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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회/ 유풍기고(豊基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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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회/ 유풍기고(豊基考)
2010-08-03 조회 5594    프린트스크랩

 

우리는 그동안 구한말의 바둑사를 거론하면서 김만수, 백남규, 노사초를 그 시대의 최고라 말해 왔다. 그러나 노사초를 제외한 김만수나 백남규의 생몰연대는 물론 출신지도 특정하지 못한 허방(?)을 디딤돌 삼아 그 시대의 바둑을 말하는 반성도 있었다. 백남규(白南圭)는 충청도 부여 또는 당진 사람으로 지방 현감을 지냈다는 등 실록 없이 구전(?)으로만 전해오는 사람이나, 그가 한시대를 풍미한 바둑고수임은 '독립신문'이 전할 정도로 분명하다. 

1899년 11월2일자 독립신문은 눈길을 끄는 기사 한 꼭지가 있다. 양면이 전부인 지면에, 사진도 쓰지 못하던 단조로운 지면에 [양국국수]라는 타이틀로 조-일간의 바둑 최고수의 만남을 보도하고 있다. 독립신문은 서재필이 창간한 이 땅의 최초의 순한글 신문으로 대한제국의 탄생과 함께 주목받던 매체다.


양국국수.
일본 응금준일 씨는 바둑 잘 두는 국수로 유명한데 대한에 와 국수를 겨루고져 한국국수 백남규와 진고개 피성관에서 10월29일 밤에 대국을 했고 백씨도 잘 두더라. -독립신문 1899년 11월2일.


2면에 불과한 신문이고 아직 사진도 쓰지 않는 당시의 처지에서 보면 이 기사의 비중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기사는 일본의 국수가 방한하여 한국 국수와 대국을 했고 장소와 날짜를 특정하고 있다. 한일간의 바둑 쟁패기에 나선 기사는 백남규와 응금준일이고 승패의 결과는 보도하지 않고 있다.

응금준일은 가리가네 준이찌(膺金準一)로 일본 현대바둑에서 세고에 겐샤쿠와 비교되는 인물이다. 가리가네 준이찌는 이미 15세에 '본인방 슈에이'가 사상회(四象會)를 만들어 방원사와 맞설 때 사상회에 가담했고 훗날 세고에 겐샤쿠 등과 함께  일본기원을 창설한 간단치 않은 인물이다.

이날의 두 사람이 대국이 일본 잡지에 실려 오늘날에 전해진 바로 그 기보다. 백남규가 당시 조선 제일의 고수였다는 것은 이런 활동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 백남규보다 두점이 강한 조선인이 있었다는 기록을 복수의 일본 프로기사가 전한다.


다카베 도헤이(高部道平, 당시 4단)는 1908년 중국과 조선을 여행하며 양국 고수들과 바둑을 둔다. 그는 중국에서 당시 중국바둑의 사인방으로 불리던 '장락실' '진사준' '왕인향' '왕은봉'을 모두 두점으로 꺾으며 기염을 토한다. 다카베 도헤이는 내친걸음에 조선의 고수들을 불러낸다. 경성에서 그의 상대로 나선 사람이 '유풍기'다. 장소는 '남산구락부' 특별대국실이었다. 유풍기는 당당하게도 선으로 그와 대국을 한다. 중국의 사인방을 두점으로 침몰시킨 다카베 도헤이에게 선으로 맞선 유풍기는 상대를 긴장시킨다.

이 대국을 주선한 경성거류민단의 유력자 '기쿠치 겐조(菊池謙)'는 유풍기가 백남규보다 두점이 강하다 했고 '다카베 도헤이'도 동료기사 '가리가네 준이찌'를 통해 유풍기의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대국이 성사 된다. 결과는 다카베 도헤이'의 승리로 끝났다. 이 대국으로 그는 경성에서 일본인들의 영웅이 된다. 다카베 도헤이는 유풍기와의 대국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고 1912년 일본의 '기계신보'에  기고를 했다. '유풍기에게 지면 어떡하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 말이다. 이 말은 유풍기의 기력이 그만큼 출중했음을 말해준다.


유풍기는 '이오모토 가오루(岩本薰)'도 한번 더 언급했다. 그러나 이후 유풍기는 한국바둑사에서 자취를 감추어 버린다. 자취뿐만 아니라 불가사의할 정도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을 정도로 철저하게 잊혀진다. 오직 '다카베 도헤이'의 기록을 토대로 몇몇 연구자의 주변에서 맴돌 뿐이었다. 유풍기의 성씨가 유(兪)와 유(愈)로 혼동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사람을 지남규가 기적적으로 거론하고 있다. 성도 없이 이름만 풍기(豊基)로 전해준다.


우리는 무엇인가를 많이 알고 있는 듯해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오늘 유풍기가 그걸 다시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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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바 |  2010-08-03 오전 1:40:09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한 시대의 최고수를 이렇게 뿐이 알 수 없는 우리 역사의 미스테리란.... 진정한 강자는 말없이 사라진다는 말인가  
하나바 |  2010-08-03 오전 2:39: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棧道 |  2010-08-03 오전 7:19: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1박2일 제천으로 다녀옵니다.
바둑인들 삼백명정도 오셨더군요. 즐거웠습니다.  
棧道 그런 축제의 자리에 폭염속에 김름값 버리고 와 주사를 부려 행사를 망치는 사람 꼭 있습니다. 이런분 어떤분입니까^^;;
박타령 "무릎 꿇어!" ㅎㅎㅎ.
棧道 보셨지요^^;; 저도ㅎㅎ
협객行 |  2010-08-03 오후 8:13: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유풍기고를 읽노라니 매천 황현이 친구의 무덤을 지나며 읊었던 시 한 줄이 생각납니다.
"홀로 무덤안에 있다고 너무 외로워하지 말게. 살아있을 때도 혼자서 고독하지 않았던가."
 
바로보인 |  2010-08-03 오후 10:02:1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대한제국에뛰어난조선인이있다면일본인이가만있었겠는가?
역사를왜곡하고식민지사관을심어존선인을종으로부려먹으려고하는간악한일본인인데
지금도일본은반만남은한국마져집어삼키려고미국과눈을부릅뜨고노리고있다쯔끼야마아끼히로잔당들이그들이다  
처녀보살 다 좋은데.... 떼어 쓰셔.
동묘땅꼬마 참한심하이,, 이순신을 누가 죽엿나 왜군이 죽엿나 선조와 그패거리들이 죽엿지...지금도 그롷쿠 우에 지잘못읗 남에게 뒤집어 씌우나,,,한심한 사람아,,,와 사노???
박타령 |  2010-08-04 오후 6:04: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왜 일본 고유명사를 힌국어 발음을 버리고 일본어 발음으로 적는지 이해할 수 없다. 秀策, 道策, 名人, 本因方 모두 일본 고유명사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2천년간 모두 한국어 발음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아니 왜 이제 와서 우리말 한국어 발음을 버리고 남의 말 일본어 발음을 갖다가 써야 하는가? 언제부터 대한민국이 일본의 식민지가 다시 되었는가?

李靑 작가 정도 되면 이런 걸 알만 한데 왜 이러는지 참으로 異常하다  
동묘땅꼬마 북경을 베이징라고 하면 앙데긋네....로스엔젤리스를 나성이라 해야 긋나? 에라이...밥이 아갑다... 꺼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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