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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의 산책 - 아이들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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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3월 29일) - 포석의 산책 - 아이들의 세계
아침 5시 08분.
닭 울음.
어둠.
나의 귀.
내 몸.
바람.
형식주의에 빠져 모든 소리를, 모든 어둠을, 모든 사물을, 신비롭게 치장할 수는 있다.
반상 위의 점이 361인 까닭은 1년을 나타내기 위함이라던가,
반상 위의 귀(隅)가 4개인 연유는 4계절을 드러내려는 마음이라던가,
화점이 9개인 것도 九宮을 밝힌 것이라던가,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긴 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연결하면, 상징은 우리의 思考를 묶어버릴 것이다.
우리를 자유와 멀게 할 것이다.
나는 바둑을 모른다.
바둑에 관한 궁금증을 별로 갖고 있지도 않으며. 갖더라도 깊이 들어가본 적은 거의 없다. 적당한 선에서 멈춘다. 왜 내가 모호하고 증거도 불충분한 것에 대해서 굳이 답을 얻어서 만족하려고 한단 말인가.
만족까지 얻을 필요는 없다.
적당한 이해, 그것이 내가 하고 할 수 있는 바다.
장르가 다른 세 개의 바둑이 있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1) 형식
2) 정리
3) 未知
기보로 본다면 다음과 같다.
1) 형식적인 바둑
2) 정리된 바둑
3) 未知의 바둑
정리된 바둑으로 꼽은 것은, 소위 수책류. 그 유명한 “1,3,5포석”이다.
未知의 바둑을 대표한 것은, 어느 프로의 대국보에서 얻은 것이다.
형식적인 바둑을 대표하는 것은, 바둑을 처음 배우는 초보자들이 두곤 하는 것이다.
바둑에도 길이 있다.
그러나 처음부터 길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길을 전혀 몰랐을 때, 길이라는 관념도 없었을 때, 길을 찾아야 한다는 의식이 무의식 밑에 웅크리고 있었을 때, 그 때 형식적인 바둑이 등장한다. 다른 상징의 세계가, 이미지의 세계가 바둑을 지배한다.
시간이 흘렀다.
길을 찾아야 산속을 헤매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다음에 다시 한 번 더 돌아올 길을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것을 필요로 하게 되었을 때, 그 때 정리된 바둑이 등장한다.
만족은 나태와 가깝다.
나태는 권태를 가져온다.
권태는 무섭다.
바로 그 인식이, 未知의 세계를 탐험하게 한다.
탐험의 성과는 미리 알 수가 없다.
그런가? 탐험의 성과에 대해서 미리 알 수는 없는 것일까?
바로 그것을 질문으로 던진다면, 비로소 이론을 만날 기회를 찾게 될 것이다. 이론을 만들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될 것이다.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개념을 연결한다는 것.
그 연결이 의미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것.
앞서 본 未知의 바둑에서는, 어떤 개념을 연결하려고 했을까.
세력과 실리? 그건 아닌 듯하다.
공간과 돌의 배치? 그건 다소 가깝게 느껴진다. 비록 ‘공간’과 ‘돌의 배치’라는 것이 모호하기 짝이 없는 개념이긴 하지만 말이다.
더 좋은 개념 없을까?
저 未知의 바둑을 둔 기사가 내면에 가졌던, 질서를 찾기 위해서 認知의 끄트머리에 붙잡아 두었던, 그래서 動機化를 유발했던, 그 어떤 것을 표현할 만한 적절한 개념 없을까?
0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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