서 백은 2도와 3도 4도에서 어떤 입장을 택해야 할까.
단순한 답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생각할 수 있다.

1) 2도는 흑에게 19로 장통을 줄 가능성을 높인다.
1-1) 물론 백도 장통의 여지가 높아지지만 그러나 귀를 미리 선점한 흑보다는 못하다.

2) 3도는 적극적인 태도로, 흑진을 분열시킨다. 이를 이시다 9단은 “세분화”라고 - 백이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로서 - 말하고 있는데 흑을 분열시키는 것이 백의 입장에서
  바람직함을 말한 것이다.
2-1) 그러나 싸움은 백도 부담되는 일이다. 초반 흑은 선점한 돌의 위력을 안고 있으니까.    
3) 4도는 좀더 아기자기한 맛을 주는 태도인데, 2도와 3도의 태도 그 장점을 갖는 걸까.
 아니면 단점을 더 많이 안는 걸까.

이 글의 입장은 3도를 가장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 다음이 4도, 마지막이 2도.
2도는 따분하며
4도는 다소 논리가 헝클어지는 기분을 갖는다.

기분 이상의 현실일까.
그건 단정 못하겠다.

결론을 매듭지을 수 있을 정도의 수법에 대한 안목이 있으면 좋겠는데
솔직히 조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겨진다.
반상은 일견 직관되는 것보다는 더 넓은 세상이기 때문이다.


IV. 넓다는 말을 다시 생각한다

넓다.
넓힌다.

이 개념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자.
가볍게 떠오르는 것은 - 반상에 국한할 때 - 다음과 같은 개념이다.

변화의 여지를 높인다
결정하지 않는다
상대의 선택을 제한한다
자신의 선택 가지(枝)를 많이 가진다
...

물론 우리가 바둑을 둘 때 저런 개념을 생각하고 두지는 않는다.
어느 누구도 다를 바 없이 그러하다.
나중에 설명을 할 때 사용할 만한 개념들일 뿐이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해석할 힘이 없다면 - 저런 개념들을 사용하지 않기에 -
우리가 반상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반상은 우리가 해석하는 만큼 이해될 수 있는 세상이다.
반상 밖의 현실에서도 그러한 것처럼, 반상에서도 다름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보다 큰) 해석의 힘을 가질 수 있는가?

아마도 답은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무난할 것이다.
반상의 이해 폭을 평소에 넓혀두면 된다.

“반상은 이런 것이다.”

그것을 평시에 새겨두면 우린 대국에서 해석의 힘을 얻게 된다. 반상을 평가하여 자신의 다음 길을 선택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그 구체적 방법 하나는, 이 글이 채택하고 있듯이 이리저리 오가면서 생각을 다듬는 것이다. 오가면서 세상을 널리 돌아보는 것이다.
반상이라고 다르지 않다. 세상이라고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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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식으로 글을 써가나?
간결하게 정의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실전을 제대로 보여주지도 않고.

우린 반상을 모른다.
모르기에 노력하는데, 알고자, 노력이란 것은 이해를 높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해는 해석의 힘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이해는 개념을 갖고 노는 방식을 바꿈으로서
개념을 이런 저런 다른 개념으로 대체하는 그 “놀이”를 하는 데에서 온다.

“대체”하지 않으면 “이해” 없다.

“대체”의 핵심 하나는 자꾸만 이야기 하는 것에 있다.
이 이야기가 맘에 아니 들면 저 이야기.
저 이야기가 부족하면 다시 다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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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細分化 - 그로부터 무작정 걸어본다

앞서 이시다 9단이 이야기했던 세분화를 생각한다.
그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 진행할 수 있을 거 같다.
가보자.


      7도 (어떤 기분을 가지시는지? - 실로 궁금한 일)

6점 下手를 앞에 두고 여러분은 앉아 있다.
이 글도 그렇게 앉아 있다.

자, 그런데...

어떤 기분 갖는지?
상상해 보시라.
“상상하라”가 아니다.

“상상해 보시라.”

가볍게 하시라.
“상상하라”는 명령의 어감 강하고
“상상해 보시라”는 다룬다는 느낌, 가볍다는 느낌 강하다.

바둑은, 가볍게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한 게임이다.

아니, 바둑만이 아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앞에 둔다는 것은 - 미래에의 또는 변화된 그 무엇에의 대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 짊어지고 가야 할 짐과 같다.
무거우면 눌린다. 질린다. 철학자들에게서 질린 인상 돌아보시면 될 것이다. 그 경우 그 철학은 지침이 되지 못한다. 대신 막아버린다. 출구를 막아버린다.
그러나 가벼우면 그건 동반자가 된다.

이 글, 가볍게 놀고 싶다.
바둑 하나 가볍게 놀지 못해서야 어디!
가벼워야 갖고 놀 수 있다. 접바둑이야말로 더욱 더 그러하다.
갖고 놀아야 넓은 이해 할 수 있다.

자, 그건 그렇고
저 7도를 어떻게 갖고 논다?
저 6점 놓은 下手를 갖고 노는 것이 아니다. 우린 저 반상을 갖고 논다.
상대는 없다. 단지 반상과 반상에 놓인 돌만이 우리의 의식, 그 주체이자 대상이다.

아마 이런 기분 들 수 있다. 白을 잡은 입장에서.

답답하다
어둡군. 까마니까.
엉? 웬 흑집이 저토록 많아?
...

어느 것일까. 모든 것이 뒤섞여 있을까. 그래도 하나만 골라보자.

답답하다? 그러면 탁 트게 하고 싶을 것이다.
어둡다? 밝게 하고 싶을 것이다.
집이 많아보여서 꺼림직하다? 음, 저 집을 줄여야지!

어쨌든 인정할 수 없다.
저 장면을 인정할 수 없다.

휘젓고 싶다.
뿌리를 뽑고 싶다.
인정은 하지만, 어디 두고 보자.

그런 맘 들 수 있다.
좀 더 부드러운 겸손한 마음도 들겠다.

아쉽게도 이 글은 다른 인상 얻지 못하고 있으니, 또 그런 것을 자인하고 있으니, 이 글의 내면에 콤플렉스가 많은 것을 알겠다. 마음이라는 바다에 좌초된 난파된 감정 이상의 것을 본다는 것은 대단히 난감하다. 난감하다.

좌우간 맘에 아니 든다. 바꾸고 싶다.
보다 아름답게 - 공정한 방식으로 - 표현하면, 변화를 꾀하고 싶다.
그러하다.

변화를 꾀하고 싶다.

그것이다.
불만이든 만족이든 우린 변화를 꾀한다.
변화가 없다면 삶은 뒤칸 골방에 갇히기 쉽다. 나태와 우울, 권태 그런 것에 휘둘리기 쉽다.


자, 어떻게 변화를 꾀하나?
반상에서 변화는 상대의 기득권을 세력권을 무력화시키는 것으로 진행된다.
上手의 맘이다.

어떻게 무력화 시키나?
두 가지 방식이 비교된다.

파괴 vs. 제한
당장 vs. 천천히

어느 것을 택해야 할까?


      8도 (가볍게 상대의 집을 제한하고 제약할 수 있다면)

8도(가볍게 상대의 집을 제한하고 제약할 수 있다면)

8도는 백이 흑집을 가볍게 제한하는 형식을 하나 제시한 것이다.
무어 저리 쉽게 두어줄 하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상정해볼 만한 그림이다.
시사적인 것일뿐더러, 또 무언가 우리에게 생각할 방향이랄까, 가능한 길을 일러준다.
그 무엇이 무어냐? 그건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각자가 얻을 일.

두 가지 가능한 희망이 있다.

1) 저런 정도로 반상은 백에게 호전될 수 있다. 나아가서 승부를 기대할 수도 있다.
2) 저런 정도로는 비슷하게 반상을 꾸려갈 수는 있다. 그러나 흑이 저런 식으로 양보를
   하더라도 저 정도는 백에게 희망이 없다.

백을 잡은 여러분은 어느 쪽에 무게를 두실련지?

그 무게에 의해 여러분의 선택이 결정된다.
2도냐, 3도냐, 4도냐.
3도와 4도는 세분화를 중시한 태도임을 다시 한 번 새겨두자.


오늘, 이런 식으로 글의 주제 그려본다.
프로도 高手도 별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이론적으로 뭔가를 하나 내세워도, 이런 식의 현상적인 이해를 오가며 즐기지 못하면 그렇게 자유롭게 반상을 노닌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와 같아서, 이론은 부분적인 수법의 도움 없이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
부분적인 수법은 이론의 힘 없이 자신을 드러낼 수 없다.

접바둑에서의 지침과 안목은 그러므로 다음 세 가지 출발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1. 반상의 조건
2. 이론
3. 수법

선후가 있고
안고 다스리고 하는 차이가 있고
각자 역할이 다르고
...

그나저나
여러분은 6점 바둑을 둘 때
2도, 3도 4도 중에서 어느 입장을 취할 것인지?


오늘은 이 정도에서 생각을 멈춘다.
적당한 부족함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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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이런 측면 다루었으면 하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다루고는 싶지만.

화가 세잔(P. Cezanne)은 말했다.

“색채가 풍부해지면 형태도 충실해진다.”

두터움이라는 개념 우리 잘 안다.
그런데 실력이 1급이 되지 못한 분들도 잘 아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바둑은 선(線)의 요소, 형상, 질감 - 이거 뭐라고 할까. 음영(陰影)도 아니고 양감(量感)도 아니고, 아니 그 모든 것을 뭉뚱거린 표현쯤 될까 - 등 우리가 그림이나 조각을 볼 때 느끼는 그런 감정 많이 제기하는데

실제 바둑에서 사용되었던 설명의 방식에서는 그런 것이 많이 부족했다는 인상 받는다.

오로바둑의 집계산을 보면 - 형세판단 누르면 - 두터움을 집으로 환산하는 방식이 꽤 괜찮다는 인상 받는다. 그것으로 충분할지 모르겠다.

그렇지만 두터움을 잘 정의할 수 있는 용어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한다.
세력의 위력도 잘 정의될 수 있으면 좋겠고.

반상은 우리의 몸짓 언어가 강렬하게 살아 숨쉬는 동네이니만큼
우리의 오관(五官)을 반상에서 활용할 수 있으면 바둑 이해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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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iper27 |  2011-11-27 오후 2:28:2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요즘 현대바둑에서 두터움이란 말그대로 국부적인것으로 해석해야 할듯 싶습니다..
두터움이란것도 결국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것이니..두텁게(?) 두려고 의식하기보다
있는 그대로 ..보이는데로 두는게 더 낫겠다 싶네요..물론 그것도 실력이 되야 하는거겠지만..  
sniper27 |  2011-11-27 오후 2:32: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두텁다..바둑은 조화다..다 비슷한 맥락 아닐까요..
외국인들이 두텁다라는 말을 이해 못한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지요..두텁다라는 언어는 결국 그만큼
바둑이론 수준이 낮다는 말밖에..설명할수조차 없으니까요..
 
sniper27 |  2011-11-27 오후 2:35:4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상대를 이길수 있겠다 싶으면 두텁게 둘수 있겠지만
상대가 나보다 강하다는 의식이 강하면 서서히 두기가
힘든게 바둑같습니다..이기면 두터운 것이고 지면 엷은것이고..ㅎㅎ
두터움을 알라..예전에는 그말이 성경말씀처럼 와닿았는데 최근 어느
여류기사가 두터움을 알라고 말하니 좀 이상하게 와닿더군요..저도
아마추어 하수지만 두터움을 알라.중얼거리고 다녔는데..  
CreasyBear 느티나무 앞의 갈대는 자세를 좀 낮추면 보다 얻을 게 많을 것 같습니다.
sniper27 푸념입니다.돌의 선위가 높아도 두텁다..돌이 뭉쳐도 두텁다..좀 유리해보이면 두텁다..세력도 두텁다, 약한 돌이 없어도 두텁다..무조건 유리만 하면 두텁다고 하니까요..두텁지 않은건 뭔지..
sniper27 |  2011-11-29 오전 10:59: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 쟁이들 보면 모든것을 두텁다 하나로 시작해서 끝내잖아요..ㅎㅎ
그냥 부분적으로 어디가 좋아뵌다..이렇게 말하지..아마추어를
농락(?)하는 언어입니다..ㅎㅎ  
나는어디로 |  2011-12-01 오전 7:52: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용직사범님 하수가 상수이기는 기보 엄나여 !!!!  
남자믿었네 |  2011-12-05 오전 8:53: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황홀하고 아름다운 문장이여.. ^^*  
남자믿었네 님의 사유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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