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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뭉크의 절규처럼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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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뭉크의 절규처럼 (8)
2013-11-08 조회 5212    프린트스크랩
▲ 경찰 이야기를 다룬 영화, [미래경찰] 스틸컷.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하다. 꼬리쪽 두점을끊자고 이쪽 저쪽에서 들여다봐도 흑이 이으면 아무 수가 나지 않는다. 들여다보는 게 안되면 끊는 수밖에없다. 꼬리쪽을 끊을 때 2선에서만 단수쳐주면 수가 난다. 백이 1선으로 내려갈 때 꼬리쪽에서는 자충이 돼서 단수를 치지 못한다. 반대쪽에서 단수치면 백이 1선으로 빠질 때 상변의 흑 4점을 단수치면 역시 자충이 되어 잇지를 못한다. 4점을 뜯어먹고사는 생각은 백의 달콤한 생각이다. 흑은 2선에서 단수치는게 아니라 1선에서 단수를 친다. 그 다음이 없다. 백이 두점으로 늘려도 별 수가 없다. 흑은 여전히 꼬리쪽 두집과백 두점을 잡은 상태이기 때문에 살아있다. 분명 여기 어디에서 수가 있을 텐데 아무리 봐도 수가 안보인다.

 

“브레이크!”

날카롭게 외치는 지현의 목소리에 번뜩 정신이 든 호철의 눈앞에 빨간신호에 정지돼 있는아우디의 우아한 엉덩이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보인다. 다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자 다 낡아빠진 지프차가비명을 지르며 멈춰 섰다. 아우디의 우아한 엉덩이와 종이 한장 차이로 멈췄다. 호철은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쉰다.

 

“도대체 뭘 생각하는 거야? 운전하면서.”


“아무 생각도 안했어.”

“어제부터 자기 이상해. 대체 무슨 생각을하길래 그렇게 얼빠진 사람 같아? 몸만 여기 있고 정신은 딴데 가있는 사람이잖아. 뭐야? 무슨 생각이야? 혹시전에 사귀던 애인이라도 나타난 거야? 애기를 안고서?”

속사포처럼 쏘아붙이는 지현의 말에 입을 닫는 호철이다. 말대꾸를 하면 말고문만 더 길어질 뿐이다.

 

“또 묵비권이군. 하여간 묵비권의 정당성을누가 처음으로 만들었는지 몰라.”

 

“미국 연방 대법원.”

 

“도대체 유머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다니까. 그정도는 나도 알고 있거든. 어네스트 미란다라는 놈이 살인을 저질렀는데 체포돼 변호사도 없이 강제 취조로진술을 받아냈는데 연방 대법원에서 피의자의 최소 권리인 변호사 선임과 묵비권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죄선고 했어. 그때 생긴 게 미란다 법칙이라는 거고. 어때? 충분해?”

 

“몇년도?”

 

“그게언제더라? 1962년인가?”

 

1966.”

 

“엘리트는 뭐가 달라도 다르군. 그런 쓸데없는것까지 기억하고 있다니. 그나저나...”

 

지현은 창밖을 보면서 말을 이었다.

 

“역시 청춘은 아름답군.”

 

지프차가 대학교로 들어서자 젊은이의 활기가 눈으로 보였다.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웃고 떠들며 싱그러운 젊음을 만끽하고 있었다. K대학은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정으로 꼽힌다. 고딕풍의 아름다운 교정과 녹색의 정원수와 꽃들이 한폭의그림 같았다. 그 아름다움에 넋을 잃은 호철은 바로 K대학에지원서를 넣었다. 엊그제 일 같은데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 되어버렸다.

 

 

 

“이게 누구야. 강호철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새치가 희끗희끗한 교수가 호철을 거의 끌어안을 듯이 반긴다.

 

“이게 얼마만이야.”

 

2년전인가, 3년전인가, 동문회 때 보고 처음이지.”

 

“그래. 그래. 암튼 자네 소식은 듣고 있었어. 경찰로 제법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그런 유언비어는 누가 퍼트리는 거야. 이나이에 겨우 경장으로 비실대고 있는데. 자네야말로 모교 교수로 그 이름이 찬란하게 동문회에서 빛나고있는 것 같던데.”

 

“핫하하하...찬란까지야.”

 

한바탕 너털웃음을 웃던 교수는 지현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 뷰티풀하고 엘레강스한 숙녀님은 누구신가.혹시 우리 강호철군을 총각에서 벗어나게 해주실 여신님...”

 

“이 친구 무슨 소리를...”

 

손사래를 치며 부인하는 호철의 말을 지현이 자른다.

 

“맞아요. 어때요? 어울리나요?”

 

어느새 호철에게 팔짱을 끼는 지현이다.

 

“퍼펙트합니다. 최고의 커플이어요.”

 

“임교수. 오해하지마. 우리 그런 사이 아냐. 민형사. 왜이래. 이거 놔.”

 

당황해서 부인하는 호철을 보고 교수와 지현은 교수실이 떠나가도록 웃는다.

 

“민형사시라고요? 이친구가 원래 이래요. 유머라는 게 없어요.”

 

“맞아요. 진짜 곰 같다니까요.”

 

“이 친구야. 경찰업무로 날 만나러 온다는사람이 아무려면 애인을 데리고 왔겠어? 이 숙녀분이 경찰동료라는 건 나도 눈치로 다 알아. 그냥 농담한 걸 가지고 정색하기는...”

 

“농담 그만하고 염경수란 학생은 어떻게 됐어.”

 

두 사람한테 어릿광대가 된 것 같은 호철은 잔뜩 부어 터진 얼굴로 말했다.

 

“아내방으로 올 거야. 근데 무슨 일이야? 설마 나쁜 일은 아니겠지.”

 

“그저 참고조사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때 노크소리가 들렸다.

 

“들어와요.”

 

교수의 말에 문이 열리고 키가 크고 건장한 학생이 들어왔다.

 

“교수님. 부르셨어요.”

 

교수실로 들어온 학생은 교수한테 인사를 하면서도 낯선 두 사람한테 불안한 눈길을 주고있었다. 교수실에 불려온 것도 무슨 일인지 불안한데 저 사람들은 도대체 뭔가 싶다.

 

“어서와. 경수야.”

 

“무슨 일이신지..”

 

“이 분들이 너한테 뭘 물어보고 싶으시다는데...”

 

“누구신지..”

 

“경찰이셔.”

 

“경찰이요?”

 

경찰이란 말에 눈이 튀어나올 만큼 커지는 학생이다.

 

“그렇다고 그렇게 놀랄 건 없고무슨 사건때문에 참고조사를 하겠다는 거야. 너 죄지은 거 있어?”

 

“없습니다. 진짭니다. 교수님.”

 

교수의 말에 화들짝 놀란 학생이 손을 흔들면서 부인한다.

 

“그래. 죄지은 거 없는데 떨 거 없어. 그냥 묻는 말에 대답이나 잘하면 돼. 알겠지?”

 

“네.”

 

여전히 불안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는 학생이다.

 

“그럼 난 나가 볼 테니까 편하게 얘기들 해.”

 

교수가 나가자 호철이 말을 이었다.

 

“난 강호철이야. 이쪽은 민지현. 교수님 말씀처럼 경찰이고사건 수사중에 참고할 게 있어서 학생을찾아왔어.”

 

“무슨 사건이요?”

 

“일단 앉지.”

 

소파에 앉은 학생은 불안감으로 커다란 덩치가 잔뜩 위축돼 보였다. 염경수라는 학생은 민지현으로서도 처음 본다. 홍제천살인사건 탐문조사때 염경수는 조사 대상에서 빠져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염경수는 피살자인 윤진우의 고등학교 동급생이었다. 윤진우와 염경수는 사건 당시부터 이미 3년전에 인과관계가 절단된상태였다. 탐문조사 대상에 오르지 않은 건 당연했다. 그런데이번에 호철이 재탐문 조사하는 과정에서 윤진우가 사건 당시까지 만나온 고등학교 친구한테 우연히 염경수란 학생의 이름이 거론됐다. 아주 작은 거지만 그걸 놓칠 호철이 아니다. 염경수는 마침 호철의동문인 임교수의 제자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학생을 찾아온 이유는…”

 

호철은 습관처럼 수첩과 볼펜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윤진우라고 알고 있지?”

 

“진우요?”

 

윤진우라는 이름이 나오자 화들짝 놀라는 학생이다.

 

“왜 그렇게 놀라지?”

 

“아...아닙니다.”

 

“윤진우가 죽은 건 알고 있지?”

 

“네. 신문을 보고 알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

 

호철은 뭔가를 찾으려는 듯 수첩을 뒤적이고 나서 말을 이었다. 지현은 호철의 그런 동작을 유심히 보았다. 취조를 할 때마다 호철은수첩을 뒤적였다. 그렇다고 딱히 뭘 찾는 것도 아니다. 단지다음 말을 하기 위해서 뜸을 들이는 행동이다. 그 뜸을 들이는 것이 취조를 당하는 사람한테 큰 압박감을주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수첩에 뭐가 써있는지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섣불리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만드는역할까지 한다. 생긴 건 곰 같은데 머리 쓰는 건 여우 이상이다.

 

2학년때 윤진우하고 같은 반이었지.”

 

“네.”

 

“윤진우하고는 어땠나?”

 

“무슨 말씀이신지...”

 

“많이 괴롭혔지? 윤진우가...”

 

호철의 말에 무겁게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이다. 기억하기도싫다는 표정이었다.

 

“때리고 돈도 뺏고…”

 

“네.”

 

“자전거도 뺏겼다고 하던데...”

 

“자전거는 절대 안된다고 버텼어요. 아버지가생일선물로 사준 거였어요.”

 

“그런데?”

 

“일주일을 못버텼어요. 쉬는 시간마다 괴롭혔죠. 쉬는 시간이 두려울 정도였어요. 결국 자전거에 써있는 내 이름을지우고 그 새끼한테 넘겼어요. 그 자전거는...”

 

학생은 분노를 억누르는 얼굴로 말을 이었다.

 

“일주일 만에 학교 쓰레기장에 버려졌어요. 다부서진 채로요. 진우 그놈이 그런 놈이었어요. 누군가에게소중한 건 눈뜨고 못 봤어요. 자기한테 필요없는 거라도 누가 소중하게 간직하면 그걸 뺏어서 부셔버려야직성이 풀리는 놈이었죠.”

 

“그랬군.”

 

“아마 그놈이 퇴학당하지 않았다면 저도 어떻게 됐는지 몰라요.”

 

“무슨 뜻이지?”

“진우 그놈은 1학기때 퇴학당했어요. 1학기를 다니는 데도 돌아버릴 지경인데 1년을 같은 반이라면 어떻겠어요. 아마 그놈을 죽여버렸을 거여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진짜 돌아버릴테니까요. 사실 그런 애도 있었어요.”

 

“그런 애라니?”

 

순간 호철의 눈이 빛났다.

 

 “진우 그놈 때문에 돌은 놈이요.”

 

“미쳤다고?”

 

“진짜 미친 건 아니어요. 뭐라고 하던데..., 맞아요. 피해망상증이요. 1학년때부터 진우 그놈하고 같은 반이었던 녀석이었는데 피해망상증인가 뭐로 학교를 그만둔 녀석이 있어요.”

 

“이름이 뭐지?”

 

“박동신입니다.”

 

“박동신.”

 

 

 

박동신을 찾는 건 쉬웠다. 고등학교 학적부주소 그대로 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죠?”

 

아파트 문을 연 여자는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40대초반으로 보이는 여자는 외출을 하려는 듯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었다.

 

“별일 아닙니다. 윤진우 아시지요?”

 

“윤진우요? 그 개새끼를 내가 모를 리있겠어요? 우리 아들 인생 망친 새끼가 그 새끼여요. 한번보세요. 우리 아들 꼴이 어떤지. 하루종일 방구석에 처박혀서어우...내가 복창이 터져서.”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 윤진우 사건 때문에아드님한테 물어볼 말이 있어서요.”

 

“윤진우 죽인 범인 아직 안 잡혔죠? 솔직히말해서 난 범인이 안 잡히길 바라요. 누군지 모르지만 아주 훌륭한 일을 했어요. 그런 사람은 상을 줘야한다고 봐요. 상을. 나라에서 못한 걸 그 사람이 했잖아요. 그 새끼가 살아있다고 해봐요. 얼마나 못된 짓을 할지. 그 새끼는 백번 죽어도 싼놈이라구요.”

 

“네네알고 있습니다만...일단 동신군을 만나서...”

 

“알았어요. 잠깐 기다려봐요.”

 

여자는 성큼성큼 방으로 가더니 방문을 두들겼다. 아마안으로 문이 잠긴 것 같았다.

 

“동신아. 문 좀 열어봐. 누가 널 찾아왔다. 동신아.”

 

여자가 문을 부술 듯이 두들기면서 몇번 소리치자 그제야 문이 빼꼼이 열리고 깡마른남자가 얼굴을 내민다. 해골 같은 얼굴에 안경을 걸친 남자는 평생 씻지 않은 듯 괘재재한 얼굴에 머리는봉두난발로 뻗어있었다.

 

“누구요?”

 

“저기 저분들. 경찰이란다.”

 

“경찰이요?”

 

“윤진우 그 새끼 사건 때문에 찾아왔단다. 뭔지얘기 좀 해봐.”

 

여자의 말에 남자는 여전히 방문을 빼꼼이 열고 얼굴만 내민 채 호철과 지현을 물끄러미바라보았다.

 

“들어가서 얘기해보세요. 아마 밖으로는안나올 거여요. 전 약속이 있어서 나가볼 테니까 볼일 보고 가세요.”

 

여자는 할말만 다하고 휭하니 현관쪽으로 몸을 돌렸다.엄마로서의 개념이 전혀 없는 여자였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짧은 미니스커트에 짙은 화장을하고 외출하는 여자가 어떤 건지는 보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

 

“좀 들어가도 될까?”

 

호철의 말에 남자는 말없이 몸을 비켜서는 걸로 들어오라는 표시를 한다.

 

두꺼운 커튼을 친 어두컴컴한 방안은 컴퓨터 모니터 불빛으로 겨우 사람 윤곽을 알아볼수 있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방안은 쓰레기 하치장을 방불케 할 만큼 어질러져 있었다. 남자는 흔히 말하는 폐인이었다.

 

“고등학교때 윤진우하고 같은 반이었지?”

 

호철이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말을 했다. 모니터에는채팅방이 열려 있었다.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친구들 증언에 의하면...”

 

호철은 역시 수첩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어둠속에서 수첩이 보일 리도 없겠지만.

 

“윤진우한테 괴롭힘을 많이 당했다고 하던데…”

 

“그랬어요.”

 

남자는 마치 남의 얘기를 하듯 무덤덤하게 대답을 했다.

 

“어떻게 괴롭혔지?”

 

“때렸죠.”

 

“그리고?”

 

“돈도 뺏었고요.”

 

“또?”

 

“자기가 싼 오줌을 먹이기도 했어요. 담배불로지지기도 하고요. 또 뭐더라봉투를 얼굴에 뒤집어 씌웠어요. 숨이 거의 막히면 봉투를 벗기고 또 뒤집어 씌우고내가 숨이 막혀서헐떡대면 좋다고 웃었어요. 그리고…”

 

다시 기억을 더듬거리는 남자의 생각을 호철이 막았다.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 사진 좀 볼까.”

 

호철이 사진 한장을 내밀었다. 그것을 오른손으로받는 남자다. 오른손잡이다. 사진을 본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누구지?”

 

“윤진우.”

 

“죽이고 싶었지.”

 

“난 안 죽였어요.”

 

“알아. 단지 심정을 묻는 거야. 죽이고 싶었지?”

 

“네. 할 수만 있다면 죽이고 싶었어요. 갈갈이 찢어서.”

 

“그 심정을...”

 

사진을 돌려받은 호철이 말을 이었다.

 

“누구한테 말했지?”

 

“아무한테 말 안했어요. 난 밖에 안나가요.”

 

“그래. 직접 말을 하지 않았어. 하지만 다른 방법이 있겠지.”

 

호철은 컴퓨터 모니터를 힐끗 보았다. 채팅방의상대가 연신빨간모자를 부르고 있었다. 남자의 닉네임이빨간모자인모양이다. 채팅 중에 남자가 대답이 없자 찾는 것이다.

 

“저거 말이야.”

 

호철이 모니터를 눈길로 가르쳤다.

 

“아아니어요. 안했어요. 아무한테도 말 안했어요.”

 

남자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렸다.

 

“컴퓨터를 가져 가서 조사해볼까? 설마그걸 바라지는 않겠지? 그렇게 된다면 그동안 동신군이 방에 틀어박혀서 컴퓨터로 뭘 했는지도 다 알려질테고그것보다도 당장 컴퓨터가 없으면 힘들어질 거야. 하루라도컴퓨터가 없으면 못살 텐데. 그렇지 않아?”

 

남자에게 컴퓨터는 하나의 세상이다. 자신이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다. 그런 컴퓨터가 단 하루라도 없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것은 남자에게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호철이 컴퓨터를 가져간다는말에 남자는 절망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그것을 묵묵히 바라보는 호철이다. 남자가 입을 여는 데는 1분도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호철은 생각했다. 호철의 생각대로 남자는 오래지 않아 무겁게 입을 열었다.

 

“비밀은 지켜주실 건가요?”

 

“약속하지.”

 

남자는 잠시 뜸을 들이다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당나귀...당나귀란 싸이트여요.”

 

“당나귀?”

 

“네. 채팅방에서 우연히 알게 됐어요. 거기서 남들한테 말하지 못하는 비밀을 마음껏 말한대요. 임금님 귀는당나귀 귀라는 동화처럼요. 그 비밀을 말하면서 스트레스를 푸는 거죠.그런데 진짜 윤진우가 죽게 될 줄은 몰랐어요.”

 

“죽어도 괜찮은 놈이라는 건 우리도 알아. 하지만범인은 잡아야지. 그게 우리가 할 일이니까.”

 

“난...”

 

남자는 분노의 눈길로 호철을 보며 말을 이었다.

 

“범인을 도울 겁니다. 당장 싸이트를 폐쇄하라고말할 거여요. 그게 법에 걸린다면 감방에 가도 좋아요.”

 

“물론 법에 걸리지. 당나귀가 범인이라면범인은닉죄니까. 하지만 널 체포하지는 않을 거야. 난 네가할일을 했다고 생각하니까.”

 

호철이 나가자 남자는 컴퓨터 앞에 앉아 마우스를 조작했다. 시커먼 바탕에 고동색으로 당나귀 귀 그림이 그려져 있는 화면이다. 남자는한쪽을 클릭해서 대화창을 활성화 시켰다. 거기에 글을 쓰는 남자다.

 

-당장 싸이트를 폐쇄해요. 경찰이 알아냈어요.

 

 

 

 

“당나귀?”

 

자영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호철이 한 말을 되풀이했다.

 

“그래. 당나귀. 설마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

 

자영은 모든 걸 포기한 듯 고개를 떨궜다.

 

“거기에 올린 거지? 자영이 아버지, 오상복씨가 4년 동안 저지른 짓을 말이야.”

 

호철의 말에 고개를 떨군 자영이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찾았다. 오상복사건과 홍제천살인사건의연계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호철이다.

 

 

 

“형은 어떻게 된 게 부탁할 때만 얼굴을 보여요.”

 

사이버 수사대의 민규가 잔뜩 부어터진 얼굴로 말을 했다.

 

“알다시피 우리가 바쁘잖아. 나중에 한잔하자.”

 

“항상 하는 말이지. 뭐라고요? 당나귀?”

 

“그래.”

 

“싸이트 주소가 있어야지 이름만으로 어떻게 찾아요.”

 

“그만 투덜대. 너 실력이면 1분 안에 찾을 텐데.”

 

30.”

 

“오케이.”

 

민규는 30초 만에 싸이트 하나를 찾아낸다. 검은색 바탕에 당나귀 귀 그림이 그려져 있는 싸이트다.

 

“이거 같은데.”

 

“로그인해서 한번 들어가봐.”

 

“로그인 할 거 뭐 있어. 그냥 들어가는거지.”

 

잠깐 컴퓨터를 조작하던 민규가 고개를 흔들며 말을 이었다.

 

“이거 주인장이 누군지 모르지만 보통 실력이 아닌데.방화벽이 엄청 튼튼해. 못 들어가겠어. 물론시간이 있다면 들어가겠지만.”

 

“그냥 신상정보 입력하고 로그인해 봐.”

 

민규가 로그인하자 본 화면이 뜬다. 그야말로단순하기 그지없는 바탕화면이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얘기를 하세요

                                    비밀은 보장합니다

 

호스트의 인사말과 함께 글창이 뜬다.

 

“그동안 올린 글 볼 수 있겠어?”

 

“방화벽을 만든 솜씨로 봐서 쉽지는 않을 거야.”

 

“그럼 IP주소를 알아내봐.”

 

“시간이 좀 걸릴 거야.”

 

“얼마나?”

 

1시간쯤.”

 

“최대한도로 빨리 해봐. 휴게실에서 기다리고있을 테니까.”

 

“근데...”

 

민규는 벽에 기대서 창밖을 보고 있는 지현을 힐끗 보고 말을 이었다.

 

“누구야. 저 여자? 형 이거?”

 

민규가 새끼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임마. 경찰이야.”

 

“알아. 경찰이라는 건. 스타일이 좋아서 말이야. 총각인 형하고 저 여자도 보아하니 미혼같은데. 처녀 총각이 같이 다니면 뭔가 역사가 이뤄지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알아봐.”

 

 

 

“어떻게 아는 사이야?”

 

휴게실에서 지현이 자판기 커피를 뽑으며 묻는다.

 

“민규?”

 

“이름이 민규야?”

 

“저놈 사실은 해커야.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해커였지.”

 

“그런데 어떻게 사이버수사대에 들어온 거야?”

 

“어떤 사건에 얽혀서 내가 체포한 놈이야. 저놈솜씨가 워낙 좋아서 사이버 수사대에서 특채한 케이스지. 민형사 보고 스타일이 좋다고 하던데.”

 

“다들 그래. 딱 한 사람만 빼고.”

 

“누구?”

 

“누군 누구야. 자기지.”

 

“스타일이 나쁘다고는 안했어.”

 

“그럼 좋다는 거야? 좋은데 왜 가만히있어?”

 

“스타일이 좋게 보인다고 감정까지 좋은 건 아냐.”

 

“하긴. 자기 같은 스타일을 좋아하는 내감정만 봐도 그렇긴 해.”

 

이상한 말투로 호철의 속을 긁는 지현이다. 하여간사람 속 긁는 데는 박사감이다. 지현은 종이컵에 마지막 남은 커피를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나저나 자기 대단해. 사실 여기까지올 줄은 몰랐는데.”

 

“날 안 믿었다는 거야?”

 

“홍제천살인사건과 오상복사건을 연결짓는다는 게 너무 무리라고 생각했지. 물론 자기 말처럼 정황상으로 한 사람이 범인인 건 딱히 부인할 수 없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렇게 뜻밖인 데서 연계점이 나타나다니...사막에서 바늘을찾은 것 같은 기분이야.”

 

“민형사가 믿어준 덕분이겠지.”

 

“공치사하지마. 여기까지 온 건 순전히자기 혼자의 힘이었으니까. 나도 덕분에 배운 것도 많고.”

 

지현의 칭찬에 머쓱해지는 호철이다.

 

한 시간만 기다리라는 민규는 두 시간이 다 돼서야 휴게실로 들어섰다. 잔뜩 풀이 죽은 얼굴이다. 그 얼굴을 본 호철은 뭔가 불길한 예감이들었다.

 

“이거 누군지 모르지만 실력이 보통이 아닌데. 당나귀싸이트 중국 서버를 통해서 흘러 들어온 거야.”

 

민규의 말에 깜짝 놀라는 호철이다.

 

“중국?”

 

“진짜 중국이 아니고 여기서 중국으로 갔다가 그쪽 서버를 타고 다시 이쪽으로 넘어온거라는 거야. 거기다가 고정 IP가 아니고 유동 IP.”

 

“무슨 말이야?”

 

IP가 한개가 아니고 여러 개라는 거지. 수십, 수천 개의 IP를랜덤으로 돌려서 IP세탁을 하는 거야.”

 

“그래서 못잡는다는 거야?”

 

“잡을 수는 있어. 유동 IP라고 무한정인 게 아니고 천개면 천개, 만개면 만개를 랜덤으로돌리니까 그중에 진짜를 찾으면 돼. 문제는 시간이야. 가짜 IP가 몇개냐에 따라서 시간이 달라지겠지만.”

 

“얼마나 걸리겠어?”

 

“일주일에서 최대 한달쯤.”

 

“더 빨리 안돼?”

 

“진짜 재수가 좋으면 삼일 안에도 찾을 수도 있지. 물론 로또에 당첨되는 확률이지만.”

 

민규의 말에 한숨이 나오는 호철이다.

 

범인을 눈앞에 두고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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