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애인 국수를 보고 싶은 소망 - 이완수 편
|
|
|
|
|
"공기의 압력은 비둘기의 비행을 어렵게 하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예술의 창조나 인간 불굴의 삶이나 그 어떤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저항 덕분에 완성되는 것이다. 칸트의 이 말은 육십 평생 나를 지탱해준 금언(金言)이다.
내가 나서는 문밖의 모든 길은 휠체어로 열어야 할 길이지만 반상(盤上)의 길에는 휠체어가 필요없다. 바둑은 그래서 좋았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은 어디에도 갈 수 있었다. 적어도 바둑판 위에서만은.
바둑은 왜정시대 때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당시 2급 가량 두시던 아버지께서 친구분들과 가끔 어울려 두시는 것을 보니 무척 재미있을 것 같았다. 용기를 내어 아버지를 졸랐다. 9점을 깔고 덤 30집을 받고서도 한 마리도 못 살았으니 아무리 기특한 자식이지만 얼마나 재미없으셨겠는가. 아버지의 환심을 사려고 주일만 되면 구두를 닦는다 안마를 해드린다 아양을 떤 덕분으로 어떤 때는 잘하면 1주일에 두판 정도 배울 수 있었다. 일본 바둑잡지도 구독했다. 9단들의 바둑을 무조건 외워댔더니 나중에 약간 응용력이 생기면서 깨치는 바가 있었다.
그렇게 4∼5년이 지나자 아버지와 맞바둑이 되었다. 70년대 한국기원이 종로통 관철동에 있을 때 친구의 시간을 뺏다시피하여 아마추어 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다. 한국기원 5층에서 대회가 열려기 때문에 계단을 오르내리려면 친구의 등이 필요했다. 지금의 아마유단자 비슷한 그날 대회에서 난 밤 11시까지 둬 우승했다. 쉬는 시간이 있었으나 1층까지 내려오기가 미안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여 우유 한 통으로 때웠으나 대신 초단 면장을 손에 쥐었다. 이듬해엔 준우승을 차지하여 2단을 획득했고 3단은 월간「바둑」을 통해 승단했다. 우리집엔 그림책은 별로 없고 바둑책 천지다. 누가 오면 직업이 화가가 아니라 전문기사냐고 물을 정도이니….
하느님이 우리에게 절망의 아픔을 주는 까닭
뭔가 한번 하면 이렇게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다. 그 덕분에 신체의 불편함과 재주의 미욱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 바둑만큼이나 음악도 좋아했는데, 여기엔 참으로 아픈 기억이 있다.
처음엔 피아노를 배웠었다. 그러나 피아노는 페달을 밟아야 하는데…, 나는 다리를 쓸 수가 없지 않은가. 그 다음날로 바이올린으로 돌아섰다. 17세때였다. 손가락이 마비되고 졸도하도록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서울시향의 세컨 바이올린까지 할 수 있는 심사까지 받았고 실력이 인정되었으나 생각지도 않은 무대활동 문
제가 불거졌다.
당시만 해도 아스팔트 길이 별로 없어 휠체어가 다니기에 불편했고 또 무대 위로 오르내리려면 휠체어를 덜렁 들어야 했으나 그 때의 휠체어는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장정 둘이 쩔쩔 맬 정도로 무게가 있었다. 동양화는 그 길로 시작했다. 음악처럼 그림에는 신체장애로 인한 장애가 없을 줄 알았다.
화선지 100장을 갖다놓고 하룻밤새 다 그려야 직성이 풀렸다. 손가락이 문들어지도록 파고 또 파고 들었다. 월전 장수성 선생도 "천재났다"고 놀라워하셨따. 동물이 좋아 동물을 택했다. 동물원이 있는 창경워(창경궁)에 자주 가야 했는데 그때는 창경원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끼 때문에 휠체어 탄 우리같은 사람은 갈 엄두도 낼 수 없던 시절이었다.
할 수 없이 수위 아저씨들게 담뱃값이나 건네주고 새벽 일찍 찾아가기도 했고 동물우리 청소부에게 떨어진 동물들의 털을 집어달라는 부탁까지 했으니 아마 별 이상한 놈으로 필시 생각했을 게다.
더 큰 고역은 다른 화가들이 서서 관찰할 수 있는 피사체를 난 화실 사다리를 서커스하듯이 층층히 놓고 올라가 귀에 입에 붓을 걸고 작업을 해야 한다는 점. 그렇게 6∼9개월 작업하여 국전에 출품하고 나면 상당기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지금 웬만한 서울의 종합병원에 가면 내 차트가 없는 병원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딛고 올라선 미술의 세계였건만 청년시절의 음악처럼 이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 절필할 수밖에 없는 사태를 맞았다. 10여년전 교통사고로 그림에 생명줄이나 다름없는 오른손마저 다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은 반드시 하나의 절망 끝에 새로운 희망을 주신다. 어둠 끝자락에 터오르는 새벽 여명의 가치를 느끼게 하기 위해. 지금은 정립회관에 여생을 바치고 있으니 이 어찌 굴곡진 삶이라 한숨지을 수 있으랴.
요즘 장애인은 스포츠며 레저며 정상인이 하는 모든 것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장애인끼리의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바둑만큼은 정상인이 편견없이 장애인과 더불어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라 생각한다. 지체장애라하여 생각까지 장애는 아닌 것이다. 올해 정립회관에도 기우회가 생겼다. 장애아들이 체계적인 바둑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여러 각도에서 지원해 볼 생각이다. 한국기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요즘은 장애인 국수의 탄생을 보는게 내 또 하나의 소망이 되어버렸다.
|
|
|
|
|
|
|
|
|
|
|
|
|
|
|
| ┃꼬릿글 쓰기 |
|
 오돌도기 |
｜ 2006-09-11 오후 11:02:00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놀라운 집념과 인간승리를 보게되어 반갑습니다.
|
|
|
|
|
|
.gif){kind=lo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