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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와 명인의 도량과 내기 바둑꾼의 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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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 묘하다. 곧다고 다 곧은 게 아니며,굽었다고 다 굽은 게 아니다. 기껏해야 자신의 안목만큼 제멋에 산다. 자,그러면 어떤게 그 멋인가?
일본의 19세기 초. 막부체제 200년에 정치는 고루하고 사회는 지루했다. 바둑계는 어땠는가. 많은 사람들이 바둑을 아끼고 즐겼다. 기법은 크게 진보하였으며 명인 자리를 둘러싼 암투가 치사하기는 했지만 바둑이 주는 인간적 즐거움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다. 내기바둑도 성행했다.
시미야(四宮米藏)라는 바둑꾼이 있었으니 천하의 누구와도 2점이면 이긴다(天下二目)고 자신했다. 평생에 걸쳐 판돈이 자그마치 당시 가치로 쌀 3000석에 달했다 하니 어느 정도의 규모로 내기를 했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그에 대한 평가는 상반된다. 시중의 형편없는 내기꾼으로 혹평한 글이 남아 있는가 하면,당대의 명인이 그를 인정하기도 했다.
1820년 그가 52세 때 원기왕성한 34세의 죠와(丈和) 명인과 2점으로 10번기를 두었다. 놀랍게도 성적은 4승 6패 1비김. 프로 5단의 실력인 것이다.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상대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시미야는 내기꾼인 자신을 2점 접는 명인의 기량과 내기꾼을 대우해주는 도량에 놀랐고, 명인도 독학으로 일군 그의 바둑 수준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10번기 1국을 보자. 정말 대단한 기백이고 수읽기라 할 만하다. 살기에 급급하기는커녕 오히려 명인에게 사석(捨石)작전을 펼치다니! 정식 공부도 없는 강호의 유랑 생활에서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다니 대단하다 하겠다. 바둑책인들 오늘날과 같이 주위에 널려 있어 쉽게 접할 수 있었겠는가. 아쉬운 건 흑15. A였다면 백이 곤혹스러웠으리라.
죠와 명인도 어지간하다. 자신의 책(‘國技觀光’ 1826)에 그와 둔 대국보를 태연히 실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시미야도 말년의 호를 무안(無案)으로 삼은 것으로 미뤄 볼 때 만만찮은 자부심으로 인생을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내기바둑이 바람직할 수는 없다. 다만 시미야의 일은 그만의 삶으로 보고 싶고, 무감각한 현실에서 만난 통쾌하고도 역설적인 얘기라서 독자께 소개해 드리고 싶을 뿐이니 이해해 주셨으면! 사실 그의 일생을 책임감도 없는 나약한 삶과 비교한다면 오히려 그에게 큰 실례가 되지 않을까?
(2003-11-26 문용직 프로5단 사이버오로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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