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꼭두새벽부터 몰아닥친 한파는 몇 십년 만에 눈바람을 휘늘거리며 ‘세 개의 대나무 마을(三竹里)’로 향하는 참새 지저귀는 저수지 사잇길을 강타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철우(喆禹) 씨에게 늘 저수지 둑길을 떠올리며 새소리를 들려주곤 했었다.

“얘야, 지금은 애비가 저승의 아래층까지 왔다만 젊은 그 시절엔 삼죽리 저수지 둑길이 만만찮은 곳이었다. 어릴 적 서당을 출입하며 한학(漢學)을 공부하던 애비의 촉각이 새소릴 가까이 하다 보니 ‘새 소리가 한가로우니 수림에의 봄은 벌써 늦었다(鳥語策策春樹晩)’는 시도 지었지 않느냐. 모두가 저수지 둑길의 새소리 때문이다. 올해는 여느 때완 달리 날씨가 사납고 애비 몸이 부실하니 네가 그곳을 다녀와야겠다.”

   아버지는 새소릴 기억 속에 다시 집어넣은 채 해묵은 사진 한장을 아들 손에 쥐어주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엔 동(洞)사무소에서 ‘서예교실’을 여셨는데, 두어 달 전부터 거동이 불편해 흔들의자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앉아서 꿈꾸는 산’이 되셨다. 신년이 오자 뭐가 얼마나 급한 일이기에 눈 폭탄이 쏟아지는 엄동설한에 하나뿐인 아들에게 달랑 낡은 사진 한장 건네며 ‘삼죽리 물레방앗간’을 다녀오란 것인가.

“저수지 뒤쪽의 낡은 풍차가 있는 곳에 가면 용인댁(龍仁宅)이 나와 있을 것이다. 만나면 정중하게 애비는 예나 제나 변함없다 하거라.”

그 말뿐이었다. 철우 씨는 눈길에 막힌 시골길을 발목이 푹푹 빠지게 걸으며 털모자 속에 낯을 숨긴 채 후후 뜨거운 숨을 하마처럼 몰아쉬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걸 ‘어처구니가 없다’고 하던가. 도대체 아버지는 눈 폭탄이 쏟아지는 날 무슨 이유로 아들을 그곳에 보내는가. 철우 씨는 아버지가 했던 말을 곱씹으며 생각할수록 아버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인댁을 만나면 애비는 예나 제나 변함없다고?’

한숨 속에 실소(失笑)가 터져 나왔다. 어처구니가 뭔가. 그것은 왕실이나 사대부 집안에서 집 지을 때 액운을 방비하려 만든 조형물이다. 이른바 12지(支)로 알려진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辛酉戌亥)의 열두 가지 동물모형이다.

이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기름기 오른 사대부가의 유풍(儒風)으로 자리 잡았지만 그 흔적은 고려 때도 남아있다.

이를테면 만월대에 있는 다섯 가지 동물유적이 그것이다. 건너편 자남산(子南山)은 쥐가 함부로 나다니지 못하도록 묘암(猫岩)을 만들고 고양이가 함부로 날뛰지 못하도록 개바위(狗岩)를 만들었으며 개는 호랑이가, 호랑이는 코끼리가 견제할 수 있게 했다.

   이것이 조선시대엔 열두 가지 동물모형을 만들어 처마에 떠억하니 붙인 게 어처구니였다. 왕가는 물론 사대부가에선 집을 지으면 빼놓지 않고 마련해 붙이는 게 호신 겸 액땜방비용이 어처구니였다.

그런데 깜빡 잊고 만들지 않는 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이다. 말도 안 된 일이 나타났다는 얘기리라.

아무리 그런 걸 만들지 않았다고 엉뚱한 일이 생긴 걸 사람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눈감고도 다니는 길이었기 때문이리라. 손바닥에 뭣이 쓰였는지를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그걸 굳이 확인해 보지 않아 어이없는 일이 생긴 걸 쉽게 받아들이겠는가?

봄날을 기다리던 상록수들은 쉼없이 쏟아지는 눈 폭탄에 진절머리 치며 추위에 오소소 떨고 있었다. 저만큼 물레방앗간이 보이는 저수지 끝자락에 도착했을 때 눈발은 조금씩 잦아들었다. 하늘거린 함박눈도 조심스럽게 내리는 중이었다. 물레방앗간의 낡은 지붕이며 좌우로 휘늘어진 와송(臥松) 위에도 내려앉은 채 저수지 위를 미끄럼질하며 달려와 나무 위의 눈들을 간질이는 바람의 속삭임에 키득거리고 있었다.

눈들은 속삭였다.

“사람들은 참으로 한심해. 왜 자기 것밖에 모른 채 허덕이며 인생을 살까. 우린 사람에게 맑음을 가르치지만 떠날 때는 몸까지 녹인 채 흔적도 남기지 않잖아. 저기 보라구, 저 사람은 무슨 욕심으로 이가 시리도록 추운 겨울 날 여길 찾아왔을까.”

   물레방앗간 앞에 왔을 때 철우씨는 눈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훤한 백주 대낮인데도 태양은 한파(寒波)의 회초리에 쫓겨 수채구멍 안으로 들어갔지만 아직도 빛기운은 살아 있었다. 물레방앗간 앞의 바람이 엿보기만 하는 장소에 이르렀을 때 철우 씨는 인기척을 느끼고 귀를 곤두세웠다.

“거기 누구십니까? 혹시···혹시, 용인댁이세요?”

‘용인댁’이라는 말에 상대가 화들짝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선가 본 듯한 곱상한 얼굴이었지만 이상하게도 키가 작았다. 철우 씨는 자세히 바라보면서 아! 하는 단음을 짧게 삼켰다. 상대방은 스물은 넘어 보인 처녀였는데 안타깝게도 곱사동이였다.

“이리 들어와 한기 좀 삭히세요.”

“아, 예에.”

가느다란 쇠줄을 튕기는 듯한 소리가 한결 잦아지고 쫓기어간 햇깃이 돌아오자 주위의 경물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지 조금씩 드러나 보였다.

저수지 끝자락이라 볼 수 없었지만 와이(Y)자 형태를 이룬 곳에 자리한 물레방앗간은 수초(水草)가 우거지지 않았지만 한결 깊어 보였다. 그것은 보는 이에 따라 따뜻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곳에 낡은 물레방아가 그 옛날 돌았다고 본다면 어딘가 모르게 옛스런 무드가 깔린 곳이라 볼 수 있었다.

그 옛날 갑돌이와 갑순이도 이런 곳에서 로맨스를 틀었을 것으로 생각하면 가볍게 볼 장소는 아닌 듯 싶었다. 그래서일까, 곱사동이 처녀아이가 그런 말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우리 어머니의 사랑이 묻어나는 곳이에요. 서울로 떠난 아버지를 기다리며 눈물로 한숨짓던 곳이죠. 덜그럭대는 물레방아 돌아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내가 아홉 살이 됐을 때까지 여기에 오셨어요. 그쪽이 부르던 용인댁이 내 어머님이에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철우 씨는 무딘 비수로 가슴 한복판이 찔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말을 하는 곱사동이 처녀나 용인댁이 자신과 전연 무관하지 않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자신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용인댁 얼굴, 그 얼굴에 덧씌워지며 처녀의 말소리가 바람을 탔다.

“우리 어머니는 쌍둥일 낳았나 봐요. 그것도 남녀 쌍둥이를. 동네에선 불길한 일이 생겼다고 이 사람 저 사람이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귓속질을 하고 조롱했대요. 어느날 아버지는 동생만을 보자기에 싼 채 마을을 떠나셨어요. 성공하면 돌아오겠다는 쪽지만 남긴 채요.”

“그런 아버지가 다섯 해 만에 돌아왔어요. 아이를 키울 사람이 없어 결혼을 했노라구요. 어머니는 얼마나 놀라셨는지 몰라요. 그렇기에 내가 툇마루에서 떨어진 것을 나중에 아신 거죠.”

“···.”

“아버진 내가 이런 모양이 된 걸 무척 가슴아파했지만 항상 하루만 지나면 떠나갔어요. 당신을 용서해 달라시면서요. 어머닌 너무 한이 많으셨어요. 그렇기에 세상을 떠나시면서도 아무 말없이 눈물만 흘리신 거죠. 물레방앗간에 어머니를 묻고 나는 새해가 오면 항상 아버지가 오시는 걸 기다렸어요. 그것도 열다섯 해나요.”

“용인···댁은?”

“제 어머닌 15년 전 돌아가셨어요.”

“혹시 그 분의 심부름을 오신 것이라면···, 이 편지를 보세요. 아버님이 오시지 못하면 당신이 놓고 가신 편지를 이곳에 온 분에게 전하라 했거든요.”

꽤 오래 전에 썼을 것을 생각된 편지는 노란 봉투 속에 들어 있었다. 그것을 얼마나 소중히 여겼는지 편지는 슈퍼마켓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비닐로 소중히 싸여 있었다. 그 안에 든 편지가 철우 씨의 시선을 자극했다.

<아들 철우(喆禹)는 보아라. 이곳 삼죽리리는 애비의 고향이다. 그러고 보니 너의 고향이기도 하구나. 이곳엔 너의 친어머니 용인댁이 있는 곳이다. 그 말에 너무 놀라지 마라. 이제야 말이지만 너에겐 쌍둥이 누이가 있다. 이름이 희수(囍秀)다. 기쁨이 매우 빼어나다는 이름이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너희들이 나의 기쁨이란 걸 항상 생각했다. 그래서 딸아이는 기쁠 희(喜)를 겹쳐 사용했고 너는 길할 길(吉)을 겹쳐 썼다.
철우야, 네가 이 글을 볼 때엔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애비는 오래전부터 간암으로 고생이 심했지 않느냐. 눈을 감으면 너의 어머니 용인댁이 나의 손을 잡아끄는 것 같구나. 이토록 추레한 나를 용서해 주는 것 같구나. 철우야, 애비가 평생을 모은 재산은 모두 희수에게 상속했다. 네가 누이를 잘 섬기고 보호하면 그 아이가 너의 몫을 생각해 줄 거로 애빈 믿는다. 그럼 먼 훗날 저승에서 만날 그때까지 화평하게 지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