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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석의 산책 - 4월을 준비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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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반상 일기(3월 27일) - 포석의 산책 - 4월을 준비하면서
이른 새벽 5시 37분.
사람이 살다보면 뭔가 잊은 듯이 급하게 살아갈 때도 있고, 또 잠시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도 있는가 보다. 그리고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을 잘 모르거나 - 해야 할 일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 逍遙를 즐기고 싶을 때도 있는가 보다.
다음 시는 그런 마음을 약간 열어주는 듯도 하다.
시인의 휴일
근엄한 멜포메네를 찾아가는
길고 가파른 길에서
잠시 벗어나,
에라, 모르겠다,
나는 다시 유쾌한 건달이다.
후유, 손등으로 입술 씻으며,
나는 터놓고 감상한다
얼굴은 수수하나
전통적으로 押韻한 對句를
흔들며 가는 저 처녀.
복거일. 1988. ꡔ五丈原의 가을ꡕ 서울: 문학과 지성사 (p. 106)
2001년 봄, 일본에 다녀왔다. 妻와 安玲二 선생과 함께 여행을 하였는데, 목적인즉슨, 책을 두 권 쓰려고 자료 수집 차 간 것이었다. 책 두 권은, ꡔ신포석ꡕ(1933)에 대한 해설서와 사까다의 ꡔ포석의 妙ꡕ에 대한 재해석이었다.
그러나 한 마디로 잘 놀다온 여행이었다. 地獄谷 온천에서, 그 유명한 신포석의 産室로 알려진 바로 그 방에서 하룻밤 잘 자기도 했다. 동경으로 돌아와서는 바둑 전문 서점에서 책도 사고. 신포석 시대의 월간지도 20여 권 구했다. 흐름을 좀 자세히 살펴볼까 하는 욕심에.
오청원 선생과 사까다 선생도 만났다. 책 쓰는데 동의를 구하였다. 어느 평론가의 집에서는, 정말 맛있는 사케도 마셨는데, 그 맛과 향은 지금도 잊지 못하겠다. 무엇보다 부러운 것은, 선술집에서 맛본 그 다양한 맛과 향의 사케, 사케들. 하나 하나에 鹽度를 표시해 두었는데, 골라 마시느라고 나를 잊기도 했다.
아! 그렇지만 돌아와서는 글 한 줄 쓰기 힘들었다. 갈 때와는 달리, 쓸 만한 내용을 발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 나라의 아마추어도 상당한 수준의 포석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책 쓸 필요성을 더욱 감소시켰다. 우리 나라 애기가들의 실력이 휴가를 길게 만드는데 한몫 단단히 했다는 것은 유쾌하다 하겠다.
시간이 지났다.
오늘이 왔다.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바를 쓰면 그것이 곧 글이고 책이 아니겠느냐고. 읽기는 독자가 하겠지, 그런 생각이 든다. 역시 편하게 살아야겠다, 는 마음에 다시 글을 쓴다. 나는 쓰고, 누군가는 읽고. 그것이 이유가 되지 않을 이유는 없겠다.
글의 수준은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이 뒤섞여 있다. 당연하다. 어려운 가운데 쉬운 점이 있고, 쉬운 가운데 어려운 원칙이 숨어 있다.
그러나 이 일기는 그냥 쓰는 글이다. 典據를 달지 않는다.
기초적인 포석 이론을 동네 산책하는 기분으로 다루고자 한다. 읽고, ‘아,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구나,’ 또는 ‘아,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면 고맙겠다.
사유의 지평을 넓힐 필요는 있다. 수십 년 바둑 둔다고 실력이 쉽게 늘지는 않는다. 공부해야만 느는 것이다. 그런데 공부? 공부란 무엇일까? 쓸모없는 글을 또 하나 남길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시작해 보겠다.
나의 반상일기에서
포석의 산책 편을
어느새 乙酉年의 4월을 눈앞에 두고 있다.
06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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