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바둑이란?

너무 많은 생각들이 담겨있는 또 다른 세상이다.

나름 비유를 하자면 마치 하늘의 구름과도 같다.

멀리서 보기엔 조용하며, 정지해 있는 듯 보이지만 어느 틈엔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있다.

어느 예술가도 흉내 낼 수 없는 장대한 스케일 속에 때로는 아름답고, 때로는 험악하며, 때로는 온순한, 수만 가지의 표정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 가장 큰 공통점은 움직여야 본연(本然)의 가치를 더욱 발휘한다는 것이다.

항상 똑같은 모습이거나 한정적인 경우의 수만 존재한다면 바둑이나 구름의 가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닐 것이다.

정해지지 않은 이러한 움직임이 있기에 사람들이 감탄하며, 즐거워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바둑에는 정석(定石)이란 게 있고 구름에도 자연의 섭리(攝理)란 게 있다.

하지만, 그것들은 수만 번의 경험에서 비롯된 가장 상식적이고 이상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반복된 원리나 방식일 뿐 꼭 그렇게 움직이고 행해야 만하는 정해진 규칙은 없다고 본다.

그래서 예측하지 못하는 대자연의 위대함에 무릎을 꿇게 되며, 마지막 한 수에 승부가 바뀌게 된다. 이러한 변화무쌍함(變化無雙)과 예측하기 힘든 변수(變數)들이 둘의 가장 큰 매력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또 하나, 바둑이 주는 즐거움은 상대 대국자와의 치열한 반상(盤上)의 싸움에 있다. 유희적 즐거움을 떠난 판단력의 싸움이다.

수십 수의 유리한 판단으로 형세를 유리하게 이끌고도 한수의 잘못된 판단으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를 맞게 된다.

바둑은 집중과 몰입 속에서 한 수 한 수 지속적인 판단을 요구하게 만든다.

나는 조심스럽게 놓는 한 수의 현명한 판단이 세상을 보는 눈을 만들어 준다고 생각한다. 한 수 한 수 놓여지는 최선책이 눈을 더 크게 떠서 더 넓게 보이게 하고, 냉철한 평정심을 통해 명석한 지략(智略)을 펼치게 만들며,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반면(盤面)운영의 전술이 당당한 기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두지는 못하지만 평소 바둑을 둘 때면 바둑이 세상 살아가는 이치(理致)와 맞물린다는 생각을 많이 해본다. 알면서도 당하고, 보고 있으면서도 보이지 않고, 얻고서도 더 큰걸 주게 되는... 마치 인생살이를 반상위에 보여주듯 묘사하고 있다.

깨우침에 깨우침을 주는 광활한 바둑세계의 이치는 알면 알수록 더욱 어렵게만 느껴진다. (천지음양동정(天地陰陽動靜))

무심코 바둑돌을 놓을 줄만 아는 무식한 나는, 이제 더 넓은 수의 세계를 깨우치고 접해보고 싶어진다. 단지 기력을 좋게 만드는 것이 아닌, 눈으로 보여지는 반상위의 모습 속에 내가 보지 못하는 세계를 볼 수 있는 눈을 키우기 위함이다.

이러한 내가 이 지면을 통해 누구를 가르치거나 깨우침을 줄 실력도 아니거니와 그럴 생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내가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인 만화를 가지고 공부하는 자세로 바둑과 관련한 지식을 나누며 나 또한 배우며 엮어가려 한다.

주위에서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무심코 흘려버리는 (바둑과 연관된)격언과 고사성어 등을 만화와 연관 지어 가볍게 다시 한번 되새겨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다.

바둑에서 자충수(自充手)라는 말이 있다. 스스로 행한 행동이 나중에는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되어 실속이 없다는 뜻이다.

바둑을 둘 때 구경하는 사람들이 수를 더 잘 보는 경우가 있듯이 이 만화에서는 자만심에 사로잡힌 자충도사(自充道士)라는 캐릭터를 통해 제3자가 바라보는 세계를 제공하여, 자기 자신들이 쉽게 느끼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만과 편견을 다양한 에피소드를 통해 그려보려 한다.

적어도 내 자신이 자충수를 두고도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충도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