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바닷가 남쪽 마을이다. 땅끝은 아니지만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였으니 우리 집안 선영(先塋)들은 개헤엄을 칠지라도 바다와 친한 척 했을 것이다.

산보다는 평야 면적이 적지 않았지만 전설을 한 주먹씩 움켜쥔 곳들이 적지 않다 보니 곳곳을 들쑤시는 나의 의문은 전설의 끝자락에서 시작해 현실의 가장자리에 들어와 멈추곤 했다. 아름드리 칡뿌리가 시오리를 뻗어 술을 좋아하던 사내의 마음자릴 고쳐줬다는 얘기나, 남생이 춤을 추던 곱사둥이 처녀의 슬픈 춤사위라든가···, 내 고향 전설은 어느 것 하나 내버릴 수 없는 따뜻함과 정겨움이 있었다.

봄이면 산자락을 오르내리며 진달래꽃을 따 입에 물며 한때나마 시장기를 없앴던 그 옛날의 시간들. 추억이란 낡은 비망록을 열어 아련한 뒤안길을 거닐게 한다. 이런 글을 언제 썼던가.

새 소리가 한가로우니 수림에의 봄은 늦었고

고기들이 입질하는 데 작은 시냇물만 흐르구나

鳥語緣緣春樹晩

魚笛策策小溪流

4월의 하늘은 회색빛으로 그을려 있었다. 겹겹이 겉옷을 껴입은 겨울이 고함지르며 밀려가지 앉으려는 얼긋설긋 바람수가 열리는 남녘 해남의 낚시터 주변.

겨울이 오면 소년들은 앉은뱅이 스키를 지치고, 강심(江心)은 제 깊이를 마다하고 스르륵 싸르륵 모닥숨만큼이나 질긴 비명을 질렀다. 쉰을 한참이나 넘긴 그때, 나는 거기에 서 있었다.

겨울의 잔주름이 잡혀있는 달력엔 아직도 칼바람이 지나가고 수초 속에 숨은 잉어가 회돌이 하며 앵리하는 그곳! 일상은 그렇게 열렸었다. 물비늘처럼 흔들리는 나의 시야에 뿌옇게 드러나는 산기(山氣)는 하오(下午)의 태양을 부끄러워하고 나는 시위를 당기는 궁사(弓師)처럼 먼산 빛을 깨치고 있었다.

낚시꾼들의 여담이 머무는 빨간 지붕의 방갈로 뒷길에서 한 마리 새가 연(鳶)처럼 날아올랐다. 작은 새는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날갯짓을 하며 주위를 빙빙 돌더니 스무 걸음이나 떨어진 대추나무 가지에 앉아 나를 노려보았다.

다갈색 날개 속엔 지난봄의 꿈조각이 덜기덜기 묻어 있었고 옛 전설을 말할 것 같은 애린(愛悋)의 눈동자는 누군가의 이름을 그리워했다. 누굴까? 다사로운 깃닡에 머문 이가 누구였을까? 휘청이는 다리를 접고 매운탕집의 낡은 의자에 앉아 새를 노려보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새를 봅니다.”

매운탕집의 촌로(村老)가 지천(知天)의 나이에 걸맞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새가 산을 잃었다더니 그도 아니네요.”

나의 말에 촌로는 무엇이 우스운지 똥똥한 몸집에 어울리는 제스처로 웃음의 숫자를 헤아리고 있었다. 그에게서 비릿한 생선내음이 꽃가루처럼 날려왔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저 홀로 빈산을 떠돌 때도 산은 새소리를 잃고 숲은 긴 잠을 자고 있었다. 나무 허리를 가르며 날아간 할미새가 숨어버린 숲길엔 밤마다 살아돋는 소쩍새의 피울음만이 술 취한 나무들을 조롱했다.

나의 사고(思考)는 어둠에 배어들어 터널을 지나는 기관차처럼 덜컹거리고 멀잖은 곳에서 이끼처럼 엷은 껍질을 두른 어둠이 밀려와 그냥 혼자였음을 실감케 했다.

그렇구나 나는 늘 혼자였구나. 산사(山寺)의 풍경이 소리할 때나 여름날 태양이 공전(空轉)을 게을리 할 때나 나는 늘 혼자였구나.

어둠을 할퀴는 나의 소리는 공산(空山)의 허회로움을 깨우고 그때마다 내 영혼의 늪에선 한 마리의 새가 날아오르고 있었다. 정녕 저희의 노래가 나의 슬픔이었는지 모른다.

아니, 그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득하고 아슴했던 날, 그때의 내 이름이 새였는지 모른다.

꽁지 끝에 색색의 깃닡을 달고 월궁으로 비상하는 새였는지 모른다. 달뜨는 저녁이면 계관시인이 되어 노래하고 아침이면 밤새 토해놓은 소쩍이의 피울음 위를 날아가는 비조였는지 모른다. 모든 율법의 조율이 노래로 시작되고 기쁨의 형구(型句)가 시로써 채워지는 월궁의 비조였는지도 모른다.

아이들의 고함소리가 북소리처럼 밀려왔다. 나의 눈은 강심으로 날아내린 작은 새를 좆고 있었다. 그것은 자잔한 아름다움이었다. 둥근 우리(巢)를 만든 아이들의 시선이 온몸에 은침으로 꽂힐 때 간간이 흩뿌리는 눈발은 더욱 거세졌다.

새야 새야 날아라 까만 새야 날아라

새야 새야 날아라 이쁜 새야 날아라

나는 꼼짝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이들도 작은 새도 흔들림 없는 몸짓을 하고 있었다. 지극히 짧은 순간, 작은 새가 날아올랐다. 그것은 한 폭의 그림이며 시였다.

말하는 입술을 가진 시인은 작은 새의 덧없는 비상을 노래할지 모른다.

새는 나의 일상이며 한숨이다. 새는 나의 기쁨이며 슬픔이다. 스멀스멀 날개가 돋은 겨드랑이를 열어 구름낀 볕늬를 날고 싶다. 새는 나의 이름이었다. 우리 모두의 잊혀진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