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이 약간 소란스러운 기척이 나며 안으로 들어온 것은 서른쯤으로 뵈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미실의 건너편에 자리를 잡은 채 나직이 입을 열었다.

“아가씨가 염선생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칠사의 몸에 깃든 병마를 몰아낼 치료약을 가져왔으니 적으로 생각지 않고 말하겠어요. 그래도 되겠지요?”

“말씀하세요.”

“나 역시 서라벌이 고향은 아닙니다.”

“그럼 가야(伽倻)겠군요.”

“그래요. 나라가 신라에 병합되자 제왕이 마실 술을 제조하던 염선생은 집으로 돌아와 그런 말을 하는 거예요. 신라(新羅)가 자신의 존재를 모르니 술을 관리하는 양온서의 상급직원이라 속이고 일을 꾸미겠다는 거였어요.”

“일을 꾸민다는 건 제왕을 시역(弑逆)하겠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막연히 복수한다고 했지만 노리는 인물은 지소태후에요. 가야가 망한 건 수렴청정하던 태후가 이사부(異斯夫)에게 병력을 주어 가야를 휩쓸었기 때문이죠. 나는 가야에서 그 분의 아내였지만 나라를 빼앗겼으니 어디든 마음대로 떠나도 된다 했지만 저는 한 목숨 그 분에게 드린다고 약조했거든요. 이젠 그 분의 아내도 아니고 가야의 유민(流民)에 불과할 따름이지요.”

여인에게 있어 가장 큰 무기는 미색(美色)이다. 천하를 아우르는 건 사내들일지 모르나 그 사내의 핵심적인 촉각을 쥔 건 여인이라는 말이 있다. 망한 나라의 유민들이지만 파고들 곳은 얼마든지 있었다. 먼저는 ‘화랑(花郞)’이다.

화랑 조직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화랑 · 낭두 · 낭도다. 화랑의 우두머리는 풍월주(風月主)이고 그 아래 부제가 있다. 그 아래로 좌우 봉사랑(奉事郞)이 있고 전방 봉사랑이 있다. 이들이 각기 3부의 낭도를 거느렸는데 그 아래로 진골화랑 · 귀방화랑 · 별방화랑 · 별문화랑 등이 있고 이들은 대개 열두서너 살쯤의 진골 및 대족(大族)의 자제들 가운데서 뽑힌다.

그들 밑에는 좌화랑과 우화랑을 두 명씩 두었고 그 아래 소화랑(小花郞) 세 명과 묘화랑(妙花郞) 일곱 명을 두었다. 이것은 상부 집단이다.

그렇다면 하부집단은 어떤가? 여기엔 낭두(郎頭)가 먼저 모습을 나타낸다. 낭두에는 망두 · 신두 · 낭두 · 대낭두 · 상두 · 대두 · 도두 등의 등급이 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대도두와 대노두가 생겨났고 도두 이하의 직급은 각기 별장(別將)을 거느렸다. 대노두는 예순 살, 대도두는 쉰 다섯 살, 도두는 쉰 살, 대두와 상두는 마흔 다섯 살, 낭두와 대낭두는 마흔 살까지로 한정돼 있다.

대도 중 원하는 자가 망두가 되고 그 가운데 공(功)과 재주로 천거되면 신두의 자리에 올랐는데 망두만이 낭두가 될 수 있었다. 그러는 한편 상선(上仙)과 상랑(上郞)의 마복자(摩腹者)도 낭두가 될 수 있었다.

낭두 밑의 낭도 조직은 열셋이나 열넷에 동도(童徒)가 되었고 열여덟이나 열아홉 살 때에 평도(平徒)가 되었으며 스물셋이나 네 살에 대도(大徒)가 되었다. 이것은 화랑의 군제가 연령별로 나누어져 있음을 나타낸 것이다.

성인 낭도 가운데 원하는 자가 망두가 되고 신두가 되었으며 망두 가운데서 낭두를 뽑았으며 대도는 서른 살이 되면 병부(兵部)에 속하거나 혹은 농공에 종사하는 일에 돌아가 향리의 장(長)이 되었다. 이로 보면 낭도로 활동하는 기간이 전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화랑의 으뜸자리인 풍월주를 물려준 화랑들은 상선(上仙) 등의 지위를 차지하고 그들이 풍월주 위에서 자문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풍월주의 부인들은 선모(仙母) 또는 화주(花主)라 불렸으며 화랑도 역할에 일정한 역할을 했고 화랑도의 집단인 낭문(郎門)에는 ‘유화’가 있었다. 이런 것으로 보면 여자들도 화랑도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가하면 공식적인 편제에 속하지 않은 사도(私徒)도 있었다. 여기엔 3부로 나뉘었는데 그 가운데 좌3부(左三部)는 도의(道義) · 문사(文事) · 무사(武事)를 담당했고, 우삼부(右三部)는 춤과 음악을 뜻하는 현묘(玄妙) · 악사(樂事) · 예사(藝事)를 담당했으며 전삼부(前三部)는 산천경개를 유람하는 유화(遊花) · 제사(祭事) · 조정의 공식 행사를 담당하는 공사(供事)를 담당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이가 서른 가까운 여인은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그녀는 이 집에서 유화의 일을 보고 있었다. 그게 어떤 일을 하는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동안의 행적을 보면 칠사에게 무술을 읽히게 하였고 자신은 이곳에서 주인 나으리를 위해 잠자리 시중을 들 여인들을 추려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여인이 말했다.

“염선생이 아가씨를 이곳에 보낸 건 분명 뜻이 있는 일입니다만, 그 분의 뜻을 받들어 일을 추진하는 건 너무 위태로운 일이라 보여집니다. 해서 말씀입니다만 무엇보다 아가씨가 머물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염선생이 이 아이에게 맡긴 서찰을 보신 후 일을 결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여인의 눈짓을 받은 칠사가 푸른색 천으로 말아 감은 서찰을 꺼내자 미실은 봉함을 풀어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자네에게 부탁할 것은 이제 두 살 난 사내아이네. 그 아이를 왕족들이 사는 궁에 넣어 왕손으로 키워 달라는 것이네. 그리하는 것은 자네가 들어온 이 집의 주인을 움직이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네. 아이가 성인으로 커 갈 때까지 자네가 아이의 어머니란 사실을 잊어선 아니 되네.>

미실은 서찰에서 시선을 거두며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 이름은 비담(毘曇)이라고 합니다.”

▲마복자 ; 신라 특유의 양자 제도

▲팔주령(八珠鈴)은 일반 무당들이 썼다기보다 나라의 제례를 맡은 제관들이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