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강의하는 수비학(數秘學)은 흔히 알 수 있는 건 아니다. 어쩌면 내 강의를 들으러 온 분들은 수의 이치를 설명하는 수리학(數理學)과 동질의 것으로 이해하지만 그건 아니다.
수리학에선 마방진(魔方陣)을 설명하여 일확천금의 호기심을 일으키는 수법으로 비약해 마음을 요동시키는 방법을 쓴다. 그래서 십자가 형태의 도형을 놓고 인간의 마음을 휘젓는다.

“로또 게임을 하는 이들이 숫자를 택할 때 중점적으로 이용하는 게 마방진이죠. 1부터 45까지 숫자 중 어떤 게 나올까? 그게 궁금하죠. 여러분들은 어떤 방법으로 숫자를 택합니까? 저 역시 게임을 좋아합니다만, 아무 숫자나 턱없이 질러 넣진 않죠. 그렇다 보니 가끔 들르는 경마장엔 내가 나타나길 기다리는 사람이 적지 않아요. 그들의 뇌리엔 몇 해 전 8천배 배당을 맞춘 기억이 살아있나 봅니다.”

놀람의 함성이 일어났지만 이내 기러기처럼 손을 펴 좌중을 진정시키고 본래의 얘기로 돌아왔다.

“동양에선 사람이 태어난 시(時)에 기준해 사주(四柱)라는 게 발전했으나, 서양은 ‘조 메이슨’이란 수비학자가 사람마다 인생 살이에 특정한 숫자가 등장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숫자는 기념일이나 생일, 전화번호, 저금통장의 비밀번호와 같은 것으로 이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생일 숫잡니다. 이러한 생일 숫자를 사용하는 방법에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게 1차수와 2차수죠.”

생일 숫자의 1차수는 생일날의 숫자 합이다. 3월 9일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의 1차수는 생일의 합인 9지만, 생일 숫자의 2차수는 개인의 중요한 경력이나 삶의 곳곳에 붙어 다니는 숫자다.
계산방식은 약간 다르다. 생일이 1950년 3월 9일이라고 할 때 2차수의 값은, 1+9+5+0+3+9=27이다. 이 숫자를 다시 2+7로 나누어 더하면 ‘9’다. 1차수는 9, 2차수도 9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9’를 이용해 자신의 생활에 따른 변화로 숫자를 조립하게 된다.  로또는 이 두 가지 수를 이용해 게임을 즐긴다. 당사자를 위해 숫자가 교묘하게 얽히는 건 1년에 일곱 번이라지만 실제론 세 번으로 알려져 있어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3’이며 그 다음이 행운을 뜻하는 ‘7’이다.
이런 강의는 기초적이지만 강의 때마다 집요하게 묻는 이가 있어 일종의 복습 형식으로 한 번쯤 짚어주는 게 수비학(數秘學) 강의를 원활히 하는 요령이었다.

모임에 나갔다 돌아온 지 일주일인가 됐을 때 그 이름도 찬란한 ‘달리는 주사위’가 오랜만에 찾아왔다. 학교를 졸업한 지 다섯 해가 지난 후 연락이 끊겼으니 얼굴 윤곽이라도 변할 줄 알았지만 녀석은 여전히 탱탱했다.
약간 수척한 건 찬바람 맞고 경마장 주변을 어정거린 것이라고 미루어 생각했다. 녀석이 ‘달리는 주사위’란 별명이 붙은 건 대학생활 4년 동안 그의 학비와 생활비를 조달시켜 준 게 주사위였다.
요즘엔 인터넷으로 돈을 버는 재주들이 있어 무작위로 전화메시지를 발송해, ‘오빠 여기 전화 좀 해 봐!’라든가 ‘나 오늘 자기 만날래. 나 정말 괜찮은 여자야. 스카이 출신이라니까’ 하는 내용으로 진일보 하여 나중엔 ‘어머, 어머. 자기 어떻게 알았어. 그래 뻐꾸기 모텔 찔러찔러(7272)야.’로 나동그라지는 게 대부분이다.

그러나 녀석은 그런 데 관심 없었다. 오로지 ‘주사위’ 게임이었다. 나도 처음엔 저게 돈벌이가 될까 싶었는데, 그것을 이용해 학비 한 번 분납하지 않고 처억척 4년을 낸 데다 교문 앞에 문을 연 경양식집 <몬도가네>에서 70만원이 넘은 금액을 안색 한 번 찌푸리지 않은 채 결제하는 걸 보면 사업(?)이 호황을 누리는 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러던 그가 오랜만에 찾아와 무겁게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신가?”

“제가 다섯 해 동안 주사위 놀음을 벌려 돈을 딴 건 사깁니다”

‘사기’란 고백에 내심 깜짝 놀랐다.
‘달리는 주사위’가 사업구상을 한 건 다름 아닌 내 강의였다.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3’이란 말을 듣자 필이 왔다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주사위를 던져 하루에 2, 30만원은 거뜬히 벌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이다.
용산 어딘가 전기과 출신인 고등학교 이력으로 진학한 그는 항상 머리에 맴도는 게 ‘주사위 게임’이었다. 여섯 개의 면에 점을 하나씩 찍어 굴리는 것으로 그 숫자에 돈을 걸고 맞추었을 때 배(倍)로 배당을 주는 게임이었다.

그는 직접 만든 주사위의 1, 3, 5라는 숫자의 검게 구멍을 낸 부분에 전자 칩을 부착해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는 새끼손가락 크기의 리모컨을 눌러 숫자가 마음먹기에 따라 1, 3, 5로만 나올 수 있게 만들었다. 흥미롭게도 약간의 시간이 흐르면서 게임은 1부터 6까지의 숫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홀짝>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게임은, 1부터 6까지 숫자 중, 짝수를 택하느냐, 홀수를 택하느냐에 있었다. 한국인들의 급한 성격을 이용한 방법이었다. 다만, 자신이 택한 숫자에 주사위가 멈췄을 때는 보너스로 일금 1만원이 얹혀졌다. 자신을 알아보는 손님이 늘어나자 ‘달리는 주사위’라고 장판 위에 큼직하게 매직펜으로 휘갈긴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의아스러운 생각이 들어 불쑥 물었다. 그가 갑자기 나를 찾아온 게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란 예감이었다. 멈칫거리던 그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얘길 들었거든요.”

“?···.”

“···저기···, 아실 거예요. ‘비오는 날 오후···.’

녀석은 막무가내로 설명했다. 본래 일어과(日語科) 출신으로 연극반 동아리에 들어간 게 인연이 돼 몇 편 연극에 출연하다 나중엔 연출 파트를 맡게 됐다고 설명했다.
‘달리는 주사위’는 그녀와 같은 고향으로 대전 어디였는데 그 인연으로 주사위 게임을 생각했다는 것이다. 주사위를 굴렸을 때 당연히 딴 자와 잃은 자가 있기 마련이다. 잃은 자들은 주사위를 굴리는 사람이 많은 돈을 챙기는가를 열심히 감시하지만 아무리 봐야 돈 몇 푼만 있을 뿐이어서 화를 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따는가? 그건 ‘비오는 날의 오후’였다. 게임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 그녀는 딱 셋 판을 10만원, 20만원, 30만원을 베팅해 학비를 조달했다. 그들이 딴 액수를 나누었는지 어쨌는지에 대해선 물어보지 않았지만 그것도 오랜 동안 동업으로 했다는데 여간 충격적인 게 아니었다. 그런데 ‘비오는 날의 오후’가 어쨌다는 건가?

“저와 ‘비오는 날이 오후’는 친구로 지냈지만 이상하게 더 발전을 못했어요. 제가 청혼했을 때 그녀는 농담 말라고 핀잔을 줬으니 일이 진행될 리 없었죠. 얼마 전 소극장에서 연극 연출을 하던 선배에게 청혼을 받았나 봐요. 그때 마음이 생숭생숭했던 참인데···.”

‘날 만났다는 건가?’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얘길 이어나갔다.

“그날 술을 마셨거든요. 근데 ‘비오는 날의 오후’가 ‘장미의 기사’에 대해 얘기하잖아요. 그때 만난 노신사에게 크나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횡설수설이에요. 첨엔 농담으로 여기고 지나쳤는데 얼마 전 다시 만났어요. 근데···, 사고가 났어요. 결혼식을 올리고 신혼여행을 떠났는데 사고가 났나 봐요. 신랑이 죽은 건 자신에게 죄가 많기 때문에 그런 거라잖아요.”

그녀의 얘길 듣다보니 당사자가 나라는 생각에 모든 걸 제쳐놓고 뛰어왔다는 게 얘기의 가닥이었다. 그게 학교를 졸업하고 여러 해가 지난 기억의 모서리였다.

“그래서···. ‘비오는 날의 오후’가 뵙고 싶어 하거든요. 한 번 만나 꼭 사죄하겠다는데 제가 그냥 있을 수 없어 달려왔습니다. 장소는 요. 인천 지하철 시청역에서 내리시면 시청역 후문 출입구에서 뵙자는데요. 30일날요.”

‘달리는 경마’는 그 말만 남기고 떠났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녀를 위해 준비했던 은장미는 이미 모습이 바뀌어 반지(環)로 변해 있었다. 서랍에서 그것을 꺼내 바라보는 내 마음도 무척 착잡했다.

약속 날짜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바람이 몹시 불었다.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 같았지만 비는 내리지 않아선지 오가는 이들이 을씨년스러웠다.

약속시간에 나간 그 자리에 ‘비오는 날의 오후’는 나와 있었다. 비교적 많지 않은 차들이 오가는 거리를 망연히 바라보는 그녀가 한없이 안쓰러웠다. 끝내 만나지 못하고 재잘대는 여학생에게 반지와 엽서를 부탁하고 돌아섰다.

<날씨가 차갑습니다. 은장미는 세월이 흘러 반지로 만들었습니다. 항상 그대의 손가락에 앉아 행복이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장미의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