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이 철문(喆紋)이라는 것에 사람들은 말이 참 많아. 한문으로 휘갈겨 설명하기 전엔 ‘쇠 철(鐵)’에 ‘문짝 문(門)’으로 생각해 빈틈없이 가정을 지킨단 뜻으로 이해하거든.

내가 밖에서 ‘새끼손가락(?)’을 만나든 어쨌든 모범적인 가장으로 후한 점수를 주고 있으니 그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해서라도 모른 척 넘어가는 게 이 시댈 살아가는 모범적인 남편의 상(像)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나를 알까? 모르지 아암 모르고 말고. 이히히히히!

사내라는 게 그렇잖아. 항상 마누라 눈치 살피다 직장이란 ‘해방기구’를 만나면 아이구 이제 살겠다 싶어 꼬불쳐놓은 비상금 뭉그적대 서부개척시대인 포장마차를 의기양양 방문하고, 배호의 18번 돌아가는 삼각지의 영자네 집을 짜자쟌 적시타로 열어젖히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삼류신문사의 기자 출신이라 귓구멍은 열려 있는 치들에게 경제니 뭐니 아는 소릴 지껄여야 하고, 요즘엔 젊은이들이 진 치는 부동산 소개소의 업자라도 만나면 재테크에 대한 멍멍이 소릴 씨부렁대야 가끔 만나는 길에 눈인사라도 받는 처지가 된다.

그래서 철문 씨는 항상 바쁘다. 몸도 바쁘고 생각도 바쁘다. 오늘같이 반상회라도 열리면 항상 뒤풀이는 오고가는 대화 속에 동네 술친구와 해방 이후 가장 재미없는 구수회담에 하품을 쏟아내야만 한다.

대체로 이런 자리에서 만난 ‘치’들은 같은 동네 친구들이라 격을 매길 순 없지만 그래도 두꺼비 몇 마릴 잡고 보면 간덩이가 슬렁슬렁 물에 젖어 배 밖으로 튀어나온다.

“어이, 우리 말이어 앞으로 손짓 좀 하고 지내세.”

손짓이라는 게 점잖은 말로 인사지만 다른 뜻으론 술잔을 나누거나 내립다 두드리는 고스톱 판을 벌이는 일이다. 점에 2백원이니 도박이랄 수는 없고 간단히 여가를 선용할 심심풀이 땅콩은 돼 보였다.

반상회가 끝나면 끼리끼리 쐬주 파티를 벌이거나 노래방으로 달려간다. 요즘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가수다. 노래방 기계가 돌아가면 ‘쿵쿠르짝짝 삐약 삐약’ 박자를 맞춰주고, ‘오이, 오이 삐약 삐약!’ 추임새 후렴구까지 늘늘하게 도움 받아 철문 씨도 ‘삼팔선의 봄’ 대신 배호의 ‘영시의 이별’을 추려뽑아 레퍼토릴 삼았다.

소주방이다 생맥주집이다 팀이 나눠지면 꼭지 돌도록 술을 마시는데, 요 근래에 가장 믿음직스럽게 어울렸던 게 ‘장 구렁이’란 사내였다.

거참, 별명 한 번 더럽게 껄적지근하다고 느꼈지만 이제 서른둘이라는 녀석의 성이 장씨(張氏)란 사실을 알고부턴 사람들이 남의 성 갖고 장난친다는 점에 표정을 굳히고 핀잔을 던졌다.

“아, 비싼 밥 먹고 네모 번듯하게 성장한 사람에게 쓰잘떼기 없이 ‘장 구렁이’가 뭔 소리여. 앞으론 하다못해 ‘장씨라고 혀!’ 내용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땐 여간 싸가지 없다 할 것이구만잉.”

그럴 때마다 ‘장 구렁이’는 웃음 비스무리한 걸 지으며 연신 철문 씨가 마셔대는 잔에 술을 채우기 여념 없었다. 녀석이 괜찮다 싶은 건 어쩌다 늦도록 술자리를 같이할 때면 상대가 가장 내세울만한 걸 가볍게 건드려주는 센스도 있었다.

얘기 하는 상대방이 자신만만하게 자랑거릴 나타낼 절호의 기회여서 주절주절 얘기를 이어가면 양념치듯 불쑥불쑥 추임새를 넣는 게 그야말로 타이밍을 맞추었다.

그래선지 그와 얘기를 주고받은 녀석들은 좋은 점수를 주었다. 얼마 전엔가 녀석은 낯빛을 굳힌 채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뭔 일이여?”

“사람들이 제 직업 가지고 말들이 많은 모양입니다.”

“직업? 가만, 장선생 직업이 뭐였지?”

“모르셨어요? 제 직업은 브레지어 디자이너죠. 전에 살던 곳에선 사내가 쬬잔한 직업 가졌다고 숙덕거렸지만 가리개를 만드는 쪽에선 예술이거든요. 브레지어는 으뜸 가리개지만 말랑말랑하면서 튀어나오는 감촉이 착용하는 이들을 은밀하게 포장하거든요.”

“호오, 거 참 요상한 일이네. 그런데 ‘장 구렁이’란 무슨 말이요? 듣기에 따라 이상한 생각이 드는데?”

“저도 잘 모르죠.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제가 몸에 이상이 있어 권투선수가 보호막으로 끼는 마우스피스처럼 그런 걸 내 거시기에 끼웠거든요. 그런데 반상회 끝나고 쐬주 한 잔 하는 길에 약장수 오씨가 장난삼아 내 거시기를 만지더니 그 다음부터 ‘장 구렁이’란 말이 퍼졌거든요.”

‘와따 이 사람 좀 보소. 거시기가 뭔 놈의 구렁이 대가리야?’

이히히, 그러니까 이번 일은 그 염병맞을 오씨의 장난질이 분명했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 말하기는 좀 그렇긴 한데, 오씨가 처음부터 요상한 소문을 낸 것은 반 장난이었을 것이다. 작년만 해도 늦추위가 발광한 탓에 사람들은 퇴근하면 일찌감치 집구석에 들어가 TV채널을 요리조리 돌리며 궁상을 떨어댔다. 그때 오씨가 지껄인 한 마디가 약이 된 것일까.

“저기 말이시, 그 브라쟈 쪼물락탱이 말이여. 고 샤키 원체 거시기가 야구 방망이라네. 내가 늘낙지처럼 달라부터 아양을 떨어댔더니 비밀이란 걸 털어놓더구만.”

“비밀?”

“아, 얘기를 들으니 희한한 방법으로 물건을 키웠다네요.”

“무슨 방법?”

“해파리 말이어, 해파리!”

“해파리?”

“목욕탕에 소금물을 만들어 해파릴 몇 마리 풀어놓고 그 안에 들어간 모양이야. 해파리란 녀석들은 오랜만에 말랑말랑한 물건을 만났으니 닥치는 대로 독(毒)을 쏘았겠지. 그랬으니 부어올라 죽는다고 난리굿을 피웠지. 하긴 부시맨들은 자기 거시기를 쨩돌로 짓이긴 후 바다 물에 풍덩 한다잖아. 상처 부위가 소금물로 씻어지니 얼마나 아프겄어. 그뿐인 줄 알어. 모양도 너덜너덜 해 그런 걸레가 없다누만.”

이날을 기화로 요상한 소문이 번져나갔다. ‘장 구렁이’의 거시기가 남생이 대갈통을 닮았다느니 전파사 배씨는 자기가 장 구렁이의 거시기를 봤는데 영락없이 통영 앞바다에서 잡은 낙지대가리였다고 탄성이 연속이었다. 소문은 은근히 퍼져 반상회에 참석한 사내들 마음자리를 얼컹설컹 할퀴기 시작했다. 오씨가 한 마디했다.

“이야, 장씨 그 냥반 이층 한 번 쌓으면 스물네 시간이니 비얌이지. 꼬랑지 휘그르르 말아감는 비얌 말이야. 근데 이 소문 진짠지 모르겄어. 그 전에 살던 아파트에선 ‘세 번은 길게 세 번은 짧게’가 유행했다네.”

“왜?”

“브레이지어 디자이너 장씨가 나타나 벨을 누르는데 어쩔 때는 길게, 어떤 때는 짧게 세 번을 누른다는 거야. 그게 뭔 뜻인질 몰랐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알고 장씨를 몰아냈다누만.”

“왜에?”

“그게 바람피우는 코드라네. 세 번을 길게 누르면 장씨가 오늘 시간이 많다는 표시고 세 번을 짧게 누르면 시간이 별로 없다는 거야. 자세한 건 모르는데 벨을 세 번씩 누르는 건 집에 남편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기도 하고···.”

철문(喆紋) 씨는 내심 깜짝 놀랐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게 있었다. 어쩌다 피자 배달을 번지수 잘못 알고 벨을 누르는 걸 봤지만 그의 집에서도 벨이 세 번 울린 적 있었다.

아내는 ‘누구지?’ 하며 문을 열고 나갔다가 한참 후에 돌아왔다. 그러나 그런 데까지 관심 둘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여편네가 자신이 집에 없는 사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아무래도 미심쩍어 내의 파는 가게에 들러 ‘브레지어 디자인’에 대해 묻자 섬찟한 얘길 하지 않는가.

“사내가 그런 직업을 가졌으니 사연이 많다고 합디다.”

구구절절 ‘장 구렁이’에 대한 말이 오락가락했다. 그때부터 멀쩡하던 동네 아파트 관리인은 정신 나간 사내들의 은밀한 부탁으로 짭짤한 부수익을 챙겼다.

“관리인 양반이 쬐끄만 신경 쓰면 될 것이구만잉. 쎄파트마냥 우리 집 좀 지켜보소. 수고비는 줄 것잉께.”

관리인은 사내들이 왜 그러는지 알고 있었다. 동네가 신흥도시처럼 탈바꿈할 때는 의당 따르는 게 사내들의 외도다. 그것을 훈장처럼 달고 의기양양 지껄여대는 게 보기 싫어 어물전에서 만난 아낙네들이 한데 뭉쳐 꾸민 연극이었다.

각색과 연출은 어물전 오씨였다. 새해 새 아침이 오자 방법을 바꾸었다.

“어야 장씨 그 동안 수고했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애쓴 댓가로 받아 두구. 으흐흐, 요놈의 시키들. 정신들 바짝 들었을 거다. 요번엔 잘 생긴 물개 청년이 나타나 온 동네를 헤집을 거니 기다리그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