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스의 운명(단편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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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시스의 운명(단편2-2)
2022-05-03 조회 227    프린트스크랩

그가 그녀를 멀리할수록 오기가 나서라도 그녀는 더욱 접근을 시도했다. 욕망보다는 이성적인 도의적인 상대방을 더 많이 생각하는 타입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그가 그녀에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게 문제였다. 그의 관심은 오직 문학과 종교 모딜리아니의 여자들인지 몰랐다.

그의 관심을 끄는 예수란 사나이와 모딜리아니의 여자들에게 그녀는 강한 질투심을 느꼈다. 그러나 질투의 대상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이 아닌 데에 문제의 심각함이 있었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는 이 세상에 그의 엄마 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오직 고귀하고 높은 이상만이 그가 추구하는 모든 것이었다. 그는 자주 가곡을 불렀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즐거움을 나타내는 노래가 아니고, 오직 뒤틀리고 고통받는 한국민족의 애환이 서려 있는 노래가 대부분이었다. 그의 영혼은 시인의 감성을 지니고 태어났지만, 세상과 화해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살면서 생활을 위해 화학실험실에서 청춘을 삭이며 고뇌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녀도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현실보다는 이상의 세계에 더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 예술에 혼을 판 남자가 그였다. 가정형편이 좋았더라면 성악을 전공하여, 자신의 예술 혼을 노래에 담아서 생활하고 있다면 그도 현실을 받아들일 여유가 있었겠지.

그녀는 거울을 자주 들여다보며 사랑에 목말라하는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녀가 가까이할 수 있는 것은 겨우 그의 껍데기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진정한 사랑이란 그 영혼까지 다 기울여서 사랑받고 사랑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라면.

그녀는 복잡한 머리를 바람결에 날리며 어둠이 깊어진 대학의 정문에 도착했다. 그가 그녀에게 마음의 빗장을 내리듯 정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소리를 들었다. 이미 수위도 퇴근하고 없는 정문 옆에는 그녀가 넘을 수 있는 얕은 담이 또 하나 있었다. 경비 한 명이 건물 주위를 경비하러 갔는지 다행히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구두를 학교 안으로 밀어 넣고 담을 넘었다. 그녀의 심정은 화약을 짊어지고라도 그가 불 속을 걸어오라 하면 걸어가리라 생각하였다. 세상의 모든 제약을 넘어서 오직 그에게 가야 한다는 일념이 그녀를 무척 강한 여자로 바뀌게 했다.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호흡이 가빠진 그녀는, 숙직실 문 앞에서 가슴을 진정하느라 한 참 서 있었다.

오늘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고통과 후회 번뇌의 늪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녀는 모든 것을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맹목적이긴 하지만 사랑은 그녀를 세상에서 두려움이 없는 여자로 만들었다.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행동에 그의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무척 궁금하였다.

그녀는 가녀린 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저 희선 이예요.”

그가 문을 열어 주었는데 그의 낭패한 얼굴이 가관이었다.

남들이 볼세라 얼른 문을 닫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녀가 숙직실에 들어오자 문을 잠갔다. 야간 경비가 일정하게 경비를 돌기 때문이었다.

사면이 꽉 막힌 공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키스 세례를 퍼붓고 열렬한 포옹을 해주련만 그는 손도 한번 잡아 주지 않았다.

짝사랑하는 여자의 비애를 그녀는 그에게서 산 경험으로 배우고 있었다.

숙직실은 3~4평 정도였고 이불이 한 채 놓여 있었다.

그녀는 그와 조금 거리를 두고 마루 위에 앉았다. 물리적인 거리보다 그가 그녀에게 허용하는 정신의 거리는 훨씬 멀고도 까마득했다.

그녀가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틈새는 그의 지독한 외로움인지도 몰랐다.

인간들이면 누구나 다 느끼는 존재의 외로움.

그는 나이에 비해서 너무 일찍 존재의 외로움을 알아버린 사람이었다.

그가 초등학교 삼 학년 때 그의 여동생이 병으로 죽었는데 가난했기 때문에 제대로 약 한 번 써보지를 못했다고 하였다. 동생이 죽은 이후 그는 앞으로 어떠한 슬픈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두 번 다시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고 했다.

그녀는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 해도 좋았던지라 서운했던 그의 행동을 금방 잊어버렸다. 그녀는 그가 숨 돌릴 사이도 없이 많은 말을 쏟아 내었다.

그녀의 감성이 절절히 묻어난 사랑이 뚝뚝 흘러넘치는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사랑의 밀어들이 한꺼번에 흘러나왔다.

아무리 그녀가 사랑의 열정에 들떠서 떠벌려도 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사랑을 깨우지는 못했다.

영화 러브스토리를 보면 남녀가 서로 열렬히 사랑하여 죽음까지도 불사하는데, 현실에서의 사랑은 그러지 못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가 그를 만나면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이다.

이 찰나의 시간에 그녀는 자신을 뒤돌아보며 사랑받지 못하는 한 여자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복도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당황했다. 아무 곳에도 숨을 데는 없다.

그는 그녀가 신고 온 힐을 이불 안에 집어넣었다. 이어서 그녀 스스로 이불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그녀가 이불 속에 자신의 몸을 감추자 그녀의 존재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가 그녀에게 허용하는 마음의 크기만큼 그녀의 몸집도 작고 가냘팠기 때문에 겉으로 표시가 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그녀의 흔적이 지워지자 그는 침착하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경비 아저씨에게 문을 열어주며 들어오라고 하였다. 만약에 문을 잠그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한순간에 그의 모든 인격이 땅에 떨어질 찰나였으나 그는 이 모든 것을 예상하고 문을 잠근 것 같았다. 둘은 세상 살아가는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힘들여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평소에 쏟는 사람이었다. 경비 아저씨는 약 10분가량 얘기를 나누더니 수고하란 말을 남기고 갔다. 경비아저씨가 조금이라도 낌새를 챘더라면 이불을 들춰보든지 그도 아니면 금방 나갔을 것이다. 그는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도 정말 침착했다. 마치 연극배우가 무대에서 다른 사람 역을 천연덕스럽게 하듯이.

경비 아저씨와 그녀의 안전거리는 불과 1.2미터 그녀는 이불 안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들이 하는 대화를 다 들었다. 살아 있음에도 죽은 자가 되었던 그녀는 자신이 우스워 피식 웃음이 나오려고 하여 참느라 무척 혼이 났다.

-나 여기 있다.-

하고 이불 밑에서 나가면 그와 경비 아저씨가 얼마나 놀라 자빠질까 생각만 해도 우습고 통쾌할 것 같았다.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의 슬픔이 한방에 날아갈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꿈틀거림이다. 10분 동안 살아 있다는 자각과 10분의 시간이 정말 어마어마하게 길다는 것을 그녀는 뼈저리게 느꼈다.

훌륭한 연기를 한두 남녀는 서로 한바탕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혹시나 싶어 크게 웃지는 못하였지만 둘은 마음속으로 근래에 가장 큰 웃음을 웃었지 싶다.

12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사람이 숙직실에서 잠을 자는 초유의 이상한 일을 꺼렸든지 그는 그녀를 바래다주겠다며 앞장을 섰다. 차마 인간적인 측면에서도 여자 혼자 밤길을 쫓아 보낼 수는 없었다.

청색의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두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풀벌레들이 잦아드는 숨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오늘이 꽤 낭만적인 날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는 정문으로 향하지 않고 산 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가는 길로 그녀를 안내했다. 행여나 다시 경비를 만나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물기를 머금은 풀들이 그녀의 다리를 스치고 지나가며 섬뜩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에게 있어서 그녀 존재의 의미는 몹시도 애를 먹이는 존재로서 기억될 것이다. 그는 한 참 아래로 내려가며 하늘을 한 번씩 쳐다보곤 했다.

그녀는 그가 택시를 잡아주며 이제 가보란 소리가 나올까 봐 몹시 떨렸다.

오늘은 그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그의 생각이 궁금했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꺼져가는 시간에 둘은 한참 동안 말없이 거리를 걸었다. 그는 숙직자로서 자리를 지켜야 하지만, 오늘은 운명적인 날이란 생각이 들었는지 그녀와 함께 오래도록 어둠 속을 걸어갔다.

도시의 사막에서 오직 한 곳 두 사람을 반겨주는 불빛이 보였다.

여관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쉴 수 있는 조그만 방.

두 사람을 외부로부터 격리시켜서 보호해주는 사면이 막힌 방.

둘은 샤워를 하고 이불 밑으로 들어갔다.

키스는 달콤했다. 더 이상의 진전이 없자 그녀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혹시나 오늘 아이가 생긴다면 그것은 저에게 축복이 될 거예요.”

그는 쉽게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욕망보다 강한 이성, 어쩌면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행여나 덜컥 임신이라도 하면 선량한 그로써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결단을 내리고 그가 그녀의 몸속으로 들어오도록 유도하였다.

고통과 쾌락의 시간이 흘렀다. 그는 이내 잠 속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이 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기 위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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