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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반상을 적극적으로 짜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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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 반상을 적극적으로 짜나가라
2012-02-29     프린트스크랩
▲ 일본 도사쿠 혼인보(1645~1702)의 초상

두칸 뜀은 권할 만한 수법이다 (1)

- 초반에, 반상을 적극적으로 짜나가라


I. 마늘모는 날일자 행마 뒤에 왔다

수법의 위계질서가 있는가.
마치 있을 것만 같았다.

저번에 그런 이야기 했을 때 - 행마는 돌 간의 간격을 넓히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그런 이이기 했을 때 가볍게 떠올랐다 사라진 생각.

그렇다면 마늘모가 등장한 다음에 날일자 행마가 등장했는가?
날일자 행마가 등장한 다음에 눈목자 행마가 등장했는가?

지금 말할 수 있는 답은 이것이다.
수법의 발전사에서 시간적 전후관계는 있다.
그러나 기준은 단순하지 않다.

예를 들어본다.


      1도 (천문학의 실험에서 도샤큐는 어떻게 두었는가)

17세기 중반 산데쓰와의 바둑에서 이리 두었다. 흑1에 대해 백4 날일자로 눌러버렸다. 이 수법은 수법의 발전사를 넘어서 포석의 발전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것인데, 그 첫째 요점은 상대의 집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이는 삭감의 등장과 맥을 함께 하는 것으로, 중세 중국에서는 저런 착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 백4로는 당장 우변 어딘가에 뛰어들어 한 판 붙어보자는 태도를 가졌을 것이다.

16세기 말인가, 혼뇨지(本能寺) 3패의 바둑에서도 저런 수법 본다.


      2도 (혼뇨지 3패의 바둑에서도 이미 눌러 제한하는 수법 있다)

가볍게 눌러 제한하는 수법. 과연 놀라운 수법이다. 저 수법이야말로 현대 바둑의 토대가 되지 않았나, 하는 추론 들게 하는데, 조금도 지나치지 않은 판단이라 본다.

그래서 나왔다.


      3도 (토혈지국에서의 마늘모)

실은 저 백2 마늘모가 역사에서는 훨씬 빨리 나왔건만, 여기 19세기 바둑을 드리는 까닭이 있다. 저 마늘모 하나로 반상이 정리가 된다. 날일자 눌림 당하는 행마를 피하는 것은 당연이 눈에 보인다.
그렇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 이미 예감하셨겠지만 - 슈사쿠 물레방아 포석의 완결점인 마늘모가 이미 그 이전에 상당히 널리 퍼져있었다는 것이다.

마늘모는 포석의 정점(頂点)을 겨냥하는 수법이었던 것이다.

말할 수 있다.
행마에서 돌의 거리를 기준으로 수법을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큰 설명이다.


II. 수법은 전국적인 안목에서 선택하고

접바둑을 다루고는 있지만, 수법의 제시에 대해서는 조심스럽다. 이제 약간 이해 할 동 말 동 한다.

이런 것은 봤다.


      4도 (두칸 뜀은 접바둑에서 권할 만하다)

백9가 초점이다. A 침입이 두려워 흑10 두어준다면 아주 좋다. 흔쾌한 국면 이끌어낼 수 있다.


      5도 (6점 접바둑에서 흑은 어깨 짚는 수법이 좋다)

어깨짚는 수법은 6점 이상의 접바둑에서 하수에게 특히 권할 만한 것인데, 여기 흑1이 그것이다. 물론 백이 백2 두어주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어깨 짚는 수법은 권할 만하다. 중앙 지향적인 수법이니까 그러하다.
중앙지향적. 이것이 하수에게도 요점이다.

사실 이리 두어서 흑이 이길 수 있는 그런 국면이 되느냐?
그건 아닐 것이다. 변수는 다양하고 백도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6도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백2도 있고 백A도 있다. 얼마든지 다양한 수법 둘 수 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변화를 꾀하지 못하는 상수는 자신의 장점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비평을 들어야 할 것이다.

6점 이상 접바둑에서 특히 상수는 두칸이나 눈목자와 같은 돌의 간격이 큰 수법을 활용해야 하는데, 실력 차이가 크다는 점에도 그 이유가 있지만 무엇보다도 수법은 전국적인 안목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바로 그 점이 중요한 근거다.

글 머리에 마늘모 이야기 했는데, 수법은 전체 국면에 큰 변화를 불러 일으킨다.
그것을 되짚으면, 전체 국면에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수법을 써야만 한다. 특히 초반에.

왜 초반일까. 접바둑에서는 - 맞바둑과 달리 - 시간이 지날수록 국면이 응고된다. 돌의 비율로만 반상의 균형을 평가해서는 아니 되는 접바둑의 독특한 속성이 있기에 초반에 흐름을 적극적으로 유도해야만 한다.

초반이라. 이 어려운 문제.
초반은 활달해야 한다. 그래서 초반의 수법은 정직하게 한칸, 마늘모, 그래서는 아니 된다.


III. 물레방아 포석은 바람직할까

그래서 하나 - 이제야 - 생각했다.
글을 써면서 몇 가지 어려운 주제, 풀지 못한 주제를 생각했었다.
그 하나가 물레방아 포석.

그리고 다음 7도의 문제.


      7도 (옛 명인들은 특히 먼저 걸쳤다)

옛 명인들은 2점이나 3점일 때 - 4점 이상에서야 언제나 걸침밖에 달리 길이 없으니까 - 먼저 백1 물어볼 때가 많았다.

왜 그런가.
17세기 중엽 이후엔 당연히 알았다. 백3 이후 흑A에는 백B 협공하려고 그랬다. 오늘날 중국식포석으로 알려진 수법. 포석. 당시 도샤쿠가 처음으로 창안하고 즐겨 쓰던 수법.

두 번째 이유가 있다.
7도 백1은 도샤쿠 이전에 나온 태도인데, 초반에 이르게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였다.

왜 그런가.
첫째는 초반에 상대의 수준을 알아야 한다.

둘째는, 돌이 적은 초반에 - 즉 백의 활동 범위가 넓은 초반에, 맞바둑에서는 서로의 활동 범위가 초반이나 중반이나 엇비슷하다 - 백에게 유리한 진영을 짜두어야 한다. 

대조되는 예를 들겠다.


      8도 (물레방아 포석은 바람직한가)

이런 의문 든 적 있을 것이다.
특히 4점에서 나타나는데, 8도에서 백의 태도는 바람직한가.

접바둑의 지침에서 상충되는 기준이 있다.

1) 반상을 세분화 하라.
2) 초반에 적극적으로 반상을 주도하라.

다음과 같은 논리에서 온 지침이다.

1) 세분화의 지침은, 불확실성을 높이는 것이 상수에게 바람직하니까, 모호하게 헝클어두라.
2) 작은 접전에서는 언제나 백이 유리한 결말을 얻는다. 그러나 그 반면에 백의 활동 반경이 접전하는 만큼 좁아든다. 돌이 반상에 놓이는 만큼 줄어든다. 그러니, 초반에 큰 변화를 유도하라. 모험하라.

과연 둘 다 그럴 듯하다.

이리 보면 꼭 상충되는 것은 아니겠다.

초반에 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하라.
그 후에 세분화 - 그 수준과 내용을 결정하라.

8도는 백에게 바람직하지 않다.
왜냐. 세분화시킨 듯하지만 반상을 결정지었다. 반상을 결정한 죄값이 매우 크다.


      9도 (4점에서 가설적인 질문과 답)

9도는 이 글이 한 번쯤 두어보고 싶은 구도인데, 이 경우 과연 A가 필요할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반상을 넓히는 초반의 포석 구도가 무엇보다 앞서는 지침인 것이다.
그건 4점이든 5점이든 6점이든 다를 바 없는 지침으로 여겨진다.


IV. 포석의 관념이 수법을 결정하니까

강조하고픈 것을 먼저 말씀 드리면
초반의 태도가 초반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10도 (17세기 도세끼의 초반구상)

17세기 명인 도세끼(中村道碩)의 초반 구상이다.

물론 이 당시에는 귀보다 변을 중시한 기풍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건 고대 중국에서부터 근대 중국, 그리고 중세 일본까지 변함없었던 태도였다.

앞서 보았던 3도의 마늘모, 그 수법에 의해 귀의 정돈이 전체 국세를 내려다본다는, 그 확고한 인식이 18세기 말에 굳어지기 전에는 일본에서도 강력한 흐름이었다. 

그런 점을 고려에 넣는다 하더라도, 저 10도에서 볼 수 있는 바 활력에 가득 찬 진행은 가히 크게 유쾌한 흐름이다. 원시적인 생명력이 생동하는 인상 받는다.

참, 도세끼는 “수나누기”라고 하는 혁명적인 사고방식을 반상에 도입한 인물이라 한다. 참으로 큰 업적. 아쉽게도 저 양반 바둑을 세밀히 검토한 적이 없었는데, 왜 그러지 못했을까. 지금 아쉬움을 넘어서서 후회마저 약간 인다.
지나간 때는 돌이킬 수 없는 것.


변을 중시한다는 그 사고는, 힘바둑, 즉 전쟁모형을 전제로 사전배석제를 중국이 선택했을 때부터 우리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 인간에게 고유한 것은 아닌데, 사회의 지배적 질서가 반상에 투사되었을 때, 얼마나 우리가 그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보여주는 예이다.

전쟁에서 두 진영이 싸운다. 어디서?
서로가 그 어느 한 지점으로 수렴(收斂)한다. 여러 가지 정보를 교환하고 얻어내면서.

반상에서 그 지점은 변이다. 우상귀 백돌이 우하귀 흑돌과 만나는 지점은 우변.
그들이 만나면 돌이 두칸 벌림해서 진영을 갖춘다.
그런 식이다.



      11도 (18세기 중엽 중국 국수들의 포석수준)

당나라 때의 바둑과 차이가 없다. 벌림도 없이 싸울 때도 많았지만, 그러나 포석을 한다면 이런 관념과 이 정도의 수준이 천년 이상 중국을 지배했다.



      12도 (1647년 백: 本因坊 算悅 흑: 安井算知)

일본은 사전배석제를 어느 때인가 - 이건 不明하다 - 벗어던졌지만 - 이를 볼 때 중국의 사전배석제가 문화적인 선택임을 짐작할 수 있다 - 그러나 사전배석제에 남아있던 관념을 떨쳐버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12도에서 우상귀 마늘모는, 앞서 3도의 마늘모와는 내용이 다른데, 상변에 두칸 벌림 흑돌이 그 차이를 잘 대변한다. 3도에서 마늘모는 우변 백돌 한점에 대한 응원도 하는 수법이다. 12도에서는 상변 흑이 약간 중복이고, 3도에서는 백이 폭 넓고 활달하다. 

초반은 의식적이어야 한다.
만약 자신에게 잘 맞는 반상을 이끌어내려는 의지가 있다면.

초반의 변화는 의식적으로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만 한다.
上手는 그 점을 스스로 자각해야만 한다.

그것이 접바둑에서 반상을 어떻게 넓혀가는가, 그 문제에 대한 가장 폭넓은 답이겠다.

답을 드린다기보다
기세, 초반의 변화를 향한 기세, 그런 초반을 하나 감상하는 것으로 오늘은 이만 하겠다. 감사!


      13도 (1670년. 백: 本因坊 道策 흑: 菊川友碩)

대단히 적극적이고 활기에 가득 찬 백의 운석이다. 물론 흑이 잘 못 둔 것이 적지 않으나, 굳이 그런 거 아니 밝혀도 좋겠다. 참고로 좌하귀 흑12는 위축된 수가 아니다. 저리 두어도 좋다. 오청원 선생도 말씀했다. “흑12는 나쁘지 않다.”

중앙 지향. 변화. 과감.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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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公望70 |  2013-02-21 오후 2:47: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바둑의 초반구상에 있어, 변의 실리를 위주로한 수평구조냐? 중앙의 주도권 장악을 위한 수직구도냐?를 고려하여 한판의 바둑을 둔다는 마음가짐. 이는 바둑의 안목을 넓히는 또하나의 개안이겠지요. 훌륭합니다. 바둑의 이쁜 화두 하나 던져주시어. 문박사님 일가 이루시길....  
강릉P |  2017-06-18 오후 7:09: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 물레방아 포석은 접바둑에서 한번쯤은 꼭 상대에거 써보는
수법인데 역시..더 성적이 안좋더라구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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