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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 무너진 곳에 새 희망 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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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대회 예선전이 끝난 지난 8월 1일 한국기원 2층. 대회장 밖은 오후 내내 술렁거렸다. 김주호 박승
철 이용수 등 3명의 초단이 16개의 본선 티켓을 하나씩 잡은 것이다.예선 결승에 오른 초단은 이들 외에도 유경민 송태곤 김찬우 등 3명이 더 있었다.이들은 모두 1999년에야 바둑계에 등장한 신예.
바둑계에서 나이와 단위의 귄위는 오랫동안 지켜져 왔다.지난 1960년대말 일본에서 20대의 임해봉 7단이 ‘명인’이 되어 대단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적이 있었지만,그 후 20대 명인은 여전히 드문 것으로,9단의 권위와 실력은 초단이 감히 넘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단위의 권위는 흔들리는 정도가 아니라 사라지고,프로의 의식도 변혁되는 시대가 도래한 듯하다.한 시대를 풍미한 임해봉 9단이 이번에 한국의 강지성 4단에게 패하여 본선 진출이 좌절된 것에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혹자는 아쉬워한다.권위가 흔들리는 곳에 전통과 예는 사라지고 승부만이 남는다고.그러나 필자가 보건대, 고금 어디서나 전통과 예는 지난 시대의 회고에만 있을 뿐,당대에는 언제나 승부만이 존재하였다. 전통은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을 뿐이다.
세상은 변한다.권위가 무너지는 곳에 새로운 희망이 솟아나는 법이며,장강(長江)이 흘러가면 산중(山中)이 열리는 법이다. 기보를 통해서 초단의 기백과 꿈을 엿보자.박승철 초단(백)과 유경민 초단의 결승이다. 백1, 3이 의외의 수법.백1은 두점머리를 자청해서 얻어맞는 나쁜 모양이다.그러나 여기서는 힘과 자유가 형식의 틀을 깨는 모습이다.백3 다음 흑A 이하 백J까지 진행되었는데,급변하는 시대를 밀어서 나가고자 하는 거친 호흡과 두 팔에 솟아오른 힘줄이 들리는듯 보이는 듯하다.
모든 권위는 몰락의 운명을 타고 났다. 권위가 무너지는 곳에 꿈이 일어설 것은 글자처럼 또렷하리라.
문용직 2000년 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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